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1984 - 194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정영수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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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는 조지 오웰의 작품으로 국가가 개인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다룬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영화, 소설, 만화, 연극 등 수많은 문학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으며 소설의 내용 중 일부는 지금의 현실 세계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일어나고 있어서 예언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당시 나치나 소련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소설 속 전체주의 세계를 만들었으나 텔레스크린 같은 기술력으로 체제유지를 한다는 설정 때문에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설 속의 이미지가 더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지 오웰은 풍자와 사회비판이 가득한 또 하나의 걸작 동물농장을 썼는데 1984와 동물농장은 모두 전체주의 세계를 비판한 같은 맥락의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동물농장은 한국 현대사에 빗대어 읽어낼 수 있었는데 이 1984 역시 한국 현대사의 정치와 사회로 치환하여 읽어내는 시도를 해보면 더욱 현실감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바로 조지 오웰이 비판하던 그런 전체주의적 사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느끼게 될 것이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오세아니아는 영국 사회주의라는 사상의 1당 독재정권 국가이다. 당은 텔레스크린이라는 일종의 CCTV와 같은 것으로 공공장소와 집안까지 국민들의 생활과 사상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한다. 윈스턴은 빅브라더가 사회를 잠식한 사회에서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역사를 수정하는 진실부라는 부서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윈스턴은 모든 공무원이 그러하듯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당에 적개심까지 가지고 있다. 이런 감정을 일기에 쓰는데 빅브라더 사회에서는 일기는 쓰는 것이 불법이다.


윈스턴은 어느날 진리부의 줄리아에게서 사랑한다는 쪽지를 받게 된다. 당은 개인의 연애를 금지하고 있지만 몰래 연애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같은 당원 오브라이언이 당에 저항하는 비밀단체 형제단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고, 오브라이언은 둘을 맴버로 받아들이고 당의 본질을 폭로하는 금서를 전해준다. 책을 읽다가 두 사람은 긴급체포되는데 윈스턴에게 옛날 물건도 팔고 쥴리아와 연애도 할 수 있게 방도 내준 골동품 가게 주인 차링턴이 비밀 경찰이었던 것이다.


둘은 따로 감금당하고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느닷없이 오브라이언이 나타나 윈스턴을 고문한다. 오브라이언은 형제단으로 위장하여 불순분자를 색출해내는 백골단이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고문하며 당을 무비판,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고 세뇌시키려한다. 윈스턴은 고문을 받다가 풀려나 사상교육을 받게 되지만 마음 속으로는 완전히 승복하지 못한다. 잠꼬대로 줄리아를 부르다 세뇌가 확실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101호실로 끌려간다. 윈스턴이 가장 무서워하는 쥐로 고문을 하자 사랑이고 뭐고 줄리아를 버린다. 그 대가로 윈스턴은 풀려나지만 감시와 사상교육으로 윈스턴은 점점 황폐화해가고 자신이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984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빅브라더인데 정보를 독점하고 체제(사회)가 개인을 감시, 통제하는 것을 말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빅브라더가 하나의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소설의 무대가 되는 오세아니아의 통치자를 일컫는 것이었다. 국가가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가 되면 개인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과거 반공국치를 내세웠던 독재시절에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기도 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항상 자신의 말과 행동을 스스로 삼가고 검열하며 살아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고 통제하는 상호감시까지 이루어진다. 마치 북한의 5호감시제 같은 식으로 말이다. 물론 과거 독재시절 한국에서도 이런 상호감시체제가 있었고, 국민들을 서로 이간질 시키며 연대하지 못하게 하며 체제유지를 했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그 과정을 수행하는 일이 한층 더 쉬워졌다.

특히 텔레비전이 개발되어 같은 기계에서 동시에 송수신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맞이했다


윈스턴은 과거 역사를 날조하는 공무원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당의 강령에 따라 역사 조작을 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권이 국정교과서를 만들어서 독재를 미화하고, 일제강점기를 희석시키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시킴으로서 현재의 역사관을 바꾸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변화시키려는 속셈인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두 번의 쿠테타가 있었는데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정권을 유지하고 국민은 선동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방송과 언론을 장악했었다. 그리고 종편을 만들어 온갖 특혜를 주고 자기 사람을 사장으로 꽂아넣기도 했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기술적 진보로 인해 여론 조작은 한층 쉽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으니 조지 오웰의 선견지명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984에서 나온 역사왜곡과 언론왜곡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은 권력의 입맛에 맞게 가짜 뉴스를 생산하거나, 언론 스스로 언론권력이라는 힘을 가지고 멋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가짜뉴스 공장이 되어버렸다. 스스로가 어젠다를 생산하고 사회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들은 국민들이 개돼지라고 생각하고, 개몽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듯 하다. 하지만 '프롤'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과거에는 그런 것들이 힘을 발휘했으나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국민들은 그렇게 아둔하지 않다. 국민들의 인식은 깨어나고 바뀌고 있는데 공정해야 할 언론들은 여전히 과거 1984 쿠테타 독재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분명 1984의 내용 속엔 군부독재 시절 정부에 대항하며 학생운동, 민중운동을 하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과거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대한민국이 사실은 전체주의 사회였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1984에서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프롤들의 연대이다. 기득권층은 모든 종류의 연대와 네트워크를 제한하고자 사람들의 언어도 단순화시킨다. 말을 단순화하는 것으로 생각과 사고도 단순화 시키기 위해서이다. 반대로 잘못된 사회를 전복하기 위해선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가 꼭 필요하다. 지난 촛불혁명에서 보았듯이 시민의 힘 앞에선 그 어떤 권력도 이겨내지 못한다. 권력의 감시와 통제에 무기력하게 자기검열을 하며 무비판적으로 권력을 따르지 말고 권력을 비판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조지 오웰은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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