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의 천재들 - 전 세계 1억 명의 마니아를 탄생시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성공 비결
스즈키 도시오 지음, 이선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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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은 20세기 후반, 일본문화가 개방이 되기 전부터 이미 많이 접했다. 당시에는 아직 정식으로 수입되지도 않았지만 일본 문화가 널리 퍼져있었고, 야메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당시에는 힙한 문화처럼 여겨졌었다. 일본어 학원이나 동호회 등에서도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자주 상영하였는데 영화 상영회나 CD로 구워서 돌려볼 때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이웃집 토로로, 모노노케 히메를 많이 봤었고, 일본어 쌤들이 공부를 위해 보여주는 것으로는 추억은 방울방울, 바다가 들린다, 귀를 기울이면 이런 영화들이 많았던 것 같다. 대학교 일본어 기초수업 시간에 귀를 기울이면을 봤던 기억도 있는데 당시만 해도 일본 문화, 일본 애니메이션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너무 왜색이 짙다란 인식이 강했는데 그런 말이 나올 때면 반박하는 자료로 지브리의 영화가 언급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도 있다!하고 말이다.


지브리는 일본의 디즈니라고도 불리는데 지브리만의 독특한 작화 스타일이 있어서 지브리의 작품은 누가 보더라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최근의 애니계는 그래픽화로 많이 바뀌는 추세지만 지브리는 여전히 예전 감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셀화를 고집하고 있고 이 레트로한 느낌 때문에 지브리의 애니는 더 따스하고, 아련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초창기의 애니 뿐만 아니라 최근에 나온 작품을 봐도 셀화가 주는 그 독특하고 그리운 질감이 예전 지브리 애니를 보며 환상에 빠졌던 그 때의 시간 속으로 되돌려주는 것 같다. 솔직히 최근에는 지브리의 마법이 예전만 못하다고도 느껴지는데 반대로 말하면 예전의 지브리는 정말 마법과도 같이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뜻도 되겠다. 지브리 애니를 한창 볼 때는 이미 어른이 된 후였지만 어른이의 잃어버린 동심을 자극하는 마법처럼 느껴졌다.


당시엔 미야자키 하야오가 누군지도 모르고, 지브리라는 스튜디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채로 그냥 각각의 애니메이션 그 자체로만 소비했었다. 물론 그 일련의 애니메이션의 감독이 하야오라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감독이나 스튜디오 등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요즘은 지브리라던지 하야오 영감님에 대한 각종 정보가 온라인 상에 많이 올라와있지만 당시는 지금만큼 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던 것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도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정보만을 볼 뿐 스튜디오나 감독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찾아보지 않았고 지금도 작품에 대한 분석글 정도만을 접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 사실상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해야 할 정도다. 


지브리는 거의 40년 가까운 시간동안 24편 정도의 장편과 몇몇 단편 애니를 만들었는데 이 애니가 모두 하야오 영감님의 작품인줄 로만 알았다. 지브리라는 것이 하야오라는 거장의 아이덴티티와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하야오 영감님이 만들지 않은 작품도 꽤 있었고, 지브리에는 타카하타 이사오라고 하는 동료이자 라이벌인 또 한 명의 거장이 있었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어릴 적 많이 봤던 소위 '명작만화'라고 불리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플란다스의 개, 엄마찾아 삼만리, 미래소년 코난, 빨강머리 앤 같은 TV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감독이라고 한다. 일부 작품에는 하야오 영감님도 참여했다고 하니 어쩐지 이 애니들의 작화가 지브리 작품과 결이 비슷하다 했다. 어쨌건 하야오 영감님과 이사오 옹이라는 두 거장이 지난 시간동안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고, 자극을 주며 지브리를 이끌어왔다고 한다.


책은 하야오 영감님과 아사오 옹을 중심으로 지브리의 사람들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애니메이션이라는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시련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는지를 보여준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이사 겸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가 지브리의 첫 작품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추억의 마니까지 하야오 영감님의 하야오 영감님과 아사오 옹이 참여한 모든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따라가며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각 작품들의 탄생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모든 제작 과정과 그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적은 것이다. 지브리는 이 두 천재의 작품에 대한 천재성과 노력으로 설립되고 열정과 집념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아마도 가장 히트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작품으로 꼽는 사람이 많을텐데 개인적으로는 반딧불이의 묘를 좋아한다. 이 작품은 미야가 아닌 다카하타의 작품으로 미야의 작품과는 약간 결이 다른 작품이라 하겠다. 미야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빠른 템포로 진행되지만 다카하타는 사실주의적인 이야기를 느릿한 템포로 끌고간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카하타 쪽이 좀 더 취향에 맞는 것 같다. 반딧불이의 묘는 이웃의 토토로와 동시개봉을 목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때는 이미 나우시카와 라퓨타 두 편을 히트시킨 이후라서 나름 감독으로서의 영향력이 있었을텐데도 토토로라는 '요괴'가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보기좋게 까이고 만다. 당시 미야가 적을 두고 있던 도쿠마쇼텐의 임원들은 요괴와 어린아이의 교류가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작들과 같은 액션활극을 원했다. 영화는 잘못하면 적자가 나올 수도 있는데 적어도 액션활극은 기본빵은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비디오용으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도쿠마쇼텐의 부사장의 말에 빡이 친 미야는 자존심이 상했고, 토토로만으로 안된다면 다카하타도 작품을 하나 만들어서 2편 동시 상영을 하면 되겠다고 아이디어를 내고 다카하타를 꼬셨고 승락을 받아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미야의 토토로와 다카하타의 반딧불이의 묘이다. 하지만 '요괴'도 어이가 없는데 '무덤'이라니 이런 기획을 전해들은 부사장은 불을 뿜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는 제목에 '무덤'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꺼려했기 때문에 영화계에서는 괜히 그런 단어를 사용했다가 흥행에 실패할까봐 무덤이란 단어에 민감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작품은 돈이 안된다고 생각한 A급 배급사들이 차례로 발을 빼며 배급사를 잡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여차저차해서 각자 한편씩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양반들이 갑자기 서로에 대한 경쟁심이 발동해서 캐릭터가 추가되고 상영시간이 길어지며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얘기. 그리고 운 좋게 원하던 작가에게 주제곡의 작사를 맡기고, 그에 맞춰 히사이지 조가 작곡을 하여 토토로의 명곡들이 탄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반딧불이의 묘는 계속 제작이 지연되었는데 배급사와 계약을 할 때 개봉날짜를 못박았기 때문에 그날까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완성을 시켜야 했다. 하지만 7~80%만이 완성된 상황에서 개봉을 미룰 수는 없고, 작품의 완성도도 떨어트리지 않고 개봉날 까지 맞춰야 하는 상황. 결국 아이디어를 낸 것이 채색을 하지 않은채 개봉을 하기로 한다. 완전 야바위지만 장면의 스토리와 맞물려 일부러 의도한 것처럼 보여서 무사히 넘어갔다고 한다. 개봉 후에도 작업을 계속하여 한달 후 완성본이 나오게 된다. 반딧불이는 수많은 상을 받고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토토로와 반딧불이는 지브리의 초석이 되었고, 지브리가 단순한 액션활극 전문 스튜디오에 머무르지 않고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을 하고, 도박을 하는 지브리의 두 천재에 의해 지금의 지브리가 있게 되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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