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인문학 - 거대한 지식을 그림으로 잘게 썰어보기
권기복 지음 / 웨일북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최근들어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강연도 많고, TV에서는 물론 팟캐스트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도 각종 인문학 강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지식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큰 것도 있을 것이고, 이 정도는 알아줘야 세상 사는데 문제가 없을 거란 생각 때문에 너도 나도 인문학에 빠져드는 것 같다. 실제로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인문학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주목받게 된 것은 그것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기고, 우리가 살아갈 이야기이기에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인문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굉장히 광범위하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인문학이므로 사람이 사는 모든 것이 인문학의 주제가 되기 때문에 인문학에서 다루는 주제도 수없이 많다.


책은 그중에서도 돈과 사랑 같은 조금은 추상적이거나 계급과 자유 같은 사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화, 예술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재미도 있고 알아두면 대화 중에 쓰일 곳도 많지만, 책에서 다루는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이슈는 내용 자체도 지루하고, 어려우며, 자칫 이런 걸로 말을 잘못하면 싸움나기 쉬운 민감한 주제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치혐오와 사상적 갈등이 심한 시기에 굳이 정치적이고 사상적이고 체제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까도 싶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정치적 이념과 사상의 이론적 개념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어설픈 정치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기준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돈에 대한 것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다보면 긴 인생길에서 언젠가 반드시 한번쯤 만나게 되는 주제들이라 평소 이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해두면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인문학은 어렵다. 특히 사상, 철학, 체제 같은 내용이 나오면 더욱 어려워진다.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설명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해할 것도 많고, 때론 외워야 하는 내용도 있다. 처음 듣는 용어가 나오고, 복잡한 설명이 시작되면 깊은 사유를 하기는 커녕 그 내용을 이해하기도 버거워진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는가싶다가도 진도를 나가다보면 어느새 헷갈리고, 아까 읽었던 내용도 뒤죽박죽이 되버린다. 이렇게 되면 무슨 수험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외우고 '공부'를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어느새 책을 덮게 된다. 인문학의 방대한 지식을 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고,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이라도 내것이 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 때 저자가 추천하는 인문학 공부법은 거대한 지식을 그림으로 잘게 쪼개어 보는 것이다. 글자만 빽빽하게 가득찬 책은 어려워보이고 거부감부터 생긴다. 그래서 중간중간 소화가 잘 되라고 한 컷씩 그림을 섞어놓았다. 그림이 들어가면 마냥 어렵게 느껴지던 내용도 한결 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림 그 자체가 부연설명이 되서 내용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또 이미지는 연상작용으로 같은 내용도 더 오래 머리 속에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만화책처럼 모든 것을 그림으로 전달하다보면 내용이 부실해질 수도 있어서 그림은 윤활유처럼 한 컷이 섞어서 인문학의 이해를 도와준다.


요즘은 먹고 살기에도 바빠죽겠는데 무슨 사랑타령이냐며 남녀간의 사랑을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한다. 분명 3포세대, 5포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사람들은 사랑도 결혼도 포기해버리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일본에도 초식남이라는 연애를 포기한 남자들이 있고, 세계적으로 인셀이라는 비자발적 독신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과연 사랑은 할 필요가 없을까? 기원전 고대 이집트 유물에서도 연애시가 발견되었다는데 사랑이란 개념은 매우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발견된다고 한다. 즉, 사랑이 인류의 보편적인 행위이자 감정이란 뜻이다. 그런데 왜 현대 사회에선 인간의 유전자에 세겨진 사랑이란 감정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인가?


사랑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어느 시대에서나 사회 구조가 사랑을 하는데 어떤 식으로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현대는 무한자유의 시대이다. 예전같은 봉건적인 질서나 전통에 의한 결속, 종교의 장악력도 없이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사랑도 결정된다. 그런데 이 무한자유는 무한책임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안정과 가능성, 자유 대신 허무함과 불안, 우울을 안게 되었다. 불확실함 때문에 사랑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망설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 불확실함 때문에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사랑도 선택하게 된다. 말하자면 사랑을 하거나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의 입장이 어떻게 될지 계산을 때리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조건을 보고 연애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꼭 경제적인 측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외모, 성격, 라이프스타일, 직어, 성적기호, 정치성향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어떻게 조건 보고 사람을 선택하냐고 분노하는데 원래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선택에 사회 구조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한번 실패하면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사회구조 속에서 사랑에 빠졌다가 사랑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시간조차 버거워한다. 실패와 아픔은 자아를 좀먹고, 패배주의에 빠지게 만든다. 사랑에 실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요즘엔 진지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보다 그 시간에 자기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나르시시즘의 시대라고 한다.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의 연애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이성의 모습은 사회가 규정해놓은 성정체성에 의해 구축된다. 소위 가부장적 사회에서 말해지는 남성다움, 여성다움이 강조된 사람이 섹시하다고 생각하게 훈련되어져왔다. 그런데 이런 섹슈얼리티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심어놓은 개념이라고 한다. 구매율을 높이기 위해 성적 상징과 소비를 연결시켜 인간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 분위기와 사회구조에 의해 사랑에 대한 이미지와 사랑을 대하는 마음을 조종당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 분위기가 힘들고 어렵다보니 연애도 힘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5포세대, 초식남이 등장하는 것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자발적인 독신, 비혼을 선언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책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굳이 사랑을 해야만 하는지, 그냥 가볍게 즐기는 관계만 맺으면 안되는지 묻는다. 물론 당연하게도 대답은 '그럼에도 사랑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가 벨 훅스는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사랑을 정의했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회비용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합리적 기준과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결국 사랑은 그런 어려운 것들을 모두 초월한다. 그게 사랑이다..라는 결론이다.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공화주의에 대한 내용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개념들이 필요하지만 사랑과 돈에 대한 사유를 할 때는 굳이 어려운 철학이나 개념이 없어도 각자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건 그것을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끼며 자신만의 경험으로 그것에 대해 나만의 관점이 형성되고 그 흔적이 지성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과 사유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지성의 깊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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