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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쓰레기에 진심입니다 - 탐미주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찾은 일상의 작은 행복
김이랑 지음 / 싸이프레스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자신에게 필요한 걸 소유하지 않고 원하는 걸 소유하는 성향인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현재 생활에 꼭 필요불가결한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없어도 되지만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것인데 이런 쇼핑성향은 다른 사람에겐, 특히 엄마들은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쓸데도 없는 걸 왜 사냐고 등짝스매싱을 당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말 그대로 쓰일데가 없는, 불필요한 쓰레기로 보일수도 있지만 그 물건은 필요에 의해 산 것이 아니라 요구에 의해 산 것이다. 즉, 존재 그 자체가 그것의 쓰임이고 필요의 목적이라는 이야기. 꼭 그것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더라도 단지 어딘가에 놓아두는 것으로, 혹은 그것을 사는 그 자체가 그것의 쓰임이라 하겠다.
예쁜 쓰레기는 수집욕 있는 사람들이 쓸모보다 심미적인 이유로 소비하는 물건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실용성보다는 소비와 수집이 주는 즐거움을 강조하면 예쁜에 주목하게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알록달록하니 작고 귀여운 물건일수록 쓸데는 없는데 너무 갖고 싶어진다.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지만 있으면 내가 기분이 좋고, 내 마음에 들고, 내 눈에 좋아보이기 때문에 자꾸만 사게 되는 그런 것들이다. 물론 그런 물건 중엔 추억이 담기고, 특별한 의미가 들어간 물건들도 있겠지만 꼭 그런 거창한 오랜 전 기억과 뜻깊은 의미가 없어도 충분히 빛나고, 너무나 소중한 예쁜 쓰레기들이 있다.
[예쁜 쓰레기에 진심입니다]는 자칭 탐미주의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작고 반짝이고 예쁘지만 쓸모없는 자신의 예쁜 쓰레기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보통의 성인들이 그러하듯 저자는 사회인이 되어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귀엽지만 쓸모없는 물건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은 것을 사는 것이기에 분명 과소비는 아니지만 남들 눈엔 불필요한 것을 많이 사는 것이라 소비중독이나 잘못된 소비 습관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그러한 소비 습관을 자기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작지만 소중한 것이 많은 삶이라면 언제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 내가 즐겁고 내 취향을 찾는 것이 행복하다면 오늘 산 물건이 예쁜 쓰레기라도 무슨 상관이랴!
저자의 작업실과 방을 채운 물건들을 소개하는데 작업실에는 식물, 물감, 도자기 팔레트, 수첩, 몽당연필, 마스킹테이프 등의 작업과 관련된 물건이 많이 보이고, 방을 채운 쓰레기는 타자기, 배지, 인형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LP판, 예쁜 책 같은 아기자기한 수집품들이 보인다. 예쁜 쓰레기라도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에 따라 그 종류가 달라지는데 결국 작업실과 방에 하나씩 사모은 예쁜 쓰레기들에는 저자의 삶과 가치관 같은게 묻어나게 된다. 저자는 그 물건들을 사게 된 이유나 그것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써놓았는데 의미없어 보이는 작은 예쁜 쓰레기지만 거기엔 모두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와 그것을 모으게 된 나름의 사정이 담겨 있고, 저자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박찬욱 감독을 좋아해서 올드보이 비디오와 DVD 등을 소장하고 있는데,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 삼인조 비디오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건 정말 부럽다. 지금은 찾으려해도 찾기 힘든 희귀 영화라서 다시 보고 싶어도 못보는 그런 영화인데 그 비디오를 가지고 있다니! 그리고 LP를 모으는 것도 꽤나 멋진 수집품이라고 느껴진다. LP를 들으려면 LP플레이어와 함께 스피커도 필요한데 음직은 집어치우고 예쁘기로 소문난 스피커를 사기로 하고 최저가를 찾는데만 일주일이 걸리고, 바다 건너 오는데 다시 2주일이 걸렸다는 슬픈 현실을 얘기할 땐 웃음이 났다. 이렇게 귀여운 고백이 또 있으랴!
LP판과 영문 타자기, 각종 커피메이커 까지 어딘지 좀 잉여스럽고, 겉멋이 든 귀여운 수집품들이다. 아니 정확히는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작업 중 간간히 일어나서 홈카페로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선 LP를 틀어놓고 음악을 들으며 밤을 맞이하는 그런 잉여러운 삶. 이건 단순히 예쁜 쓰레기가 아니라 저자의 삶의 한 부분이고, 저자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아날로그 수첩은 모든 것을 손으로 기록하고 남겨야 안심이 되는 아나로그 인간으로의 필수품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데 이런 마음이 일러스트를 그리고, 스케치를 하는 저자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책꽂이를 보니 틴케이스와 틴토이, 영화 관련 사진과 엽서 같은 것들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영화 관련 소장품이 많았는데 (과거형이다) 예전엔 영화 잡지, 비디오테이프, 사진, 엽서 등을 많이 모았다. 그런데 몇 번인가 이사를 다니고, 엄마가 집정리를 하면서 쥐도새도 모르게 버려서 어느샌가 사라지게 된 나의 보물들. 지금도 그 보물들이 문득 생각나고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그게 있다 하더라도 가끔 눈길을 주는 것에 그치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예쁜 쓰레기가 없으니 너무 생각나고, 그것을 모으며 즐거워하던 지난 시간이 함께 사라진 것 같아서 너무나 아쉽다. 역시 예쁜 쓰레기는 존재 그 자체로 행복을 주는 것 같다.
저자가 일러스트레이터인만큼 책 속에는 예쁜 일러스트가 한가득이다. 그림체도 알록달록하니 너무 귀엽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예쁜 쓰레기들을 직접 그려서 책에 소개하고 있는데 타자기로 친 그린데이의 노래 가사까지 담겨 있다. 저자는 읽지 않아도 예쁜 책을 모은다고 하는데 이 책 [예쁜 쓰레기에 진심입니다]가 나에겐 바로 그런 예쁜 쓰레기가 될 것만 같다. 이 책은 거창한 지식이나 정보를 담고 있는 실용서적은 아니다. 하지만 예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책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알록달록한 일러스트를 하나씩 멍하니 보고 있으면 이유모를 행복함이 몰려온다. 이 책은 예쁜 쓰레기로 책장에 오래오래 꽂혀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