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밤에 당신과 나누고 싶은 10가지 이야기 - 당신의 밤을 따뜻이 감싸줄 위로의 이야기
카시와이 지음, 이수은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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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잠못드는 새벽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유없이 외롭고,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밤. 혼자인게 외롭지만 혼자이고 싶은 밤. 그런 날은 괜히 센티함에 빠져보거나 오래된 노래를 틀어놓고 쓴 커피를 마시며 인생이 쓰기 때문에 커피가 달다며 중2병스러운 맨트도 내뱉어 본다. 가슴이 헛헛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속이 비다못해 공허함을 느끼면 텅 비어버린 속을 채우기 위해 밥을 우겨넣는다. 밥에 남은 반찬을 넣고는 성의없고 의미없이 대충 한숟갈 한숟갈 입속을, 뱃속을, 텅빈 가슴속을 채워나간다. 하지만 그런 텅빈 공허함은 밥을 먹는다고 채워질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그 허무의 공간을 매우기위해 꾸역꾸역 밥을 억지로 밀어넣어본다. 그리고나서 모자란 부분은 뜨겁고 쓴 커피로 마저 채운다. 한잔, 또 한잔.. 하지만 역시나 상실감은 채워지지 않고, 여전히 허무하고 변함없이 고독하다. 새벽의 감수성은 분노의 비빔밥으로도, 인생보다 더 쓴 블랙커피로도 채워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땐 비빔밥이나 커피가 아닌 따스한 공감과 작은 위로가 필요하다. [혼자인 밤에 당신과 나누고 싶은 10가지 이야기]는 억지로 웃으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삼류영화같은 억지 감동을 보이지도 않으며 힘내라거나 다 잘될거라는 지하철 안내방송만큼 감흥없는 인스타 감성문구를 나열하지도 않는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소란스럽지도 않게 조용히 어깨에 손을 올리고 따스함을 전해주듯 위로의 이야기를 전한다. ​책은 위로의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는데 감수성이 터지는 새벽에 읽기에는 어딘지 슬픈 구석도 있다. 생각이 많아지는 곳도 있고, 공감이 가거나 적어두고 싶은 구절도 보인다. 그림 장면들은 굉장히 수수한 일상의 묘사이고, 움직임이 느껴지기보단 굉장히 정적이고, 포근한 모습들이라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일상의 고요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또 굉장히 단순하고, 짧은 단편적인 장면이지만 그 모습과 상황이 계속해서 머리 속에 떠오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골치아픈 철학적 고찰이 아니라 그 상황을 떠올리고, 분위기를 머리속으로 느껴보며 아스라한 파란색에 빠져들면 조금씩 마음이 풀리고 느긋해지는 것 같다. 적막한 밤과 조용한 새벽에 마음을 차분하게 어루만져주는 위로가 될 것 같다.


책은 흑백에 파란색으로만 채색이 되어 있다. 저자는 밤에 잠기기 바로 전의 거리가 파랗게 물들어가는 찰나의 순간을 좋아한다고 한다. 세상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그 순간이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라는데 하늘의 별이 떠오르고 이제 하루를 마감하는 그 시간을 함께 하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위해 책을 썼고,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의 색채를 책에 담아낸 것 같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하늘이 밝아올 때에도 세상은 파란빛으로 물든다. 흔히 해가 뜨고 질 때 세상이 붉게 물드는 풍경을 떠올리지만 해가 지평선 너머로 내려앉고 난 이후 어둠의 장막이 감싸기 전이나 해가 떠오르기 직전엔 오히려 어스름한 옅은 쪽빛이 공기를 감싼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도, 하루가 새로 시작되는 시간도 똑같이 어스름한 쪽빛의 찰라의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파란색은 어둠으로 내려앉는 외로움의 색이기도 하지만 밝아오는 새벽의 색이기도 하다. 외롭던 밤을 보내고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며 멋진 하루를 기원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밤의 시작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외로운 밤을 계속 함께 있어주며 조용히 지켜봐주는 친구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그렇게 슬픔이 쌓이는 밤에는

정처없이 훌쩍 산책을 나서본다

늘 익숙했던 풍경이지만

모르는 척, 처음 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한밤의 강이 좋다

잠들지 않는 반짝임이 강물 위로 흔들린다

방으로 돌아가면 슬픔은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슬픈 밤에는]


