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 0629 에디션 -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 기념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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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은 생텍쥐페리가 탄생한 날이라고 한다. 어른들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를 선물해준 생텍쥐페리가 탄생한지 120주년을 기념하여 어린 왕자 0629버전이 6월 29일날 출간되었다. 어린왕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읽혔으며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하는 책으로 알려져있다. 많은 버전의 번역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번역을 찾아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번역이란 또 다른 창작으로 어떻게 번역되느냐에 따라 미세하지만 늬앙스와 글의 감동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원로 불문학자인 전성자 선생님의 번역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어린왕자 이야기지만 생텍쥐페리의 시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어린 왕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의미가 해석되고 있다. 보통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대사들을 가슴에 담아낸 아름다운 동화로 읽는 경우가 많고, 어른들을 비판하고 풍자하거나, 최근에는 어른왕자가 안타까운 상황으로 박해를 받았다는 식의 비극적인 해석으로 책을 읽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건 다 좋겠으나 이 어린 왕자 만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되면 좋겠다. 애초에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레옹 베르트라는 어른(친구)에게 선물하는 책이다. 책머리에 생텍쥐페리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데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빈다는 말로 시작한다. 힘든 상황에 동심을 잊고 사는 친구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며 어린 소년이었을적의 레옹 베르트에게 책을 바친다.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린 당신들에게도 한때는 빛나는 꿈이 있었음을 잊지 마라고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처럼 이 어린왕자는 책에 나오듯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이 책은 사막에 불시착한 파일럿인 화자 '내'가 어린 왕자를 만나서 들었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어린 왕자와의 대화는 파일럿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어른인 파일럿 그 자신이고, 책을 읽는 우리 어른들 모두일 수도 있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연상된다.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다보니 앨리스의 원더랜드와 어린 왕자가 방문한 별들은 희안하고 이상야릇하게 보인다. 어린 왕자는 소행성에서 신하도 없이 혼자 세상을 통치하는 왕과 허영심 많은 사람, 술에 취한 모습이 부끄러워 술에 취해 그것을 잊으려는 술꾼, 그저 숫자놀음으로 별이 늘어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업가, 일분마다 한번씩 가로등을 점멸하는 일꾼, 자신의 별의 지리에 대해 모르는 지리학자 같은 이상한 사람들을 차례로 만난다.


이 소행성들의 어른들은 현실 세계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무능하고 위증자인 정치인, 허세와 허영에만 관심이 있는 귀족들, 의지와 현실감이 없는 타성에 빠진 빈민들, 허상을 팔아 돈을 버는 자본가들, 컨베이어 벨트에 딸려 정신없이 일을 하는 노동자들, 추상적인 이론에만 빠져있는 학자들. 직업군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어른들의 삐뚤어진 모습을 담고 있다. 그나마 바보같이 하루종일 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노동자들만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는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왕이나 허영가나 술꾼, 사업가에게선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B612에 살던 어린 왕자도 마찬지지만 각 소행성에는 한 명의 사람들만이 살고 있다. 단절된 사회의 고독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모두들 각자의 별에서 쓸쓸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어린 왕자는 해 질 무렵을 좋아한다고 했다. 몹시 슬플 때에는 해 지는 풍경을 좋아하게 되는데 어느 날 어린 왕자는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보았다고 했다. 어린 왕자는 외로운 아이이자 외로운 어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로등 지기의 별에 머물고 싶었지만 별이 너무 작다는 이유로 그 곳을 떠나고 만다. 하지만 진짜 그 별을 떠나는 것이 섭섭한건 가로등 지기와의 이별 때문이 아니라 그 별이 하루종일 수없이 해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축복받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서툰 어른 아이들은 외로워도 사람과 친구가 되기 보단 혼자 외로움을 달래는 것을 선택한다. 6번의 친구들을 뒤로하고 어린 왕자는 7번째 별 지구로 향한다. 지구는 안식을 줄 수 있을까?


아프리카 사막에 떨어진 어린 왕자는 산위에 올라가서 외친다. '안녕, 너는 누구지? 내 친구가 되어줘, 나는 외로워' 하지만 메아리만 들릴 뿐이다. 한참을 걸어 장미꽃밭에 도착했을 때 세상에 단 한송이뿐인 꽃을 가진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수많은 장미 중 한송이에 불과했고, 가진 것이라곤 화산 세 개 뿐인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엎드려 운다. 우리도 흔히 자기만의 좁은 세상에 살다가 더 큰 세상에 나갔을 때 하염없이 작은 자신을 발견하고는 좌절하게 되는 일이 많다. 그 때 사막 여우가 나타나서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길들인다는 것이 뭐지?
그건 사람들이 너무 잊고 있는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사막 여우는 길들여지지 않으면 서로는 그저 수많은 것들 중 하나로만 보이겠지만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면 소중하게 생각될 것임을 알려준다. 어린 왕자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어린 왕자가 그 꽃을 위해 쓴 시간 때문임을 알려준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사람을 위해 충분히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사람이 나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것은 나의 잘못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가 길들인 것에는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있는 그 장미꽃과 많이 다투었다. 장미꽃은 마치 많은 연인들이 그러하듯 투정도 부리고, 억지를 쓰기도 한다. 어린 왕자는 그것을 받아주는데 지쳐서 떠나버리고 만다. 하지만 지구에 와서 다른 수많은 장미를 보고 자신의 그 장미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장미와 함께 한 시간만큼 그 장미는 어린 왕자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장미는 말로 아프게 찔렀지만 사실 장미도 어린 왕자를 좋아했고 잡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후회하지만 울면서도 바보같이 왕자를 잡지 못한다.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그래도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장미는 마음과 다르게 가시 돋힌 말로 왕자를 아프게 했다. 말은 오해의 근원이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말로 인해 상처를 주고, 오해를 만들고,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장미는 왕자를 아프게 하고 아픈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장미는 왕자에 대해 책임이 있고, 어린 왕자는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런 것이 사랑이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온지 일년째되는 날 뱀의 도움을 받아 별로 돌아간다. 뱀은 지식과 지혜의 존재이다. 아이는 지혜를 가지게 되면 어른이 된다. 죽음이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므로 어린 왕자가 죽은 것은 아이의 동심을 잃고 어른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어린 왕자가 두려워하면서도 별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장면은 너무 슬프다. 성장에 대한 두려움과 어린 시절과의 관계 끊기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잃었던 동심을 찾는다면 사막과 같은 마음에서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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