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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ㅣ 심리학으로 말하다 1
얀-빌헬름 반 프로이엔 지음, 신영경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11월
평점 :

책에서는 음모론을 '비합법적이거나 악의적이라고 인식되는 숨겨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행위자가 비밀리에 합의하여 협력하고 있다는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나 목표를 위해 악의적으로 음흉한 일을 몰래 꾸며서 행했다'고 믿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믿는 것이란 부분이다.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나기 전까진 전부 일방적인 믿음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음모론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음모론은 정부나 국가기관 단위의 거창한 음모에서부터 개인 단위의 작은 일까지 모두 포함한다. 다만 개인적인 차원의 음모론 제기는 주로 피해망상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이다.
음모론이 되기 위해서는 패턴, 행위자, 연합, 적대감, 비밀유지의 다섯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음모론에서는 어떤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며, 지능적인 행위자가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이 행위자는 항상 연합이나 복수의 행위자여야 한다. 개인의 단독범행은 음모론으로 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연합은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사악한 집단이고,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꼬리를 잡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요소를 모두 충족시켜야 비로소 음모론이라고 말해지며 어느 것이라도 부족하면 그것을 무려 음모론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려워진다. 말하자면 음모가 아니라 그냥 개인적인 사기행각이 되버리는 것이다.
지난 10여년의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이런저런 사건들에 대해 음모론이 굉장히 많이 떠돌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바로 지난 총선 때의 부정선거에 대한 음모론이라던지 세월호 고의 침몰에 대한 음모론 같은 것들이다. 국정원 댓글 조작 음모론, 대통령 비선실세 음모론, 검언유착 음모론 같은 것들은 구체적인 실체가 밝혀짐으로써 단순한 음모론에 그치지 않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음모론에 머무르고 있는 사안들도 너무나 많다. 보수 정부 때는 반대 진영에서 음모론을 제기하고, 진보 성향의 정부하에서는 보수 성향의 세력들이 끊임없이 음모론을 떠들어댄다. 하지만 단순한 음모론과 합리적 의심은 따로 떼어내고 구분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모두 음모론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모든게 음모라고 주장하는 글이 온라인 상에 넘쳐난다. 특히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그에 맞춰 언론지형이 일방적으로 기울었고, 정부와 그를 따르는 세력들이 똘똘 뭉쳐서 온갖 편법, 불법, 위법적인 일을 하던 지난 10년 동안의 보수 정권 하에서는 이런 음모론이 고개를 들 수 밖에 없다. 사회가 불투명하고 폐쇄적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음모론을 양산하게 된다. 지금은 그 반대급부로 일베 같은 사이트나 극우 유투버를 중심으로 온갖 음모론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렇게 갈수록 음모론이 더 많아지는 추세처럼 느껴지는데 하지만 저자는 음모론이 과거에 비해 더 많아졌다거나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인터넷과 SNS가 발전하면서 이런 것을 매개체로 음모론이 과거보더 더 많이 널리 퍼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분명 전파되는 속도가 증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믿는 사람의 비율이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느리게 퍼졌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전파되었을 것이라서 전파속도는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요즘 음모론이 더 많아진 느낌이 드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비해 더 빠르게 그런 것들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란 뜻인데 결국 그말이 그말 아닌가?
