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 × 기억하는 인간 EBS 지식채널e 시리즈
지식채널ⓔ 제작팀 지음 / EBS BOOK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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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e는 2005년에 EBS를 통해 첫 방송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간결하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5분 동안의 짧은 영상 속에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의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쟁점이 되는 문제까지 다양한 테마로 우리가 알고 싶은 이야기, 알아야 할 이야기를 PPT를 하듯 엮어서 알기 쉽게 전해준다. 이 책은 방송으로 접하던 지식채널을 책의 형태로 새롭게 엮은 것으로 '기억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로 기억과 기록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전한다.


기억은 기록을 통해 살아날 수 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희망이 된다


책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희생자,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 노동자, 광주 민주화운동의 기억,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 세월호 4.16기억저장소 등 현대사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국내외의 여러 사건 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책에 수록된 기록들은 사고가 아니라-그것이 돌발적으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이건, 인재라 불리는 이미 예견되었던 사고이건간에- 명백하게 적의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자행된 폭력적이고, 권력에 의해 발생한 비인간적인 사건이 그 대상이다. 책은 아프고 불행했던 역사 그리고 잊지말아야할 잔혹한 기억을 한데 모아 기록해놓고 있다. 그외에도 역사 속 존재로 기억하고 기록한 사람들의 이야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기록들, 삶 속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남긴 일상의 기록들도 담고 있다.


역사는 순환하지만 어느 한 방향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 순환하는 역사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세상은 어느 순간 부딛힐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세상은 역사를 폭력적으로 부수게 된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다. 해방후에는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던 친일파들이 권력을 휘둘렀고, 두 번의 군부독재 시절에는 반공국치의 기치아래 폭력이 정당화되었다. 이명박 박근혜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시대를 선보였고, 소위 진보가 권력을 잡은 현정권 내에서도 보수화된 기득권의 권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에 민주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었다는 노무현 시절이 끝난 이후 이명박, 박근혜라는 새로운 타입의 보수 독재시절로 회귀한 것이 역사가 순환하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세상은 변화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역사는 형태만 바꾸어서 순환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와 과거로 회귀하며 순환하는 역사가 마주하는 시점마다 사회적으로 큰 혼란과 분열,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그 결과 적어도 한국에서는 시간이 아무리 바뀌어도 계속 우리 사회에는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사건이 계속 끊임없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이후 미군정이 들어섰을 때 미국의 이익관계에 따라 한국을 정치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통치하는 과정에서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 일그러진 한국 현대사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그 후로 어떤 형태로건 역사는 순환되었고, 책에는 그 기록들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유신 시절 만들어진 공영방송은 독립성과 공정성을 잃고 당시 독재시절의 나팔수 역할을 했었는데 세월호 참사 보도 때도 똑같은 보도 행태를 보였다. 제주 4.3사건,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2.28민주화운동, 10.16 부마민주항쟁,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등 매 정권마다 자유와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과 독재자들간의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있었다. 정부기관이 특무대-방첩대-보안사-기무사-안보지원사로 5번이나 이름을 바꾸고, 거대보수정당이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개명을 해야했던 이유 역시 역사의 순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의 순환이 반복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또 한번의 아픈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했었다.


지금도 수많은 역사와 기억의 만남이 기록이란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단순히 그 사건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줄기차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강압적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당신은 누구십니까? 불의에 항거하여 희생을 선택한 당신은 누구십니까?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른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런 물음에 우리는 답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 역사의 순환이 다시 나에게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만 한다. 이 기록들은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2020년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다. 50년 전 22살의 한 청년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노동환경은 열악하며,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다. 몇 달 전 쿠팡 물류센테에서 코로나 환자가 집단발생했을 때 뉴스에선 물류 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집중보도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그들은 열악하고, 위험에 노출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2018년 12월 10일 한국발전기술 계약직 근로자 고 김용균씨는 작업 중 석탄이송용 벨트 컨베이어에 끼어 사망했다. 그리고 산업안전사고의 심각성이 공론화되고 김용균법이 만들어졌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사망한지 50년이나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계속 또 다른 전태일, 또 다른 김용균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제멋대로다.
역사학자들이 완벽히 과학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인 역사서를 저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기록유산이다. 기록과정에서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높게 평가받는다고 하는데 과거의 기록이란 이런 형식으로 사관의 입을 빌어 기록되어졌다. 공정성을 위해 왕이라도 실록을 함부로 열람하지 못했고 사관의 내용을 사사로이 발설하면 중형에 처해졌다 한다. 현재에도 우리의 기록 관리제도는 사초 작성 등의 기록 전통을 계승하여 사초처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공평하고, 정확하며,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전리품이라고 말해진다. 승리자에 의해 역사가 멋대로 쓰여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만 해도 5.18폭동, 5.16혁명이 5.18민주화항쟁, 5.16군사정변(쿠테타)로 공식 명칙이 바뀌지 않았던가. 기록자의 주관이 철저히 배제된 '사실'만이 역사의 토대이고, 사실로 쌓은 역사만이 '완전한 기록' '완전한 역사'이다.


우리가 모두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다
- 존 레넌


기록은 때로는 연대와 소통의 의미를 포함하기도 한다. 과거 대학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대자보의 형식이 대표적인 것인데 그것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행위였다. 대자보의 명칭의 기원은 춘주전국시대로 까지 거슬러 가는데 문화혁명의 선전도구로 쓰이면서 현대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대자보에 저항의 의미가 강하게 들어가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면서 대자보는 포스트잇으로 바뀌며 적극적인 의사표시와 강력한 공감의 의미를 표현하는 매개체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해시태그(#)가 그런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온라인의 해시태그는 오프라인의 대자보, 포스트잇으로 이어지며 소통, 지지, 연대를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해시태그가 사회운동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해시태그 행동주의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따라 기록의 형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록의 형태는 대표적인 기록물인 사전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백과사전은 당대 지식을 체계 있게 포괄하는 편찬서로 정의하고 있으며 편찬 방식과 범위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이는 시대에 따라 내용이 검열되고 삭제되는 일도 있다는 뜻이다. 백과사전은 그 자체로 지식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세계 백과사전이 모범이라 불리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백과사전은 활자와 그림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형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종이에 인쇄하는 형식이 아닌 지식을 데이터화 하여 이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쇄된 사전이 온라인 사전에 역전된 것은 단순히 정보량이나 갱신 속도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독자들은 지식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었다. 위키백과에는 누구나가 참여가 가능하며 거기 참여한 전문가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게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100여명이나 있었다. 위키백과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이긴 것은 막강한 지성과, 불특정 다수의 집단지성의 힘 때문이었다.


기억은 기록을 통해 살아날 수 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희망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우리 삶의 자취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


기억은 기록은 단순한 데이터의 보관의 아카이브가 아니다. 역사의 순환과 사회의 진행 속에 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이다. 인간의 잔혹성과 야만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며, 공감과 소통의 표현법이다. 때론 살아남은 것이 자랑이 아니라 죄스러운 일이 됐던 시대를 거쳐오며 기억하는 것은 남은 자들의 도리이자 숙명 같은 것일 때도 있었다. 버락 오바마는 홀로코스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을 추모하며 '기억은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의 신성한 의무가 되었습니다'란 말을 남겼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기억하고, 우리 삶의 자취를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떠올려보자.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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