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에우제니오 카르미 그림, 김운찬 옮김 / 꿈꾸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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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철학자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오래전에 장미의 이름을 읽은 것이 전부로 지금은 그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은 소설이 그다지 인상깊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책 자체가 나빠서 그랬다기보다는 글이 워낙 어렵고 난해해서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에코의 책은 어렵다는 등식이 머리 속에 입력되어버렸고, 움베르토 에코의 글은 읽기도 전에 지레 포기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는 우화 형식이라 전혀 어렵지도 않고 마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쉽고 직설적이다. [폭탄과 장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뉴 행성의 난쟁이들]의 세 가지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이 세 소설을 움베르토 에코의 동화 3부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진짜 아이들을 위한 동화였던 것이다. 처음 두 이야기는 66년에, 마지막 뉴 행성의 난쟁이들은 92년에 쓰여졌는데 쓰여진 시기를 생각해보니 당시의 시대상황이 잘 반영된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폭탄과 장군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엄마도, 여자도, 우유도, 공기도, 불도 모든 것이 원자로 되어 있다. 우리 모두가 원자다. 원자는 함께 사이좋게 지내면 아무 문제도 없고 조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원자 하나가 부서지게 되면 그 조각이 다른 원자를 떄리고 결국 큰 폭발이 일어난다. 원자가 죽는 것이다. 나쁜 장군은 전쟁을 일으킬 생각으로 부자들의 지원으로 원자폭탄을 계속 창고에 모은다. 부자들은 장군에게 전쟁을 시작하라고 압력을 넣고, 장군은 유명해지기 위해 기어이 전쟁을 일으켰다. 도시마다 핵폭탄을 하나씩 떨어트렸는데 원자폭탄이 터지면 지구의 동물과 식물이 죽을 것을 슬퍼한 원자들이 전날 밤 폭탄 안에서 빠져나와 지하실로 숨어들었기 때문에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뻐하며 폭탄이 없어야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모두가 행복해졌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고 우리의 몸도 원자로 구성되어져 있다. 그리고 핵폭탄도 원자로 되어 있다. 똑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지구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폭탄이 되기도 한다. 마치 주방장의 칼과 강도의 칼처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인드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의미보다는 원자 하나하나가 인간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마치 원자처럼 지구를 구성하고 있고, 함께 사이좋게 지낸다면 조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가 나쁜 마음을 먹고 다른 원자-다른 사람-다른 나라를 때리면 결국에는 큰 전쟁이 일어나고 지구는 폭발하고 말 것이다.


부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을 바라고, 장군은 유명해져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고자 해도 나쁜 사람 몇몇이 옳지 못한 판단을 하면 조화는 깨지고, 그 파장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미친다. 지구의 역사는 그렇게 움직여왔다. 소수의 정치가와 위정자가 자신의 삐뚤어진 신념과 잘못된 판단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은 죽고, 지구는 파괴되었다. 그런 나쁜 장군과 나쁜 부자들이 생겨나는 것은 막을 수 없을지라도 폭탄에서 도망친 원자들처럼 원자 하나하나가 옳은 결정을 하고 나쁜 행동에 동조하지 않으면 그들의 악행을 막을 수가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평범한 군인인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청소하라는 명령을 받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많은 유대인을 희생시켰다. 전쟁이 끝난 후 붙잡혀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됐을 때 아이히만은 자신은 군인으로 국가의 명령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명령에 복종했고, 복종은 군인의 미덕이라며 조금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악의 평범성'이라고 말했는데 군인으로 명령을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지만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가치판단을 하지 못한 것이 죄였다. 아이히만이 폭탄에서 도망친 원자들처럼 유대인 학살 명령을 듣지 않았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는 뜻.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항상 자신이 행동이 옳은지 생각해야 하고,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잘못은 아닌지 알기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날이 갈수록 지구의 인구가 늘어나서 지구가 좁아지자 지구인들은 화성을 정복하고 싶어했다. 여러 시도 끝에 용감한 사람들이 우주선에 타고 화성을 향해 날아갔는데 미국, 러시아, 중국의 세 나라에서 동시에 우주선이 출발했다. 이 3명의 우주인은 서로 싫어하고 반목했다. 그들이 서로를 싫어한 이유는 서로 말이 달랐기 때문이다. 말이 달라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 사람이 화성의 어둠 속에서 각자 엄마를 불렀는데 똑같은 느낌으로 엄마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서로를 이해하고 친해졌다. 그러는 중에 화성인이 등장했는데 지구인과는 전혀 다른 괴이한 모습이었다. 지구인들은 화성인을 죽이려고 원자 분해기를 꺼내들지만 화성인도 지구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화합한다.


이 이야기가 쓰여졌을 무렵은 냉전시기로 미국과 소련이 우주경쟁을 하던 시기였다. [폭탄과 장군]도 냉전의 시대상을 담고 있고,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도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중국은 아직 우주선이 없었을 텐데 중국을 끼워넣은 것은 움베리토 에코의 선견지명일까? 지구인 혹은 우주인들이 서로를 싫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을 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서로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서 투명인간이 된 남자가 칼을 휘두르는 불량배를 물리치지만 정작 주위 사람들은 불량배가 아니라 투명한 몸을 가진 남자를 공격하는데 사람은 자신과 다르다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두려움은 적의로 표현된다.


