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정복한 식물들 - 인류의 역사를 이끈 50가지 식물 이야기
스티븐 해리스 지음, 장진영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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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식물은 인류의 주요한 식량원이 되었다. 수렵 채집 시대에는 식량이 풍족하지 않아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지 못했지만 농경생활을 통해 식량이 많아지며 인구가 증가했다. 농경이 시작되며 공동체는 더욱 커지고, 도시국가가 탄생했으며, 잉여 생산물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회계와 문자가 만들어졌고, 복잡한 통치 조직과 제도가 만들어지며 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식물을 정복하면서부터 급속도로 바뀌었고 식물은 인류의 역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식물은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저자는 식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의 삶의 영역은 없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곳에까지 식물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식물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인간은 인류의 삶에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특징을 지닌 식물을 선택적으로 재배해왔다. 식물의 영향력이라는 것도 인간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영향력인 것이다. 그래서 식물의 영향력은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문화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지어졌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식물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이다. 보통은 인간의 특정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물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고 있는데 관심을 끌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관심이 멀어지기도 한다. 그 욕구와 관심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세계사의 중심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꾼 50가지 식물들을 소개한다.


책의 제목처럼 총 50가지의 식물을 다루고 있는데 세계사에 등장한 시대순이나 지역별, 종류별 구분 없이 무작위로 소개하고 있다. <세계를 정복한 식물들>이라는 제목 때문에 세계사의 시대순으로 그 시대에 영향을 미친 식물이나 특정 식물로 인해 발생한 사건과 역사의 변화 등을 소개하는 내용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꼭 그런 내용은 아니다. 가령 향신료의 왕 후추는 유럽과 아시아의 초기 무역상품 중의 하나로 향신료가 부의 축적과 상실, 제국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알아본다거나, 네덜란드의 과도한 튤립에 대한 투기와 튤립 시장의 붕괴로 금융버블이 유럽에 끼친 영향을 알아본다는 식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식물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하는 세계사의 측면보다는 식물 하나하나의 가치에 대한 정보 전달에 집중하여 설명하고 있다.


세계사의 측면이 아닌 진화와 유전학적인 측면에서 소개되는 것이 배춧속 식물과 완두이다. 배춧속 식물은 양배추, 케일, 브로콜리, 콜라비, 순비, 겨자 등 재배품속이 아주 다양하다. 이 식물들은 품종개량, 의학, 전쟁 분야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시기에 여러 문화권에서 배춧속 식물의 부위를 선택적으로 개량하다보니 재배품종이 다양해진 것인데 지금은 식용 뿐만 아니라 기름과 가축 사료의 주원료로도 조명받고 있다고 한다. 품종개량에 의래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배춧속 식물이다. 완두는 멘델과 다윈에 의해 진화와 유전학의 연구에 활용되었다. 멘델은 완두를 선택하여 서로 다른 품종의 완두를 교배하는 실험을 진행했으며 그 실험에서 어떻게 하나의 특성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 어떻게 이 특성을 조잘할 수 있는지를 밝혀냈다.


고흐는 해바라기의 화가로 해바라기 그림을 자주 그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흐는 물론 사람들은 이 해바라기를 참 좋아하는데 과거에는 해바라기가 진귀한 관상용에 지나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가는 해바라기를 키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7.3미터나 되는 해바라기를 키워낸 식물학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해바라기는 관상용이나 예술작품의 소재로만 사용되었는데 해바라기씨가 정확한 수학적 계산에 따라 이중나선형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해바라기씨는 제한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137.5도의 각도로 나선형을 이루며 배열되는데 이런 배열은 솔방울과 파인애플 같은 식물에서도 발견된다. 식물이 식용이나 관상용이 아닌 수학적 가치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다.


목화와 사탕수수는 노예제를 부추긴 식물이다. 목화는 미국 남부와 영국의 연결고리였다.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에서 목화를 재배하고 수확하여 영국의 면업지대의 공급자에게 면화를 공급했고, 이렇게 탄생한 면제품은 전 세계의 욕구를 만족시켰다. 잘 알다시피 미국 남부의 목화밭에서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끌고와서 노예로 일을 시켰고, 영국에서는 노동자가 노예처럼 일을 했다. 사탕수수의 역사도 노동력 착취와 환경파괴로 얼룩져있다. 콜럼버스가 사탕수수를 가져오자 그 가치가 알려졌고, 영국의 지주들은 아프리카 노예를 불러들여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에 사는 원주민들이 착취당했고 원주민 200만명 중 200명만이 살아남게 된다. 말그대로 몰살당한 것이다. 그리고 비인륜적이고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이 성행하게 되었다.


식물은 문명의 탄생에서부터 인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생명의 양식이자 기호식품, 약품, 사치품, 유전학 실험 연구 모델까지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식물로 인해 지형이 바뀌고, 전쟁이 일어나고, 경제를 움직이고, 노예제를 부추기도 했다. 특히 서구 문명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준 50가지 식물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인류 문화 속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식물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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