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철학 수업 - 디즈니 영화 속 숨어 있는 철학 이야기
메건 S. 로이드 외 31인 지음, 리처드 B. 데이비스 엮음, 최지원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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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철학적 함의를 찾아내거나, 반대로 철학적 의미로 영화를 해석하는 시도는 지금껏 많이 있어왔다. 영화에서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고 철학적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것은 영화 읽기의 새로운 방식이며 영화를 한층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 영화를 통해 철학을 설명하게 되면 어려운 철학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게 되는 재미있는 철학 수업이 된다. 그래서 영화에서 철학을 읽어내건, 철학으로 영화를 읽어내건 어떤 형식으로건 영화와 철학이 만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고 많은 영화들이 철학으로 해체되어 재해석되어졌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식의 영화읽기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책도 읽기도 하고, 영화를 볼 때 철학적인 의미를 찾으려 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디즈니 영화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영화에서 시대의 현상이나 시대정신 등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있었는데 특히 페미니즘과 관련된 논의들은 영화 내·외적으로 굉장히 활발하게 이뤄진 것 같다. 하지만 그 외의 영화의 철학적인 해석은 그다지 못본 것 같다. 어쩌면 디즈니의 작품들은 권선징악이란 비교적 단순하고 명료한 주제를 담고 있고, 스토리 자체가 굉장히 정형적이라서 굳이 철학적인 분석까지 하지 않아도 바로 그 의미가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디즈니 영화는 자유, 운명론, 정체성, 장애, 죽음 같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제가 항상 반복적으로 나오므로 그 속에서 철학적 함의를 끌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런 주제들이 상징이 아닌 직접적이고 비교적 명확한 이미지로 보여주기 때문에 딱히 철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 영화로 오면서 조금씩 복잡하고 색다른 의미를 담은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인사이드 아웃이나 주토피아, 코코, 겨울왕국, 월E 등 과거의 꿈과 환상이라는 1차원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조금은 어둡거나 무거울 수도 있는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도 나오고 있다. 확실히 디즈니의 영화들은 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페미니즘 정신은 현재 디즈니와 디즈니 영화를 관통하는 제1의 가치라고 해도 될 정도로 거기에 함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공주들은 '신데렐라 신드롬'라는 말로 대변될 정도로 과거의 여성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소비되었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현실과 운명에 맞서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거의 디즈니 영화는 페미니즘에 역행하거나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가 21세기가 되고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페미니즘 적인 요소를 차용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책에서는 디즈니의 영화를 페미니즘의 세대별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지금까지 4세대로 진화되었는데 1세대는 법적인 자유, 2세대는 가정에서의 자유를, 3세대는 인종, 사회계금, 젠더권, 한부모 가정, 유리천장 같은 다양한 문제를 다루었다. 현재의 4세대 페미니즘은 기술적 관점을 추사하여 쇼셜 미디어 같은 기술을 여성 혐오적으로 사용하는데 반대하고, 블로그나 게시물 등의 기술을 활용해서 그런 문제를 극복해나가는데 주력한다고 한다. 이중 디즈니의 대표적인 공주 3인방인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1세대 시기에 나왔는데 페미니즘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페미니즘의 2세대 시기엔 디즈니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3세대의 시기가 되자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이 시기의 공주들인 인어공주, 벨, 자스민, 포카혼타스, 뮬란 등은 1세대 공주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벌써 이무렵부터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작용한 것이다. 4세대 공주들은 급진적인 변화를 보였고, 더불어 팬들의 반응도 크게 변했는데 LGBTQ의 권리와 인정을 요구하며 엘사를 커밍아웃시키자는 헤시태크 운동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디즈니 영화 속에서 페미니즘은 영화 밖의 페미니즘 기조와 함께 계속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변화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솔직히 디즈니 영화에서 페미니즘을 읽어내는 것은 조금은 식상하다. 책에 소개된 전문적인 지식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공주의 모습과 스탠스의 변화가 확연히 눈에 보이기 때문에 영화속에 그런 코드와 메세지가 들어가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책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내용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숨은 미키와 신의 감추심'이다. 우선 신의 감추심이란 설령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너무 멀리 있거나, 부재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신이 자신에게 응답하지 않을 때 신자들은 신이 부재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인격적이고 사랑이 많은 신이라면 우리 인간과 관계 맺기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신의 부재를 느끼는 상태가 되면 좌절하게 되고 정말 신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숨은 미키 개념은 디즈니 놀이동산, 호텔, 식당 등에 미키 마우스의 전체나 일부의 이미지를 일부러 숨겨놓은 것을 말한다. 미키마우스의 얼굴의 큰 원과 두 귀를 나타내는 작은 원 두개로 상징적인 형태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여기저기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미키 마우스의 상징적인 심볼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지 않은 이상 우연히 그런 모양을 띄기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때로는 행위자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그런 형상을 가지는 숨은 미키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정말 우현히 하나의 큰 원과 작은 두 개의 원이 조합되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게 되는데 이것을 신의 감추심 이론에 적용시켜보면 숨은 미키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눈 앞에 있는 저 문양이 숨은 미키일 것이라고 이성적으로 믿지 못할 수도 있다. 숨은 미키는 디자이너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사실은 믿으면서도 실제로 눈앞에 있는 그것이 행위자의 행동에 의한 결과라고 믿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현실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상황들은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신이 행동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신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으면서도 이런 상황이 신이 연관되었다고 이성적으로 믿지 못하게 되는 숨은 미키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각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행했다고 하는 각종 기적들은 특정한 사람들 앞에서만 보였다. 그런 전지전능한 행위를 할 수 있다면 왜 내 앞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 앞서는 하지 않는 것인가?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우리 앞에 그런 기적을 보여야 하는데 왜 그러지 않는가? 이것 때문에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전제가 깨지게 된다. 하지만 신이 신의 힘으로 인간을 압도하면 인간의 자유를 짓밟는 것이 되기 때문에 신은 일부러 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자유롭게 놓아두고 자유로운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의 흔적을 최대한 희미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내용이긴 한데 신의 감추심과 숨은 미키라는 개념이 조금은 생소해서 그 두 가지 개념을 명확히 매치하여 생각하는 것이 조금은 난해하지만 대략적인 의미는 알겠다.


이렇게 [디즈니 철학 수업]은 디즈니의 초기작부터 최근의 작품까지 그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철학적 메세지를 찾아보고 의미를 생각해본다. 페미니즘 같은 잘 알려진 내용부터 플라톤, 데카르트, 마르크스 같은 고대와 현대의 철학자들의 개념과 공자·맹자·불교사상 같은 동양적 가치관까지 다양한 철학을 다루고 있다. 모두 32명의 철학자들이 자유, 운명론, 친구, 가족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27개의 글을 쓰고 있다. 아직 책에 소개된 디즈니 영화를 전부 본 것은 아니라서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영화적으로 떠올리진 못하고 단순히 철학적 이론으로만 받아들였는데, 책을 읽은 후 영화를 본다면 책에서 설명한 개념들을 떠올리고 분석해가며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더 깊이 있는 영화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디즈니와 철학이라는 조금은 생소하고도 색다른 조합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철학적 고찰을 할 수 있어서 새로운 차원의 영화적 재미와 철학이란 지적 즐거움을 모두 잡을 수 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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