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만나는 한국신화
이경덕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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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해서 동화나 만화로 많이 읽힌다.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북유럽 신화나 이집트 신화 같은 것들은 영화나 문학작품을 통해 간간히 접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몰라도 의외로 들어본 이름도 많이 있고, 내용도 아주 생소하진 않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신화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단군신화나 고구려 건국의 주몽신화, 알에서 나온 신라 박혁거세의 건국신화 같은 몇몇 건국신화 외에는 제대로 답변을 하기 어렵다. 우리의 것이지만 정작 한번도 제대로 배우거나 그다지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몇 년 전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라는 작품에서 다루어진 신화를 읽은 것이 한국 신화에 대해 들어본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알지 못한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한국에는 특별히 신화 같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한국의 신화라는 것을 그다지 많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용을 알고 모르고는 둘째치고 한국 신화의 존재 자체에 대해 들어본바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책에서 수많은 신화들을 접한 후 한국에 이렇게나 많은 신화가 있었는지 놀랐다. 재미있게도 그중 일부는 어릴 적 동화책 등을 통해 읽었던 기억이 있는 것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이 한국의 신화인지 모르고 그저 옛날 이야기나 창작동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접했던 것이다.


저자 역시 같은 말을 한다. 한국 사람들은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것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이유로 일제 강점기와 6.25 이후 서구화 과정을 통해 일본과 서양의 문화가 마구잡이로 들어오면서 한국 사회 내에서 서양 문화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란다. 개인적으로는 아마 한국의 사대주의 성향도 이런 것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문화적 변형이라고 설명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강제적으로 한국의 문화, 정신, 역사가 배척당했고, 전후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서구화에 대한 열망으로 사회 전반에 서구의 정신적인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신화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리스 신화는 지고, 북유럽 신화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화에도 유행이 있나보다. 아마 마블 영화에서 북유럽 신화의 인물과 컨셉이 많이 차용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아시아적 가치도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오랜 시간 세계 문화를 지배했던 서양 문화의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그 대안으로 동양권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신화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던 입장에 있던 한국이 이젠 K-문화를 세계로 전파하는 위치가 되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의 신화를 새롭게 만나보고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지역의 신화는 그 사회의 세계관과 정서, 가치관, 관습 등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신화는 단순히 옛날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의 응집체로 볼 수 있다. 우리의 신화를 살펴본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고, 한국인의 세계관과 정서를 알게된다는 뜻도 된다. 한국인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한국의 신화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우리 문화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 한국의 신화가 많이 남아있지 않고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한국의 종교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화라는 것은 도교나 무교가 어울어진 토속신앙인데 이후 불교와 어울어지며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후 유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조선 시대 때에 억불정책으로 인해 불교서적이 붙태워지고 그와 함께 한국의 신화도 많이 약해진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독교에 의해 한국의 신화는 우상숭배라는 이름으로 배척당한 것은 아닐까 한다. 신화는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 등에 영향을 받는데 이런 종교적 이유로 인해 신화 그 자체가 구습과 미신으로 치부되며 씨가 말라버리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신화 중 가장 특이한 것은 가택신앙이 아닐까 한다.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는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신과 영웅이 활약하는 이야기인데 한국의 가택신앙은 집을 지키고, 부엌을 지키고, 뒷간을 지키는 소박한 이야기이다. 집은 인류 공동체 중 가장 작지만 핵심적인 최소 단위이다. 집은 가족이라는 집단이 삶을 영유하고 거주하는 인간 삶의 토대가 되는 곳이다. 그리고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는 집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된다. 특히 과거에는 집에서 태어나서 집에서 죽는 일이 많았으므로 말 그대로 한 인간의 일생과 함께 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집을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한만큼 집 곳곳을 지키는 가신신앙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집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닐텐데 왜 이런 형태의 독특한 가택신앙이 한국에서만 보이는지는 설명이 없어서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화로의 신인 '헤스티아'나 불의 신인 '베스타'가 존재하긴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다양하지도 않고 문의 신이나 화장실의 신 같은 것은 없다. 한국에서는 집안 곳곳에 발닿고 손길 닿는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있다. 이것은 한국의 신화가 생활밀착형으로 단순히 우주나 죽음과 같은 주제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늘 함께 하는 집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한국만의 정서가 반영된 독특한 신화라고 하겠다.


이처럼 한국의 신화는 생활밀착형으로 이야기가 우리의 생활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영웅의 영웅담이나 신들의 치정 같은 내용이 많은데 한국의 신화는 당시 벌어진 사건들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신화만의 독창성을 가진다. 가령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은 여러 문헌을 분석해보면 당시 신라와 교역을 하던 아라비아 사람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그리고 처용의 아내와 잠자리를 한 역신은 천연두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처용 이야기 외에도 철현도령 이야기에 등장하는 손님들도 천연두를 의미한다고 한다. 외부로부터의 공포를 손님의 방문이라는 이야기로 바꾸어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저자가 말하는 한국 신화의 특징은 여성이 많이 등장하고 큰 활약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등에도 여신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큰 역할을 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남성 영웅이다. 여신은 영웅에게 시련을 주거나 영웅을 돕는 조연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의 신화는 대부분이 여성이고 여성이 세상을 바꾸어 간다. 여성이 활약하는 더럽고 거짓으로 가득찬 세상은 남성들이 만들어낸 곳이다. 저자는 여성을 약자의 상징이라고 말하며 깊게 들어가면 민중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남성 중심의 가치와 편견으로 왜곡되는 세상을 여성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민중의 가치로 살려내자는 의미라는 것이다. 


한국의 신화는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 가치관을 담고 있어서 우리 신화를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생활, 삶에 대해 조금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서양의 신화와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만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신화만이 가진 우리의 정서와 그 신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는 무엇이고,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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