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밤의 클래식 - 하루의 끝에 차분히 듣는 아름다운 고전음악 한 곡 Collect 2
김태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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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느닷없이 트롯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거의 2~30년 전에 유행하던 장르였고, 최근에는 나이가 많은 장년층에게만 소비되던 음악이었는데 지금은 트로트를 듣지 않던 2030층도 열광하며 거의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트롯 열풍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아마 음악이 어렵지 않다는데 있을 것 같다. 음악적으로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따라부를 수 있고, 멜로디나 가사가 우리 정서와 잘 맞아서 때론 흥겹고 때론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쉬운 음악이라는 것이 트롯의 굉장히 큰 장점이라고 하겠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다가도 막상 한두번 들어보면 쉽고, 감성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장르가 클래식이 아닐까 한다. 일단 클래식이라고 하면 상당히 어렵고, 지루하고, 고루하고, 재미없다는 느낌부터 떠오른다. 용어들도 어렵고, 사용되는 악기들도 대중음악에서 흔히 듣던 악기기 아니라서 어딘지 어색하다. 자극적인 빨간맛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슴슴한 평양랭면을 먹으라는 식이다. 그리고 클래식은 그 역사가 오래되고 양식도 다양해서 각각의 이론적 지식이 없으면 뭐가 뭔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클래식은 트로트나 락음악처럼 아무런 지식이 없어도 신나게 들을 수 있는 장르는 분명 아니다. 클래식은 음악이란 느낌보다는 예술이란 느낌이 강해서 아무래도 거리감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이런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클래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금새 포기하게 된다.


국내에서 유명한 클래식 음악은 곡의 배경보다는 작품 자체에 의미가 부여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이나 작곡가와 관련된 재미있는 뒷이야기는 거세되고 조성과 형식 등 이론적인 음악 개념에 함몰되어 음악을 읽으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다. 이 말은 음악 그 자체를 즐기기보단 이론으로써 음악을 이해하고 분석하려 한다는 의미다. 많이 들어본 유명한 곡이라 친숙한 마음에 그 음악에 관심을 가져보지만 정작 어려운 전문 용어와 이론적 개념으로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초짜들에게는 난해하게 들릴 해설을 해서 가뜩이나 어려운 클래식을 대중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한국에서 소위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고상하고 잘난척하는 엄숙주의와 형식주의가 만든 문화행태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비판하며 어렵고 난해한 음악 이론을 적용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로 클래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매일 하나의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컨셉으로 총 90곡의 음악을 골랐으며 모두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각각의 음악에는 그 음악이나 작곡가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캐치프레이즈 같은 소제목이 달려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타이틀이라서 타이틀만으로 그 음악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를 가져온다.


헨델, 비발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멘델스존 등의 비교적 유명한 작곡가도 있고 베버, 베를리오즈, 텔레만, 트르티니, 뒤카, 패츠트, 구바이둘리나 등의 개인적으로 조금은 생소한 작곡가도 소개하고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클래식 음악 연대와 책에 소개한 클래식 작품 목록 표기법 그리고 클래식 음악 용어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별히 몰라도 책을 읽는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상식적인 측면에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클래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흔히 관련자들이 클래식 작품에 대해 해설할 때 말하던 그런 내용들은 거의 없다.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신변잡기나 그 음악이 쓰였던 영화 이야기나 곡의 타이틀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 음악을 차용한 음악 이야기, 음악가의 에피소드, 음악가가 살았던 시대분위기, 가사에 숨어있는 내용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클래식 초심자인 우리는 클래식을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익히려고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기 위해 듣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에 얽힌 수많은 에피소드는 그 음악을 풍성하게 만들고 큰 재미를 준다.


단순히 에피소드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듣기 위한 감상팁도 전수하고 있어서 어떤 부분을 신경쓰고, 어떤 곳에 주의해서 들으면 좋을지도 소개하고 있으며, 그 음악이 담고 있는 의미와 음악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 등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음악적으로도 그 음악을 잘 캐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또 QR코드를 통해 출판사 홈페이지에 각각의 음악을 유튜브로 볼 수 있게 데이터베이스화 해놓아서 따로 찾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편리하게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추천하는 음반도 소개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연주하는 연주자에 따라 원곡을 다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음악이라도 연주하는 음악가, 오케스트라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같은 가요라도 노래를 하는 가수에 따라 노래가 다르게 들리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초심자는 그런 차이를 잘 못느끼겠지만 저자가 추천하는 음반으로 그 음악을 들으며 스탠다드 같은 기준점 같은 것을 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 전까지는 직접 공연장에서 연주가들이 연주를 하고, 가수들이 노래를 하는 장면을 보며 관객은 음악가와 교감하며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음악을 경험했지만 언택트 시대에는 보고 경험하는 체험으로서의 음악감상은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외적으로 숨어있는 이야기를 통해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스토리가 담긴 클래식은 비대면 시대에 걸맞는 음악 감상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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