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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박소현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0년 11월
평점 :

클래식은 어렵다. 어렵고, 지루하고, 난해하고, 축축 처지는 음악이다. 그래서 클래식에는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고, 많이 들어보지도 않았다. 이것이 클래식에 대해 가지는 인식이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괜히 교양있는 척 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져서 거리감이 생기고, 어렵다고 느끼다보니 점점 더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서 듣는 일도 없다. 그렇다보니 아는 클래식도 별로 없고, 들어본 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클래식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지 않지만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TV광고, 게임 등 일상에 스며들어 있고, 내가 들었던 그 음악이, 심지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했던 그 곡이 클래식일 수도 있다고 알려준다. 우린 일상에서 클래식을 자주 듣지만 그것이 클래식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낼 뿐이다. 책에서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어디선가 들어봤던 멜로디를 따라가며 클래식을 찾아보고 음악용어나 작곡가를 몰라서 클래식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클래식에 쉽게 다가가게 도와준다.
단순히 대중문화나 일상에서 접합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찾아서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곡과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도 꼼꼼하게 다루고 있어서 작곡가와 곡에 대한 소개, 그 음악이 작곡된 배경, 작곡가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등 클래식 자체에 대한 지식도 전해주고 있다. 이런 내용이 없이 그저 대중문화 속에서 클래식이 차용되고,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찾아서 나열하는데 그쳤다면 단순한 흥미 위주의 책에 그쳤겠지만 클래식에 대한 기본 지식까지 전함으로서 클래식 음악과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클래식으로 자동차 후진 시 나오는 바로 그 전설의 멜로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소개한다. 지금은 소음 등의 이유로 청소차, 지게차, 화물차 등의 특수 차량을 제외하면 일반차에서는 후진음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입으로 구전되는 전설의레전드이다. 외국에서 먼저 사용되었고 1982년에 국산차에도 도입이 됐는데 당시 기술로는 복잡한 멜로디를 만들 수 없어서 짧고 단순한 단선율의 멜로디를 찾다가 에리제를 위하여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거리에서 들을 수 없지만 예전엔 무려 베토벤의 음악이 소음처럼 취급될 정도로 많이 들리던 멜로디였다.
대중음악에서도 클래식을 샘플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책에는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을 차용한 변진섭의 '희망사항',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삽입한 악뮤의 '오랜 날 오랜 밤'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실제 가요에서 클래식이 들어간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당장 캐논 변주곡만 해도 GOD의 '어머님께'나 양파의 '사랑 그게 뭔데' 등 수많은 가요에서 사용되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에는 비발디의 '사계'가, 휘성의 '사랑은 맛있다'엔 베토벤의 비창이 샘플링 되었다. 클래식을 샘플링 한 곡은 수없이 많고,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단순히 숨어있는 클래식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은 아니므로 우선은 책에 나오는 클래식에 집중해서 보도록 하자.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에게조차 캐논은 너무나 익숙한데 작곡가인 파헬벨의 이름은 처음 들었다. 이 정도의 지명도가 있는 작곡가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어야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이름을 처음 접했다. 파헬벨은 무려 500곡이 넘는 곡을 작곡한 작곡가라고 하는데 17세기에는 엄청난 인기를 누린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캐논 말고는 알려진 곡이 없는 비운의 작곡가라고 한다. 근데 캐논 정도 되는 곡 하나 가지고 있으면 충분한거 아닌가? 캐논 형식이란 하나의 악기가 메인선율을 연주한 후 다른 악기가 같은 멜로디를 똑같이 모방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돌림노래인 셈인데 즉, 캐논 변주곡은 파헬벨이 작곡한 곡의 제목이 아니라 파헬벨이 작곡한 캐논형식의 곡이란 의미인 것이다.
가요만큼 클래식이 많이 삽입되는 대중문화는 바로 영화일 것이다. 영화속 클래식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삽입된 바그너의 '발퀴레 발퀴레의 기행'과 스탠리 큐브릭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으로 사용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클래식 음악이 영화의 영상과 어울어져서 이렇게나 멋지게 사용된 경우가 또 있을까? 오히려 책에 이 두 작품이 빠져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이다. 영화 속에서 클래식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때론 영화 속에 흐르는 그 곡이 클래식인줄 모르고 오리지널 곡이라고 생각하고 듣게 되는 경우도 꽤 있다.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 전날의 악몽'에서 할로윈 마을 주민들이 다 같이 부르는 노래에서 '디에스 이레'의 멜로디가 계속 반복된다. 영화를 몇번이나 봤었지만 이것이 클래식곡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디에스 이레'는 중세 시대 무반주의 단선율로 남성 수도사들이 라틴어로 부르던 '그레고리안 성가' 중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한다. 이런 출신의 곡이니 멜로디를 들어도 알리가 없다. 이 곡은 죽음과 멸망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는데 그래서 영화 속에 잘 어울어져서 멋지게 표현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데 하루키의 소설이나 수필집을 읽으면 가끔씩 클래식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작이자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작품인 '노르웨이 숲'에는 브람스의 '교향곡 4번'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나오코가 좋아하는 곡이라는 설정인데 책을 읽을 때만해도 그냥 흘려넘겼는데 교향곡 4번은 브람스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작품으로 매우 비탄적이고 어두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마치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브람스의 우수에 젖은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하는데 이러한 설명을 듣고 나니 나오코가 이 곡을 좋아한다는 설정이 이해가 되고, 나오코의 앞 날을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실제로 브람스는 스승 슈만의 아내를 동경하며 40년간을 미망인이 된 클라라 슈만을 지켰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소설속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와 오버랩된다. 하루키는 나오코가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좋아한다는 짧은 한줄의 문장으로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 그리고 나오코의 미래까지로 압축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