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동의가 필요해 - 연인 관계의 성적 갈등을 공감으로 바꾸는 성심리학 수업
양동옥 지음 / 헤이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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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섹스는 허무하고 섹스 없는 사랑은 공허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면 보통 플라토닉을 거쳐 에로스를 향해 달려가는 루틴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에로스를 향해 전력질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에로스만이 목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피끓는 젊음에게 사랑 그 자체가 에로스와 동일시 되는 경우도 있고, 에로스로 사랑의 정도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에로스는 사랑에서 빠지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에로스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심각한 성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일도 많이 발생한다.


지금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성역할 고정관념과 성적 가치관 때문에 연애와 사랑의 모습도 바뀌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가령 과거에는 데이트를 할 때 남자가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고, 남성에게 더 많은 데이트 매너를 요구했다. 과거에는 남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것이 특별히 차별이나 손해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에게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손익을 따질 일도 아니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성역할 고정관념을 나타내는 의미로만 이해하자. 어쨌건 과거에는 남자가 주로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남성 중심 데이트 문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데이트 비용 문제는 특히 최근 들어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데이트 비용을 균등하게 부담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한데 이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여성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남성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므로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까지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남성이 여성을 위해 투자하는 데이트 비용은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식의 논리까지 나오는 것 같다. 이것은 연인관계를 사회교환관계로 볼 것인지 공동관계로 볼 것인지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의견차이 같은데 한편으로는 성차별에 대한 의식의 개선으로 소위 과거와 같은 남성의 우월적 지위가 사라졌음에도 남성이 부담해야 하는 데이트 비용이나 데이트 매너에 대한 의무가 역차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데이트 비용을 균등하게 부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전 연령대에 걸쳐 공감을 얻고 있고 30대 미만 여성에게서는 남성보다 더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이미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니 기성세대들이 라때는 말이야 라며 과거의 성역할론에 사로잡힌 케케묵은 사고방식의 연애법으로 설교를 하는 것은 오히려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겐 혼란만 가져오게 할 뿐이다. 그리고 달라진 가치관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지금 세대의 연애와 사랑, 섹스를 규정하려다보니 자꾸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연애와 섹스를 TV 드라마와 야동을 통해 배우는 것 같다. 일단 한국에선 제대로 된 성교육이 전무하다보니 올바른 성의식과 성적 가치관을 가질 기회가 없다. 그러다보니 온갖 판타지와 육욕만이 넘치는 드라마와 야동으로 연애와 섹스를 배우게 되고 결국 잘못된 성인식으로 성적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가장 흔하고 보편적으로 내려오는 환상은 'No는 Yes의 의미'라는 속설이다. 안돼요. 돼요. 돼요.. 속으로는 좋으면서 일부러 싫다고 하는 거니 싫다고 말한다고 그걸 거절의 의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이것은 남성은 적극적, 여성은 소극적이라는 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성의 사회화 과정에서 잘못 학습된 결과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거의 준강간에 해당될 정도로 반강제로 여성을 취하는 것을 남자다움이라고 받아들이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남자라면 그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라던가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해서 강제로 취하면 넘어오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생각했고, 심지어 여성들도 그런 것에 어느정도 수긍하고 있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 당시는 여성은 순응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남자가 강하게 나오면 여자는 소극적으로 반응하거나 순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게 당연시 생각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남성을 강간범으로, 여성을 자발적 강간피해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 사회의 아주 잘못된 관행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를 이용해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성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성추행을 한다는 것은 지위나 힘을 이용하여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 행하여진 성적 행위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성들이 성추행을 유도했다는 식으로 몰고간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 성폭행을 당한다거나 여자가 위험하게 밤늦게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니 당했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굉장히 많다. 실제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만 봐도 피해자를 탓하는 글이 많이 보인다. 이런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받게 된다.


저자는 피해자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인식에는 뿌린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 사필귀정, 권선징악 같은 생각이 있다고 분석한다. 옷차림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인데 평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녔다는 것은 자신이 성적으로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고 다른 사람이 성적으로 쉽게 접근하도록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음주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성 역시 주변 사람들은 성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상대로 바라보게 되므로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인데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은 옷차림과 상관없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가해가 남성들과 일부 여성에 의해 공공연히 발생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분명 과거에는 성별 불평등과 고정관념이 강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잘못된 성인식과 고정관념 때문에 사회적으로 잘못된 성적 갈등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동의하지 않은 관계에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미투운동으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받는 성차별과 성적 불평등 등의 민낯이 많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각한 2차 가해로 인해 아직은 우리 사회가 많이 경직되어 있고, 여전히 성인지 감수성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분명 한국 땅에서 여성들이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불평등과 불합리한 일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마나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느끼는 불평등과 위험요소들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성의 인권을 높이고,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그것의 부작용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지금 사회적으로 남성들 사이에선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게 되었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 반대로 기울이려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폭력 무고죄, 거짓 미투인데 유명인의 거짓 미투도 벌써 몇 건이나 발생했고, 온라인 상에는 성폭력 무고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물론 성폭력 무고가 여성들이 실제로 당하는 성폭력 사건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비율이겠지만 소수라는 이유로 다수의 여성을 구제하기 위해 일부 남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감수하라거나 그동안 여성들은 오랫동안 당해왔는데 겨우 몇 년 피해를 본 것 때문에 분노하냐는 식으로 양성간의 대립으로 몰고가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은 아쉽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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