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의 역사를 되짚어가다보면 때론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는 평범한 매개체에 의해 세계사가 크게 움직이는 케이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매개체는 곡물 같은 생필품에서 후추 같은 향신료나 차 같은 기호식품, 꽃이나 도자기 같은 사치품 등 다양하다. 보통 교역에 의해 큰 이익을 얻게 되는 상품이나 종교적인 이유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 등으로 사용되는 상품이 여기 해당되는데 이 책에서는 물고기를 통해 인류의 역사적 장면들이 바뀐 지점들을 찾아본다.


서양의 음식문화를 떠올려보면 보통 육식이 먼저 연상된다. 칼과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써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육고기가 음식문화의 중심이 된 것은 18세기 농업혁명 이후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생선을 더 많이 먹었던 것이다.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는 일 년의 무려 절반 정도를 생선을 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단식일 기간에도 생선을 먹는 것은 예외로 했다는데 그만큼 생선 소비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것이다. 종교적 이유로 생선의 소비가 많았었는데 이로 인해 생선 수요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큰 시장이 되었다. 물론 시장이 커지면 거대한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업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러한 종교적 생선 소비의 관습에 기인한 어업 시장의 확장이 복합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시스템을 장악하며 등장한 것이 상인연합세력과 헤게모니 국가였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있던 생선이 청어와 대구다. 13~17세기, 즉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청어와 대구는 유럽 국가의 부의 원천이자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기도 하는 중요한 전략자원이었다고 한다.


청어는 이동 경로를 바꾸는 회유어라고 하는데 아직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청어가 이동경로를 바꿀 때마다 국가의 운명도 달려졌다고 한다. 바이킹이 고향을 버리고 브리튼섬을 침략한 것도 청어 때문이라고 하며, 청어 떼가 나타난 발트해의 뤼베크 근해에서는 청어 무역이 활발해지고, 시장이 커지자 더 큰 이익을 위해 동맹을 맺게 된다. 청어가 너와 나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한자동맹인데 이 동맹에는 수십개의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이 되고, 그 패권은 200년 이상 이어졌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템 하나만 얻어걸리면 대박치는 건 똑같다.


하지만 청어 떼가 산란 장소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갑작스럽게 바꾸자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했고, 북해의 작은 나라인 네덜란드가 새로운 패권을 잡게 된다.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네덜란드는 청어 덕분에 전 세계 해양을 지배하는 헤게모니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다른 나라 어선이 몰래 가서 조업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나보다.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어선이 울릉도까지 와서 오징어를 싹쓸이해갔었는데 그래서 한국의 오징어가 금징어가 되었다. 한자동맹이 네덜란드 앞바다까지 가서 청어를 잡아들이는 일은 없었던 것 같으니 적어도 중국보다는 양반이라 하겠다.


청어가 유럽의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했다면 대구는 신항로 개척시대와 맞물려 있다. 대구 역시 청어처럼 종교적 이유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 되고 이 중요한 핵심 상품을 유통하기 위한 대구 공급 시스템이 유럽 전체에 퍼져있었다고 한다. 대구는 염장하여 햇볕에 바짝 말리면 5년은 보관할 수 있고, 적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상하지 않는 몇 안되는 귀중한 식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염장 대구는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장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황금의 땅 일본으로 가는 뱃길을 찾기 위해 떠난 존 캐벗은 실수로 북미 대륙에 도착하는데 거기서 발견 한 것은 황금이 아니라 대구 떼였다. 그리고 그 지역은 새로운 중요한 대구 공급지가 된다.


책의 제목이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라서 37마리의 물고기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청어와 대구에 관련된 37가지 이야기였다. 즉, 세계사를 바꾼건 청어와 대구 딱 두 마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청어와 대구가 이런 세계사까지 바꾸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초기 기독교에서는 단식을 권했다고 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낙원에서 추방을 당했기 때문에 먹는다는 행위가 인간에게 문제를 유발시킨다고 생각해서 단식이 해야 에덴동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 먹으면 에덴동산은 모르겠지만 골로 가긴 하겠다. 그런데다가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체액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공기, 물, 불,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로 되어 있고, 인체도 이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며 음식도 네 가지 원소를 가지는데 이 원소에 따라 몸의 성질도 바뀐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뜨거운 성질이 육류를 먹으면 성욕이 강해지고, 차가운 성질의 생선을 먹으면 성욕이 억눌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육욕을 없애기 위해 고기를 금하고, 생선을 권장한 것이다.


기독교의 단식은 식욕을 이김으로써 육체를 정신이 지배하고,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육식을 금지함으로써 성욕을 억제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젼차로 육고기 대신 생선을 먹는 것을 권장했고 더 나아가 단식일을 육식을 금하는 날에서 적극적으로 생선 먹는 날로 바뀌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생선을 많이 먹고 육욕을 없애라는 뜻인 거다. 군대에서 율무차 마시는 것과 같은 논리인가보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생선을 먹어치우게 되자 생선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자연히 생선의 유통과 보관 기술이 요구되어졌고, 많은 양의 생선을 한꺼번에 잡는 어업 기술이 뒷바침되어야 했다. 이런 전제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것이 바로 청어와 대구였다. 대량의 어획이 이루어지고, 소금에 절이는 청어와 염장 대구는 년 단위의 장기간 보존이 가능했으므로 유통에도 적합했다. 그래서 청어와 대구가 자연스럽게 중요한 상품이 되고, 세계사까지 흔드는 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가 인간이 성욕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의해 세계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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