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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 1,000년을 하루 만에 독파하는 최소한의 로마 지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음식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의 정서가 담겨있다. 역사나 시대상황, 사회 분위기에 따라 그 시기, 그 나라의 음식 문화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음식에는 역사와 시대정신이 담겨있는 셈이다. 일례로 요즘 한국인들은 빨간맛에 미친 사람들 같다. 죄다 매운 맛에 열광하고 더 매운 것을 먹기 위해 애쓴다. 흔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매운 것을 먹는다는 말을 하는데 이렇게 매운 맛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결국 지금의 한국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회이고, 그것을 제대로 풀만한 다른 창구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유튜버들이 먹방을 통해 매운맛 챌린지를 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번지면서 매운 맛이 소위 K푸드로 해외에까지 소개되고 있다. 일인 미디어라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전세계의 음식 문화를 주도한 것이다. 이렇게 음식이 유행하고 퍼져나가는데는 그 시대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처럼 로마인들의 식문화를 분석하면 로마 제국이 어떤 나라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무엇을 먹고, 얼마나 먹었으며, 왜 그렇게 먹었는지를 조사하면 로마인들이 정치와 경제, 군사력을 발전시키며 1000년이 넘는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로마사람들은 빵, 와인, 올리브에 미친 사람들이란 표현을 썼다. 그리고 로마인들의 입맛은 제국 건설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로마 제국의 부흥의 원동력을 로마인들이 먹었던 음식으로 알아보는 재미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로마인들의 주식은 주과 빵이었다. 없던 시절에는 죽을 먹고, 부유해지면서 빵을 먹었다. 식사 때마다 와인을 마셨는데 물 대신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올리브 오일로 요리를 하고 일리브 피클을 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또 굴을 엄청나게 먹어서 기원전 세기에 굴 양식장을 운영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음식들도 많이 있지만 우선 로마인을 대표하는 음식 4대장만 보더라도 로마의 식탁은 신토불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식인 빵을 만드는데 쓰이는 밀과 보리는 북아프리카와 이집트에서 가져왔고, 와인도 이탈리아 수입품이었다. 이탈리아만으로는 수요가 부족해서 스페인에서까지 대량의 포도주를 들여왔다. 우리의 김치 같은 개념인 기본 반찬 올리브도 북아프리카산이었고, 로마 상류층의 특식이었던 굴은 영국에서 가지고왔는데 그 먼길을 신선도를 유지하여 배송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생선 젓갈인 가룸은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배로 수입하고, 햄과 소시지는 프랑스, 고수는 스페인, 후추, 생강 계피 등은 인도와 아라비아에서 실어왔다. 우리 식탁이 중국산으로 뒤덮혔다고 뭐라고 하는데 여긴 그런 수준을 넘어선다. 로마의 식탁의 거의 모든 음식이 수입산인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져온 싸고 질 좋은 재료들로 풍성하게 식탁을 채웠는데 기원전 3~2세기 무렵에 이미 세계화를 이룩한 셈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생산과 운송, 판매에 로마의 자본과 영향력이 작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처음부터 로마가 이렇게 먹은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없이 살땐 죽으로만 끼니를 떼웠지만 제국의 발전과 함께 식탁의 영광이 채워지게 되었다. 로마인의 식탁은 전쟁과 개척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고 전리품이었던 것이다.
로마 제국은 몇 번의 큰 전쟁을 기점으로 크게 팽창하는데 그 전쟁을 기점으로 특정 영토를 로마의 수중으로 넣고, 식탁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로마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빼앗은 영토의 특산품을 먹게 되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책에는 교역으로 값싸고 품질좋은 식재료를 수입했다는 식으로만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의 기억 때문에 영토를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면 강제로 수탈당하는 것으로 인식했는데 여기서는 수입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로마는 정복지에서 강제로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교역을 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로마는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어서 주식인 빵을 만들 수 있는 곡식을 시장가보다 싸게 공급했고, 나중에는 무료로 배급했다. 우리가 기초수급자에게 정부미를 지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처음에는 곡식을 나눠주다가 나중에는 아예 빵으로 지급했다. 로마 인구 중 최소 30~50%가 무상급식을 했다고 하는데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이 훗날 로마 제국의 쇠퇴의 원인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당시 빵을 만드는 것은 중노동이었는데 밀 껍질을 벗기고, 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반죽해서 굽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처음 빵을 먹기 시작하면서는 이런 과정을 모두 여자가 도맡아 했는데 점점 빵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전문적인 제빵업자가 나타났고 집에서 만들어 먹던 빵을 전부 사먹는 형태로 문화가 바뀌었다. 이는 여성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여성들은 장사를 하면서 집안일을 이끌었다고 한다. 복지나 여성 인권적인 측면에서 로마는 좀 진보적이었던 것 같다.