꼭 10년전 양화대교 끝자락에 있는 집에서 혼자 살았었다. 당시엔 이유없이 잠못드는 날이 많았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껴안은 듯 마음이 무겁고, 뻥 뚫린 가슴에 차가운 봄바람이 불어와 몹시도 시리고 아파했었다. 그럴 때면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양화대교를 건너며 어둠이 녹아든 강물을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다. 또 강변을 따라 새벽 안개가 자욱한 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하릴없이 동네를 헤매이며 걷기도 했다. 확실히 낮과 똑같은 거리, 똑같은 건물, 똑같은 표지판이지만 밤이라는 색채가 가해지면 색다른 풍경처럼 보였다. 단순히 그 풍경 속에 수없이 오가던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 거리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된다. 그 순간만은 내가 그 거리의 주인이 된다.


도시는 항상 바쁘고 삭막하게만 느껴지지만 의외로 모두가 잠든 시간, 사람들이 숨어버린 도시는 그 자체로 편안함을 전해주었다. 마치 여유로운 시골길을 걸을 때와 같은 편안함이다. 아마도 사람이 없는 곳을 거닌다는 것이 세상과의 단절감을 가져와서 비박을 할 때의 대자연에 홀로 내던져진 자유로움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여유가 좋고, 도시의 적막함이 좋았다. 혼자라서 외로웠지만 혼자이고 싶어서 그런 고독감과 단절감을 느끼기 위해 슬픈 밤에는 밤의 산책을 참 많이도 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불 꺼진 적막한 방은 여전히 무겁고, 그 곳엔 슬픔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책은 열차를 타고 대륙을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아직 좁은 골목만이 나의 일상이던 그때에

학교가 끝나면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주인공과 이곳저곳 여행을 떠났던 추억이 샘솟는다


책을 읽는 것은

미지의 세계와의 만남이다

[파랑 스카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와의 만남이다. 꼭 여행에 관련된 책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다는 건 마치 여행을 떠나듯 책 속으로 들어가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오코의 손을 잡고 오차노미즈 언덕을 거닐기도 하고, 요즘 같은 봄날엔 앤과 함께 마차를 타고 기쁨의 하얀길을 달리기도 하고, 베이커 거리 221B에 가볼 수 있다. 저자의 손에 이끌려 페이지를 넘실넘실 넘어가며 경험하게 되는 책속으로의 여행. 그렇다면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것일테다. 각기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다른 환경에서 책을 읽더라도 그들이 도착하는 곳은 똑같은 책 속의 세계다. 두 사람은 같은 열차를 타고 달리듯 같은 것을 공유하며 같은 여행을 떠나는 동무가 된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일상의 내음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삶을 알지 못하고

이곳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 삶의 한 자락을 잠시 스치듯 지나간다

[멀리서 들려오는 방울 소리]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감천문화마을과 흰여울문화마을은 사진 찍기 좋은 스팟으로 알려지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색색의 알록달록한 집들이 석양의 빛과 더해지면 꽤나 멋진 피사체가 되고, 골목골목 숨어있는 벽화들도 사진 찍기 좋은 포토스팟이 된다. 분명 그곳은 누군가의 일상의 영역이고 내가 사는 곳과 별 다를바 없는 모습일텐데 내가 사는 일상을 한발짝 벗어난 것만으로도 그 곳은 새롭고 흥미로운 세계로 변한다. 전혀 색다른 풍경이 아니지만 일상성 속에서 얻게 되는 새로움과 신선함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가져온다. 어쩌면 이것은 사람이 사라진 밤의 거리에서 느끼게 되는 색다른 느낌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이 도심 여행이 주는 즐거움일 것이다.


감천문화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지자 그곳의 카페와 식당 등의 현지 상권의 임대료가 인상되고, 덩달아 주택의 월세까지 오르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곳 주민의 대다수는 월세방에 살고 있는데 월세가 올라서 많은 주민들이 내몰리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관광객들은 멋대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주민들의 일상과 얼굴 사진을 마구 찍는다고 했다. 그로 인해 주민들은 개인의 일상이 사라져버리고 늘 감시받는 듯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인스타를 채우기 위한 감성사진을 찍기 위해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지, 자신의 힐링을 위해 누군가를 킬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겠다. 나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그 곳은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이라는 것을 잊지는 말자.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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