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열면 철학이 보여 탐 그래픽노블 1
쥘리에트 일레르 지음, 세실 도르모 그림, 김희진 옮김, 김홍기 감수 / 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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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란 말의 정의를 찾아보니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복식을 뜻하는 말로 원래는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었던 유행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패션이라고 하는 것이 옷, 의복을 일컫는 대명사라고만 생각했는데 단순히 옷을 뜻하는 의미가 아닌 변화와 유행을 뜻하는 것에 방점이 찍히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의미의 패션이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때는 몇 세기에 걸쳐 사소한 변화만 있을 뿐 기본 복장에서 크게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변화가 없으니 패션, 옷의 유행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던 것이다.


14세기가 지나서야 패션, 옷의 유행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과거에는 단순히 몸을 보호하고 알몸을 감추기 위해 둘렀던 천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옷의 개념이 변화한 것이다. 이는 시대정신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패션, 유행이란 일시적인 것이 지배하는 것으로 소비현상이지만 경제적 반응이 아닌 미학적 행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인 행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근대 사회에 들어 패션이 탄생한 이유를 세가지로 꼽는다. 과거의 전통보다 현재의 새로움을 더 가치있게 여기고,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쾌락과 유혹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옷이란 것의 개념이 헐렁한 천조각으로 몸을 감싸기만 하던 것에서 육체의 매력을 드러내며 자신의 개성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 것이 근대에 들어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 것과 맞닿아 있다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패션은 관습의 혁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달라지고, 그 욕구가 패션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패션에는 당시의 시대정신과 사회성이 담겨있게 된다. 유행하는 패션을 모두 실용적인 이유나, 미학적인 이유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이 유행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것도 많이 있는데 그것은 생존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의해 유행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션을 살펴보면 그 사회와 사람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시대와 사회의 철학이 패션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철학(유행)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과 차별화 되기 위해 만들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모방하며 유행이 퍼져나가게 된다고 한다. 패션이 계급을 상징하는 것이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차별화되기 위해 계속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가난한 사람을 계속 그것을 모방한다. 겉모습을 비슷하게 해서 부자처럼 보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새로운 유행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 그저 업자들이 돈을 벌어먹기 위해 새로운 패션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패션은 상류층이 하류층과의 간격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하류층의 신분 상승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라니 의외이고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문제는 패션이 계급을 상징하는 시간은 아주 짧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겐 패션으로 신분 상승하려는 욕망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한때 등골브레이커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노스페이스나 롱패딩 등이 유행하면서 유행하는 비싼 옷을 아이에게 사주기 위해 부모의 등골이 휘어진다는 씁쓸한 세태에 대한 풍자가 담긴 말이었다. 브랜드 간의 가격차도 크고, 같은 브랜드 내에서도 고가의 제품을 입어줘야 그야말로 '가오'가 살기 때문에 옷으로 계급이 나뉘어졌었다. 이런 현실을 떠올려보니 패션이 계급을 나누기 위해 생겨났다는 말이 납득이 된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는데 앞서서 패션은 자신의 '개성'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처럼 개성시대를 목놓아 외치는 때도 없다. 그렇게 개성을 중요시하고 유니크한 것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유행에 굉장히 민감하여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몰개성'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어떤 연예인이 어떤 아이템을 하고 나오면 바로 완판이 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철학자 '르네 지라르에'는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가 민감하게 최신 유행을 따르는 것은 욕망 충족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는데 말하자면 욕망을 모방하려는 심리가 유행을 따르려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나 자신의 욕망이 아닌 다른 사람을 따라 다른 사람의 욕망대로 옷을 입는 것은 맞는데 아무나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다. 르네는 우리는 우리가 동경하는 모델의 욕망을 모방한다고 말한다. 선택받은 누군가의 우월성을 따라함으로써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표출되는 것이란 설명이다. 쉽게 말해서 유명 연예인을 따라하면서 자기도 그런 유명 연예인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광고에서 제품보다 모델을 앞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모델을 내세움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 가진 유명세를 구매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열광적인 패션의 변화는 주로 여성들에게서만 보인다. 남성 패션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반면 여성들의 패션은 굉장히 자주, 많이 변해왔다. 워너비가 되고 싶은 욕망은 남성에게도 있을텐데 왜 패션은 여성의 전유물이 된 것일까? 과거에는 남성들도 패션을 열광적으로 즐겼지만 18세기 말이 되자 남자들은 액세서리를 포기하고 실용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심리학자 '존 칼 플루겔'은 남성성의 포기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가방, 보석, 하이힐 같은 패션은 현재는 여성들이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는데 만약 남성들이 이런 것들을 포기했다면 여성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봐야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여성성을 포기하고 남성성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남성성의 포기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쨌건 이 시점부터 남성들은 자신을 꾸미고 신체를 드러내며 자신을 표현하는 욕망을 억누르고 대신 여성을 관찰하는 욕망으로 변했다고 한다. 표현하는 욕망에서 관찰하는 욕망으로의 전이. 그리고 남성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욕구가 억압되자 억압된 욕구를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여성을 향해 분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도 남자들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비난하는 일이 많은데 정작 그것을 즐기면서 비난한다는 점에서 관찰의 욕망과 억압된 욕구에 대한 공격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나니 남자들의 이중적인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여성들이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고 이는 남편의 경제적 성공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내가 화려한 옷을 입고 꾸미는 것은 남편의 노출 욕망을 대리충족시키는 것과 동시에 남편을 대리만족 시켜준다고 한다. 즉, 남자는 사회적 지위에 맞게 어둡고 심플한 수트만 입게 되는데 그래서 꾸미고 싶은 욕망을 여자에게 투영해서 여자가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아내가 화려하게 꾸밀수록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는 것이라서 여자는 트로피 와이프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만 패션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는 썰.


또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여성이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려는 의지가 치장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낮고, 직업도 가질 수 없고, 노동에 배제되어 돋보일 수가 없으므로 자신을 꾸미는 것으로 돋보이려는 심리가 있다는 썰이다. 패션이 여성에게서 거세된 직업적 지위를 대신한다는 주장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듣는다면 분노할 이야기겠지만 과거의 남녀간에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의 철학적 논리이므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런 성차별이 사라지고 여성이 사회 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즘에도 여성들은 꾸미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아마도 사회가 만들어낸 성역할의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그런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서 예전의 여성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까지 이어져내려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패션을 여러가지 관점으로 읽어내며 단순하게 생각했던 내용들 속에 담겨있는 패션의 역사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철학적 담론들을 살펴본다. 각각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개념을 반영하여 인문학적으로 패션을 생각해보게 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만화로 되어 있어서 읽기도 편하고, 패션에 숨어있는 메세지를 읽어내는 시도도 눈여겨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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