세 명의 우주인이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게 되는 계기는 각자가 엄마를 부르면서 부터다. 엄마와 아빠를 부르는 호칭은 전 세계적으로 발음이 비슷한데 이는 사람들의 정서나 발음기관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생김이나 말은 달라도 인간이라는 큰 줄기에서 지구인들은 결국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한다는 고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서로 반목하던 세명의 우주인은 화성인이 나타나자 서로 단결 단합하여 화성인에 맞선다. 이질적이라는 이유로 적으로 지냈지만 더 이질적인 것이 나타나자 덜 이질적인 것과는 동료가 된다. 애초에 이질적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그것이 상대를 미워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질적이고 나와 다르다는 개념은 철저하게 '내'가 주체가 되고, 나의 기준에서 상대를 정의하는 행위라 굉장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마인드인 셈이다.


화성인은 지구인과 생김이 완전 다르지만 동물을 사랑하고 눈물도 흘린다. 마음도 있고, 생각도 할 줄 안다. 제국주의 시절 유럽의 열강들은 아프리카나 아시아를 침공해서 땅을 빼앗고, 그곳 원주민을 죽이고, 노예로 만들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모습의 흑인과 동양인을 마치 화성인 취급을 했을 것이다. 자신들보다 낮은 존재로 생각하고 하찮게 여겼다. 그런데 현재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으로 일을 하러 온 동남아나 중국 사람들을 아주 낮게 생각하며 예전 유럽인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학대하듯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 심지어 다문화 정책을 비난하고 그들을 배척한다. 웃기게도 미국이나 유럽계의 외국인에게는 한없이 개방적인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기 때문에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겠다


뉴 행성의 난쟁이들
오만한 황제는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싶어서 지도를 펼쳐들었지만 지구엔 더 이상 새로 발견할 땅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문명을 전해줄 행성을 찾으러 우주 탐험가를 우주 공간으로 보낸다. 우주를 떠돌던 우주 탐험가는 너무나 맑고 깨끗한 행성인 '뉴'를 발견하고 그곳에 착륙하여 뉴 행성을 지배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난쟁이들에게 지구의 문명을 전해주기로 한다. 처음으로 전해준 지구 문명은 우주 망원경이었다. 우주 망원경으로 뉴 행성의 난쟁이들에게 지구를 구경시켜주는데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오염되고 병들어 있는 모습 뿐이었다. 난쟁이들은 지구로 가서 자신들의 문명으로 지구를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지구의 관료들은 그 제안을 거부한다.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는 지구 환경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제국주의의 풍자도 더해져있다. 오만한 황제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문명을 전해주는 것을 황제라면 응당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발견할 땅이 없자 끝없는 우주로까지 보내서 식민지를 발견하라고 명령한다. 우주 탐험가는 뉴 행성의 난쟁이들에게 지구 문명을 전해주려할 때 난쟁이들이 불평을 한다며 불만스러워한다.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문명보다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전해줘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이야기에서처럼 열강들은 철저하게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자신들의 눈높이에서만 생각하려 한다.


꼭 침략이나 지배, 정복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로빈슨 크루소는 식인종 원주민을 구해주고 프라이데이라 이름 붙이고는 영어를 가르친다. 그들이 원주민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일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북군의 장교인 던바는 한적한 요새로 발령받아 가는데 그곳에서 수우족 인디언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이름을 쓰고, 문화를 받아들인다. 그러자 군인들은 던바를 죽이려고 하는데 이렇게 열강들은 자신의 기준을 벗어나면 배척하고 죽이려고만 한다. 언제나 원주민은 열등한 존재이자, 계도해야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문화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호존중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우주 탐험가는 망원경을 통해 지구의 선진문명을 보여주는데 하나같이 부작용과 위험성이 가득한 문명이었다. 우주 탐험가가 훌륭한 문명이라고 자화자찬한 병원은 각족 문명의 발달로 인해 발생한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애초에 그런 부작용이 있는 문명이 없었다면 병원이 필요치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문명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지구를 황폐화 시키고, 병들게 하고 있다. 이렇게 인류가 지구를 피폐하게 만드는 시기를 인류세라고 하는데 발전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지구가 죽어가는 속도도 비례하여 급속도로 빨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2020년에는 호주 산불, 시베리아 폭염, 한국의 최장장마, 코로나 등 각종 기상이변과 전염병 등이 계속 발생했는데 30년 전 움베르토 에코가 우려했던 상황이 본격적으로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원자를 발명한 인류가 맞닥뜨린 핵전쟁의 위험성, 서로간의 차이를 품어 안지 못하고 편견에 빠져 서로 증오하고 반목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문명의 발달이 야기한 지구환경 파괴 등 앞으로 지구별에서 살아가야할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꼭 들려줘야 할, 그리고 깨우치고 반성해야 할 이야기들이고, 읽고 나서 생각해볼 것이 많은 소설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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