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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신서경 지음, 송비 그림 / 푸른숲 / 2021년 3월
평점 :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넌 마지막으로 누구랑 뭘 먹고싶냐고 하는 심리테스트 비슷한 질문을 많이들 한다. 예전에는 그 동안 못가봤던 굉장히 비싼 레스토랑을 전세내서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풀코스로 비싼 음식을 먹겠다는 식의 답변을 많이 들었는데, 그 때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데 비싼 레스토랑의 쉐프가 미쳤다고 거기서 장사를 하고 있겠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딴지를 걸었다면 아마 바보 취급을 받았을 것 같다. 사실 이 질문은 정말 뭘 먹고 싶은가 하는 음식의 취향이나 기호를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을 어떤식으로 마무리하겠는가 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뭘 할지 현실적으로 고찰하자는 것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자신의 일생을 하나의 음식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음식이 될지, 인생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의 음식은 무엇인지 같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옆의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시금 떠올려보자는 질문이기 때문에 정말 지구가 멸망하는 전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같은건 별로 중요한게 아닌 셈이다.
인터넷에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란 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다양한 음식과 그 음식을 선택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화려하고 값비싼 고급 음식을 선택했고, 어떤 사람은 평소 먹던 싸구려 패스트푸드를, 다른 누군가는 어릴 때 먹던 엄마표 집밥을 선택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마지막으로 선택한 식사에 그 사람의 성향, 인생, 살아왔던 방식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누구와 무엇을 먹고 싶은가 하는 질문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 된다. 요즘 유서를 쓰고 관에 들어가는 소위 임종체험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죽음 앞에 마주한 자신의 인생, 일생을 돌이켜보고,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재조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이벤트인데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라는 질문 역시 일종의 임종체험 같은 것으로 생각해봐도 좋겠다. 유서를 쓰고 실제로 관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죽음을 상정하고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자는 의미는 동일한 것 같다.
책은 일주일 후 지구가 자전을 멈추고 그로 인해 자기장이 사라지면서 전 세계가 멸망한다는 설정이다. 이런 내용의 영화도 있는데 지구가 멈추면 지구를 보호하던 자기장이 사라지며 엄청난 양의 자기장과 방사능에 노출되어 생명체는 사라지게 된다. 지구가 완전히 멈추기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인류가 살아남을 확률은 단 3%. 이야기는 유튜브로 먹방을 하는 봉구라는 BJ가 남은 일주일을 뭘 먹으며, 어떻게 보내는지를 보여준다. 보통은 이런 경우 생의 마지막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거라 생각하지만 봉구는 천애고아로 가족도 친구도 없이 모니터 너머의 그 누군가와 대화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당장 만날 사람도, 함께할 사람도 없다. 이미 봉구의 세계는 진작 멈추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별반 달라질 일도, 다르게 행동할 것도 없는 봉구는 마지막까지 방송을 하기로 한다. 일견 이런 봉구가 한심하게 보이지만 한편으로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봉구로서는 그 시점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인 자신을 봐주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첫날엔 칼로리 폭탄의 디저트를 만들어 먹는다. 그 때만해도 방송을 보는 사람이 몇 명 있고, 서로 실없는 대화를 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다음날은 매실무침과 삼겹살 파티. 그 다음 날은 밥솥으로 시루떡을 만들어서 이웃에게 돌리는데 떡이라고 하면 잔치를 떠올리게 된다. 이사를 왔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떡을 돌리는데 지구가 멸망하기 3일전 떡을 돌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카메라 앞에 앉아서 떡을 먹지만 이젠 방송을 보는 사람도 없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 실은 언제나 봉구는 혼자여서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그러다 봉구와 똑같이 세상 혼자인 보험설계사(aka 보험아줌마), 이웃집 조폭, 어린 시절의 첫사랑, 봉구와 현피 뜨러 온 키보드파이터 등의 인물이 하나씩 등장하며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지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맞게 된다.
봉구를 비롯 봉구와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모든 인물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사람들이다. 최근 1인 가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1인인 가구들만 이렇게 우연히 만난다는 것은 너무 억지일까? 아니면 혼자라서 외로운 사람들끼리 자연히 끌어당기고, 뭉쳐서 서로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봐주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인 것일까? 만약 이게 영화였다면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다 다르게 설정이 되서 유사가족의 형태를 보였겠지만 여기서는 그러지 않은 점이 클리셰에 빠지지 않고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 날 같은 공간에 모인 이들은 그날 처럼 만난 사람들이지만 마치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함께 식사를 즐긴다. 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서로를 안아주고 자기를 지켜봐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좀 영화 같은 설정이지만 D-2날에 전기가 끊기는데 봉구의 친구가 혼자 발전소에 가서 멸망 바로 전에 전기를 복구한다. 그러자 혼자인 줄 알았던 사람들의 폰으로 감사문자와 카톡이 쏟아진다. 친구가 없던 봉구에게까지 하트가 날라오고, 그 하트를 발전소에서 전기를 복구한 친구에게 주자 친구는 지구 멸망 전 게임 최고기록을 갱신하며 홀가분한 얼굴로 간다. 하던 게임을 깨려고 발전소로 가서 전기를 복구한다는 것은 너무 오바지만 죽기 전 고마웠고, 감사했고, 사랑한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은 실제로도 많이 봤던 일이라서 가슴이 찡해진다. 특히 침몰해가는 세월호의 아이들이 가족들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와 음성이 떠올라서 이 부분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결국 책은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을 먹건, 어디에 있건, 누구와 있건 결국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고마웠고,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