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을 걷다
이경재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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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읽어보면 소설의 무대가 중요하게 작용하거나 배경이 인상에 깊게 남는 소설이 있다. 가령 빨간머리 앤에서 초록 지붕 집과 기차역, 기쁨의 하얀길, 유령의 숲과 같은 공간은 단순히 하나의 에피소드가 일어나는 이야기의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앤의 성격과 개성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이용된다. 이처럼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전개되는 무대이지만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시대의 변화, 사회비판, 인물의 심리 등이 투영되는 또 하나의 캐릭터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공간은 인물과 떨어트려놓고 생각할 수 없고 사건과 한 셋트로 취급되기도 한다. 공간과 인물과 사건은 서로 얽혀서 하나의 작품을 구성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 동안은 문학 연구에 있어 공간은 그리 중요하게 취급받지 못했었는데 작가는 이 책에서 39편의 한국현대문학을 공간들에 촛점을 맞춰서 작품의 의미를 해석한다. 특히 실제로 걷고, 발을 디딜 수 있는 현장감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설에 나오는 장소를 텍스트에 한정된 배경이 아니라 실제 공간으로 이해하면 작가가 그 공간을 어떤 의미로 썼는지 새롭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1906년 개화기에 나온 이인직의 '혈의누'부터, 2008년작 권정생의 '랑랑별 때때롱'까지 100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한국현대문학을 균형있게 꼽았으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도 북촌, 포항, 안동 원촌, 봉평, 경주, 제주 등 전국 각지를 두루 담고 있고, 캘리포니아, 오사카, 프랑스, 도쿄, 가마쿠라 등 해외의 장소도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김동인의 '감자'의 장소인 평양을 제외한 모든 곳을 직접 찾아가 답사하고 사진으로 담아서 책에 실어놓았다. 책에서 소개한 소설 중 최근의 작품들은 생소한 것도 몇 작품이 있다. 하루키나 베르베르 같은 외국의 인기 작가의 작품을 선호하여 상대적으로 한국의 현대 문학은 소홀히 했던 탓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아동용 소설을 제외하면 크게 주목받는 한국 소설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읽어봤던 예전 작품들도 대부분 중고등학교 때 수능을 준비하며 수험용으로 '공부'를 위해 읽었던터라 문학작품을 시험용으로 분석하며 이해했지 제대로 읽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육사의 '광야'의 의미라거나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빼앗긴 들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식으로만 작품을 접하고, 소설 속의 장소를 상징으로만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예전에 암기식으로 이해하고 외웠던 내용들을 조금 더 폭넓게 해석하고 작가가 장소에 그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과정을 쫓아가며 작품 외적으로 그 장소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한다.


각각의 내용에는 소설 속 무대가 되는 실제 장소에 대한 배경설명과 현재의 모습, 그 공간을 묘사한 작품의 인용, 작가의 삶에 대한 설명, 작가가 쓴 소설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세계관과 작가의 정신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공간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작가의 가치관과 그 소설을 쓸 때의 시대정신 등이 그 공간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그 공간이 작가의 삶의 궤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작가가 그 글을 쓸 무렵 그 공간을 보며 느꼈을 심리는 어떠했을지, 작가에게 그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지와 같은 다양한 관점으로 작가와 공간, 소설을 하나로 엮어 분석한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그려낸 공간은 실제 역사적 공간의 성격과 일치하게 그려낸 경우도 있고, 자신이 어려서부터 살던 곳의 이미지를 소설속에 녹여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작가가 보고 거닐던 공간의 풍경을 우리는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만약 그곳에 가면 작가가 보고 느꼈던 그 풍경의 공간을 직접 체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읽어내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실제 그 공간의 역사적 의미와 작가가 그곳에서 살았던 삶의 이력을 따라가다보면 현실의 공간이 소설의 공간으로 표현된 의미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또 어떤 소설의 배경은 일제강점기나 한국 전쟁 같은 민족사의 비극과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된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이미지화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배경 그 자체가 소설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기도 하고, 공간 속에 아픈 역사를 겪으며 살아온 민초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이야기가 벌어지는 무대 그 이상으로 이야기 자체를 담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인지, 그 메세지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졌는지, 그 공간은 작가의 실제 인생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작가와 작품, 공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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