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크리스마스 캐럴 - 1843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찰스 디킨스 지음, 황금진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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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지는 자린고비와 함께 수전노 구두쇠의 대명사다. 초6 때 학예회에서 스크루지 이야기를 연극으로 공연한다고 색종이를 이어붙여 쇠사슬을 만든 기억도 있는데 그만큼 아이들에겐 꽤나 친숙한 이야기이다. 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여러 버전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자주 방송을 해줘서 스크루지 이야기는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크리스마스 캐럴 소설을 제대로 읽었던 적은 없었다. 주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접했거나, 아동용으로 각색된 동화를 아주 어릴 때 읽었던 것으로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 새로 읽은 소설은 기억 속의 내용과는 많이 달랐다.


어릴적의 기억으로는 스크루지는 돈만 밝히는 천하의 악당이었는데 3명의 유령을 만나고 개과천선해서 착해졌다는 기억만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어본 스크루지 이야기는 기억과는 좀 달랐는데 우선 스크루지가 세상 나쁜 못된 인간이 아니라 일정부분 공감도 가고, 동정도 가고, 그가 그렇게 변한 것에 어느 정도 이해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크루지가 특별히 정없고 돈만 밝히는 별종처럼 생각했었는데 지금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스크루지와 오버랩 시켜보니 스크루지가 정말로 그렇게 악인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의 유령에 의해 알게 된 스크루지의 과거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부모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도 못했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신을 따르며 사랑하던 여동생은 일찍 비명횡사했고, 사랑했던 여자도 떠나보내야 했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유일한 친구인 여동생까지 그렇게 된 후로 마음 둘 곳 없는 스크루지는 점점 돈에 집착한다. 어렵게 살았을수록 눈에 보이고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가치에 연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가치가 매겨지는 돈에 집착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과거의 유령을 따라 찾아간 스크루지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은 외견은 으리으리하지만 안은 낡고, 휑하고, 쥐가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엔 잘살았지만 선대 때 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빠가 무섭다는 여동생의 말을 통해 스크루지의 아빠는 자신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한 이후에 성격이 나쁘게 변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잘 살던 사람이 망해버리면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성격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스크루지의 아빠가 바로 그런 사람이고 그로 인해 스크루지도 부모의 사랑을 못받고 자랐던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심감이 부족하고 위축되어 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스크루지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는데 계속 따돌림을 받은 것으로 보아 학교에서는 이런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학교 교장은 그저 무섭고도 거만했으며 스크루지는 학교를 떠날 때 교장과 헤어지는 것에 조금의 아쉬움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크루지는 교장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교육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무의미한지를 잘 보여준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따돌림을 당하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는 그런 것에 무관심하다. 이런 아이들은 사람을 잘 믿지 않고 사람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외로운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날 혼자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캐릭터를 현실화하여 그들을 친구삼아 몽상을 즐기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아이였다.


이런 스크루지였기 때문에 외톨이로 살고, 돈에 집착하게 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스크루지가 아무 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일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즐길 줄 아는 순수청년이었지만 사회에 찌들고 점점 세상을 알아갈수록 다른 가치는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돈에 목매게 된다. 여친이 떠난 것도 스크루지가 돈만 밝히고 사람이 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게 스크루지가 이상한 것인가? 세상물정 모르는 학생 때는 그저 부모가 내주는 학비로 공부만 하며 취업 걱정만 하면 되지만 막상 취업을 하고 나면 모든게 걱정거리가 된다. 학자금대출부터 전세값, 주택대출, 결혼비용, 각종 공과금과 할부금.. 돈걱정을 안한다면 그게 이상한거다.


