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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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온라인에서 '시체청소부'라는 용어를 가끔 보게 되었다. 관련 종사자가 자신이 일하며 겪었던 일을 온라인에 게시글로 올리기도 하고 뉴스 등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고, 관련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해서 이런 일과 단어가 생소하지 않게 다가왔다. 시체청소부란 말보다는 주로 특수청소부란 순화된(?) 말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직업을 소개하고 검색할 때에는 '고독사청소, 시체냄새제거, 시체악취제거'라는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표현이 사용된다. 독거노인이 사망한지 몇달만에 발견되었다거나 생활고를 못이기고 유서를 써놓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하는 뉴스를 심심치않게 보게 된 요즘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차 이런 일의 수요는 많아질 것 같다. 고독사, 자살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저자는 자신을 특수청소부라는 표현대신 유품정리사라고 말한다. 모두가 외면하고 혼자 세상을 등지게 된 사람들의 마지막을 보듬어주는 일을 하는 유품정리사.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진 나 역시 '특수청소'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있었고 '방청소'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이 일을 보고 있었다. 방을 청소하고, 물건들을 버리고, 죄송한 표현이지만 사체를 정리하는 일. 실제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기에 이들의 업무가 '청소'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 비인간적인 인식인 것 같았다. 슬프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안쓰럽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그들의 유해나 유품들을 '청소'해야할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는 쓰는이가 없는 물건이지만 단순히 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한때 누군가가 사용하던 손때 묻은 소중한 물건이었고 그 유품을 정리하는 것이란 식으로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 책은 오랜 시간을 유품정리사로 일해온 저자가 유품정리사로서의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주위 사람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된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이다. 솔직히 누군가의 죽음을 타인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며, 그저 '쓰레기'를 '청소'한다는 생각을 하던 내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통해 삶의 의미를 배우고 인생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는 조금은 심각한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책에는 수많은 각자의 사연과 수많은 죽음, 남겨진 유품의 의미들이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가지게 되는 마음은 원망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 원망은 세상을 향한 것보다는 자신과 가까웠던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원망이 많을 것이다. 가장 믿고 힘을 주길 바라던 사람, 즉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원망인 것이다. 보통 이런 원망은 상대를 위해 헌신하였는데 그 마음이 적의가 되어 돌아오거나, 자신의 호의를 상대방이 당연시 여길 때 생겨난다. 일방적으로 흐르는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을 가지게 될 바엔 차라리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낫다고 한다. 상대가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주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유품 중에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물건이 나올 때가 있다고 한다. 새 것이지만 그것을 사용해주는 주인이 없다면 그것은 버려져야 할 물건이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아무 의미가 없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자 나에게 꽃이 되듯 내가 내 물건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건 아무리 새 것이라도 쓰레기와 다름없다. 새것인채로 놔두는 것보다 그것을 만지고, 애정을 주고, 손때를 묻혀가며 사용을 해주는 것이 물건의 입장에서도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그것이 물건이건, 자신의 몸이건, 누군가에게 보내는 사랑의 마음이건 다 똑같다. 쓸 수 있을 때 써야하고, 아끼지 말고 애정을 표현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사용하지 못한 물건은 쓰레기가 되고, 전하지 못한 마음은 갈곳을 잃고 원망으로 변하게 되니까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순간을 살아야 한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죽음과 죽음 그 이후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많은 경우 아무 연고도 없이 고독사를 하거나, 사고사를 당하거나 삶의 빛을 잃고 스스로 마지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론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코끼리는 죽기전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아가서 그 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한다고 하는데 마치 그것처럼 살아있으면서 주변을 정리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며 혼자 살게된 할머니는 방을 구하러 온날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내가 나이도 있고 여기서 살다 보면 저세상에 갈 수도 있는데…… 나 여기서 죽어도 돼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줄 거액의 유산을 자식들이 찾기 쉽게 수의 양말 속에 넣어둔채 저혈당 쇼크로 생을 마감한 에피소드.


자식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말을 하는 어른들이 간혹 있다. 아니 꽤나 많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혼자 살다 가신 분을 몇분인가 봤는데 그게 과연 자식을 위한 일일까? 자식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혼자 나가 살다가 임종을 보지도 못하고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의 마음은 어떨까? 마냥 편하기만 할까? 그건 자식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용하지 못한 물건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사랑을 전하지 못한 시간은 되돌리지 못하고, 전하지 못한 말은 세상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옆에서 부대끼며, 얼굴을 보고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관계란 의미가 없다. 원망의 마음으로 죽음을 선택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라고 강조한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을 안고 떠나고, 남은 사람에게도 사랑한 추억이 시간을 넘어서 마음 한 구석에 남게 된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자. 그것이 이름모를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의 기억에서 내가 배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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