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Art & Classic 시리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유보라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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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해는 커녕 난해하고,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저 이상한 곳에 살고 있던 왕자가 이상하고 웃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엔딩도 다른 이야기처럼 명확한 해피엔딩도 아니고 새드엔딩에 열린 결말이어서 그 당시 접하던 동화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그래서 어린 왕자의 모험이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는 더 이상 어린 왕자를 읽지 않고 나이를 먹었고 사람들이 어린 왕자의 명대사 같은 것을 이야기할 때면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어린 왕자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뭔가가 달랐다. 어릴 적 느끼지 못한 것들이 머리속에 떠오르고, 가슴을 채워나갔다. 물론 생텍쥐페리가 의도한대로 모두 정확히 이해한 것은 아니겠지만 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함의를 찾아내었다. 어린이가 보는 어린 왕자와 어른이가 보는 어린 왕자는 달랐다. 키가 큰만큼 눈높이가 달라졌고 보이는 세상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설레고, 아프고, 애달프고, 슬펐다. 특히 어릴 때는 캐치하기 힘들었던 사랑과 헌신 같은 테마도 새롭게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은 고전 명작과 현재 한국에서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의 합작이라는 컨셉으로 진행되는 아트앤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유보라 작가의 일러스트가 더해진 작품이다. 어린 왕자의 일러스트는 생텍쥐페리가 그린 오리지널 삽화가 가장 유명하다. 어린 왕자라고 하면 누구나 그 거칠고 서툰 느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유보라 작가의 삽화는 거친 느낌의 원작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의 어린 왕자를 선보이며 어린 왕자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미지의 변화는 어린 왕자에 대한 느낌과 소설의 느낌까지 바꾸어 놓는다.


생텍쥐페리의 오리지널 이미지는 어린 왕자의 시크하고 개구진 모습을 잘 살려내었고 전체적으로는 우화스럽고 풍자적인 특징을 살렸다면 유보라 작가의 일러스트는 굉장히 순수하고 동화 같은 사랑스럽고 맑은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어린 왕자의 시크함보다는 좀더 순진하고 순박한 아이 같은 모습을 더 잘 살려서 정말로 '어린' 왕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코스튬도 왕자들이 입는 벨벳 코트가 아니라 평범한 반바지와 티를 입고 있어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런 왕자의 이미지는 어린 왕자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너와 내가 바로 어린 왕자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어서 조금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한편 어린 왕자는 시종일관 슬프고 근심어린 눈을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어린 왕자를 한없이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로 보이게 만드는데 그래서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마치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느끼는 그런 감정들을 우리가 어린 왕자를 보며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계속 쌓여가다가 마지막 엔딩에서 폭발하는데 어린 왕자의 슬픈 눈이 떠올라서 마음이 먹먹해진다. 일러스트의 전체적인 색감도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어린 왕자의 사랑과 따뜻함이 잘 느껴지는 듯 하다.


그림체의 변화와 함께 번역도 그에 맞춰서 따뜻한 느낌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전에 봤던 번역본은 어린 왕자가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높임체로 번역이 되어 있다. 시크하고 도도한 느낌의 일러스트에는 반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울렸지만 순해빠진 이번 일러스트에는 분명 높임말을 쓰는 것이 이미지에도 잘 어울리고 이미지와 어투에 통일성이 느껴져서 좀 더 순하고 착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단순히 일러스트만 새롭게 그려넣은 것이 아니라 그 그림에 맞게 번역까지 꼼꼼하게 신경써서 어린 왕자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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