N포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한 미래로 인해 결혼은 물론 연애까지 포기한다. 돈이 없다면 결혼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서로 사랑하면 돈은 필요없다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살다보면 가난이라는 것이 더욱 무섭게 느껴지고, 무섭도록 사람의 목을 죄어온다. 자신의 아이에게 가난을 세습하게 될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결혼해서 애를 낳고 오순도순 사는 것을 꿈꾼다면 멍청하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스크루지가 사랑하는 여인을 옆에 두고도 돈을 쫒는 것도 이해못할 것이 아니다. 현실에도 그런 사람이 너무 많고 감히 그걸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스크루지에 현재의 대한민국을 대입해서 보면 스크루지는 그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누군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스크루지는 과거의 유령을 따라 어릴적 불쌍한 자신 모습을 보며 낮에 사무실 앞에서 캐럴을 부르던 아이들 떠올리며 다문 얼마라도 쥐어줄걸 하는 후회를 한다. 자신의 불쌍한 모습에서 타인의 불행한 모습을 떠올리는 스크루지의 마음에는 인간성과 연민이 남아 있었다. 이처럼 스크루지는 냉혈한에 철저한 악당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스크루지의 성격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괴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가난한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해서 조카를 쫓아낸 것도 과거의 아픈 경험에 기반한 행동으로 꼰대라고 볼 수는 있지만 마냥 나쁜 인간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소설의 첫 구절은 말리가 죽었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선 밝히자면 말리는 죽었다' 단순히 말리는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면 짧은 상황 설명만으로도 충분했을텐데 햄릿까지 인용하며 굉장히 장황하게 말리가 죽었음을 알리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말리의 유령이 등장할 때 새삼스럽게 사실은 말리는 이미 죽었는데 말리가 누구나면 블라블라 설명을 하며 극의 흐름을 끊어먹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죽음을 강조하며 설명을 하는 것이다.


스크루지는 사람들의 평가를 너무 두려워해서 좀스러운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고결한 꿈을 버리고 돈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요즘에도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소형차 대신 무리해서 대형차를 끌고 다니고, 무리해서 명품백을 들고 다니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유행하는 옷을 사입고, 장신구로 자신을 꾸미고 다닌다. 특히 스크루지처럼 불쌍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슴에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스크루지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죽음 이후의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자신이 지금껏 해온 게 있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자신이 죽고나자 사람들이 악평을 하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 충격이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양반이 어떻게 그걸 모를수가 있다는건지 정말 의문이다. 어쨌건 사람들의 평가를 너무 두려워하는 스크루지의 성향 때문에 죽음 이후의 자신의 평가를 두려워해서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볼수는 없을까? 좀스러운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돈에 매달리게 되었다면, 죽은 이후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스크루지는 철저하게 남의 평가에 의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가는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아픔과 고통에 직면하여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객관화하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우울증이나 강박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나 과거의 잘못 때문에 끝없이 후회하고 거기 매달려 사는 사람들도 과거의 사건을 마주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변화의 시작을 만든다고 한다. 스크루지는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고, 현실을 마주하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어쩌면 미래에 받게 된 부정적인 평가를 희석시키기 위해 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건 사소한 각성으로 사람이 바뀌는 기적은 일어난다.


그런데 사소한 각성으로 사람이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반대로 사소한 계기로 사람이 변하는 악몽도 존재한다. 어릴적의 스크루지가 바로 그러했다. 우리는 스크루지가 개과천선하는 모습이 아니라 조금씩 다크사이드로 빠져드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크루지를 왕따시킨 아이들이나, 따돌림을 받는 학생에 관심을 주지 않았던 선생이나, 아이들에게 무심했던 부모나, 혹은 그것이 사회적 시스템이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구 한 명이라도 스크루지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줬다면 스크루지가 그렇게 삐둘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바뀌는 기적을 바라기보단 사람이 변하지 않게 항상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스크루지의 이야기를 읽으니 시의성도 있고, 더욱 뜻깊고, 생각할거리도 많이 있어서 좋았다. 특히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이 너무 이쁘고 삽화도 좋다. 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의 날, 아기만드는 날,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는 상업적인 날로 변질된지 오래지만 책에서 말하는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먹고 사랑을 나누는 날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추석같은 느낌의 기념일인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말하는 크리스마스 캐롤로 크리스마스의 의미도 다시 되새기고 사랑을 나누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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