로마의 복지제도는 무상빵급식 뿐만 아니라 와인, 올리브오일, 소금도 무상급식의 대상이었다. 권력자와 부자들이 무상으로 내놓은 재화를 나누어주던 것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는 공공복지 제도인 '아노라'로 발전했다고 한다. 문제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게된다고 시민들이 무상복지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요구가 과도해졌고, 부자들의 기부처럼 보이는 재화가 사실은 상당부분이 세금에서 충당되고 있어서 국가기반 전체를 흔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후 로마의 경제 시스템이 몰락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음식이 아니라 식습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로마인이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로마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죄다 우리나라 양반집에 있는 보료의 팔걸이 같은데 팔을 걸치고 비스듬히 누워서 청포도를 따먹는 장면이 꼭 나온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먹으면 소된다고 욕을 먹었을 자세다. 로마인들도 항상 그렇게 먹는 것은 아니란다. 잘 차린 저녁식사나 손님을 초대해서 먹을 때 그렇게 어중간하게 누워서 먹었다고 한다. 비스듬히는 좀 사는 사람들의 파티 포즈인 것이다. 그런 포즈로 식사를 한 것은 고대 아시리아 왕조에서 시작된 것인데 그것이 고대 그리스를 거치고 돌고 돌아 로마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러니까 로마만의 문화가 아니라 고대 지중해의 풍습 같은 것이었다.
우리처럼 수저로 떠먹거나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손으로 집어먹는 음식은 바닥에 놔두고 누워서 집어 먹는 것이 가장 편하다. 베개에 비스듬히 기대고 누워서 과자 하나씩 집어먹으면서 만화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게 얼마나 편안한 자세인지 금방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먹으면 소화도 더 잘된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는데 어쨌건 그렇게 기대서 먹는게 편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먹었나 싶었지만 정작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한다. 허무하다.
또 하나 로마인의 식습관에 대한 소문 중 흥미로운 것이 식사를 하고 더 먹기 위해 토하고 또 먹고 했다는 것인데 요즘에는 살이 찌는 두려움 때문에 먹고나서 토하는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지만 여긴 더 먹으려고 토한다고 한다. 술을 더 마시려고 토하고와서 다시 달리는 사람은 가끔 있지만 더 먹으려고 토하다니.. 그런데 이게 사실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그만큼 로마의 향락과 사치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온갖 산해진미를 공수해오니 그것을 다 먹기 위해 먹고 토하고 먹기를 반복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반전은 이런 향락과 사치 때문에 로마가 쇠퇴하고 멸망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말기로 가면 그 말이 맞을수도 있지만 로마의 전성기 때에는 오히려 이런 사치와 향락 때문에 전 세계에서 귀한 물자가 로마로 쏟아져들어오면서 오히려 산업이 발전하고, 문화가 융성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면서 300년 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니 로마 멸망의 원인을 상류층의 사치와 향락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겠다. 사치와 향락이 로마 경제의 발전을 촉진했다니 반전의 연속이다.
음식과 식문화로 역사를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 로마의 발전의 역사와 로마 식탁의 변화가 궤를 같이하며 바뀌어가는 것이라던지, 하나의 주식이 사회 전반의 문화를 바꾸어놓고, 경제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단순히 연표를 외우며 이러한 사건이 있었고, 이렇게 발전했다라는 것에서 그치는 역사가 아니라 어떻게 겨우 음식 하나가 어떻게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사회를 바꾸어 갔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의 이면을 톺아보며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