음모론은 공포와 불확실성을 일으키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특히 그런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강하게 느낄수록 괴로운 사건의 책임을 다른 집단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여기서 음모론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음모론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심리학적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은 일종의 자기보호 본능의 일환으로 불확실하고 위협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위험회피 경향을 가진다고 한다. 뭔가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고 이때 보통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음모론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이기심에 관한 잘못된 믿음'이라고 말한다. 이런 잘못된 믿음은 상황이 불확실할수록 증가한다고 한다. 즉,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이기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에서는 휴지를 사재기하고, 일본에서도 식료품을 사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공포와 불확실성이 음모론을 믿게 만드는 것은 맞지만 그런 감정들이 누구에게나 음모론을 믿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일수록 권력집단을 더욱 지지하게 만들기도 한다. 9/11이후 부시는 미국 대통령 역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부시가 그것을 노리고 9/11을 일으켰다고 그것까지 음모론으로 보기도 했지만 어쨌건 핵심은 공포와 불확실성이 모든 사람에게 음모론을 심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음모론은 사람들이 이미 불신하고 있는 권력과 집단을 향해서만 일어난다. 내가 어떤 집단과 권력을 강하게 믿고 있다면 어떤 불확실성이 끼어들어도 음모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도자가 비도덕적이라고 느낄 때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늘어난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다. 지도자가 음흉하고 비도덕적이니 그런 일을 벌릴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반대로 도덕적이라고 생각되는 지도자에 대한 음모론에는 영향을 덜 받는다. 도덕적인 그 사람이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조국 사태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문재인이나 조국이 도덕적으로 그렇게 흠결이 많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결과론적으로도 당시 조국에게 쏟아지던 의혹이 모두 거짓에 단순한 정치적 공세였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그 당시 얼마나 많은 가짜뉴스가 사실로 믿어졌었나? 심지어 아직도 조국을 세상 더러운 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지도자가 아무리 도덕적이라도 비도덕적인 자들에 의해 음모론이 퍼질수도 있다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책에서는 소위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적인 성향을 음모론과 연계해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한국의 경우와는 조금 달라 보여서 흥미로웠다. 우파는 집단간의 불평등을 기꺼이 수긍하는 성향을 가진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계층간의 대립을 일삼고, 계층구도를 심화시킨 것은 대한민국의 우파들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유도하고 대립하게 만든다. 하지만 극좌파들은 은행가, 재벌, 군인을, 극우파들은 무슬림, 동성연애자, 과학자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무슬림이 아니라 일명 종북몰이가 그것일텐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외국의 연구와 맞는 것도 같다. 어쨌건 저자는 좌건 우건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는 공통점을 보인다고 한다. 이는 음모론이라는 형태로 발현되기 쉽다.
그래서 극좌와 극우진영이라는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극단주의 체제에서 음모론은 흔하게 발생한다. 책에서는 권력을 가진 극단주의 정권은 권력을 잡으면 반대자를 억압하고 자유언론을 탄압한다고 말한다.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유는 음모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과거 냉전시대의 동독이나 소련의 독재자들이 시민들 처형하고 사찰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극단주의 체제의 정권은 어떤 식으로건 정권의 권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음모를 두려워해서 적대적인 국가나 이념, 사회집단에 강도높은 음모론을 퍼트린다는 주장이다. 즉, 정권이 자신의 권력기반이 흔들릴 것을 두려워해서 숙청하거나 견제하기 위해 정권이 음모론을 퍼트린다는 의견인데 일반적으로는 정권에 반대하는 쪽에서 음모론을 퍼트릴거란 상식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독재정권하에서는 빨갱이 종북이라는 음모론으로 무고한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서 사형시키고 감옥에 가두었다. 말하자면 음모론은 권력을 가진 집단을 향해 퍼트리는 것이지만 음모론을 제시하는 쪽 역시 권력일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굉장히 주지할만한 내용인데 음모론을 제기하는 쪽은 어느 쪽이건 권력이라는 것이다. 앞서서 음모론이 성립되려면 개인이 아닌 단체나 집단에 대한 의혹이어야 한다고 말해는데 반대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도 권력이나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령 끊임없이 문재인이 빨갱이고, 종북이고, 그외 말도 안되는 이상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어떤 세력이 그런 음모론을 생산 유포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음모론이란 집단 간 갈등과 강력한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를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다시 한번 짚어야 하는 것은 정권에 대한 합리적 의혹을 무조건 음모론이라고 치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정권을 향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모조리 음모론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정권을 흔들기 위한 권력집단의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촛불혁명이 벌어졌지만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최순실이라는 존재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촛불은 결국 정권을 흔들려는 세력의 음모론이 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정권을 향한 모든 의혹을 음모론으로 보지는 말아야 한다. 저자 역시 실제로 음모가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에 음모론을 줄이자는 말이 부패를 줄이려는 노력을 저지하거나 누군가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뜻은 아니라고 밝힌다. 저자는 음모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국민 개개인이 건설적인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너무나 진부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