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rt & Classic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퍼엉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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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너무나 인기있고 유명한 소설이라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앨리스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졌고,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은 2차 창작물도 많으며, 다른 문화, 예술작품 등에도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그러나 원작을 읽은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원작소설보다 1951년작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오리지널리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앨리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 속에 떠올리는 이미지는 하얀색 앞치마가 달린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소녀 이미지의 바로 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의 앨리스의 모습일 확률이 매우 높다. 디즈니 앨리스만큼 유명한 그림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에 최초로 삽화를 그린 존 테니얼의 삽화 이미지로 이는 이후 디즈니 앨리스의 원형이 된다.


자꾸 앨리스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다른 소설에 비해 비쥬얼적인 면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소설은 내용 자체도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당위성도 없고, 무논리에 비이성적으로 진행이 되는데다가 워낙 말장난과 언어유희가 많아서 원어가 아닌 번역본으로 읽게 되면 더욱 그 대화를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텍스트를 벗어나 머리 속으로는 자연스럽게 디즈니스러운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고 책의 내용을 이미지로 재구성해서 그 장면을 받아들이게 된다. 앨리스가 토끼굴로 떨어지는 장면이나,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체셔 고양이가 웃는 모습, 카드 병사들의 움직임 등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장면도 많다. 그만큼 앨리스는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받는 작품이다.


앨리스의 이미지는 디즈니의 만화 속에 나왔던 모습이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대표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디즈니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대명사가 되버렸다. 디즈니 버전의 앨리스가 너무 유명해지다보니 앨리스의 이미지는 거기 함몰되어 버렸고, 이후 나오는 앨리스의 이미지는 디즈니의 다른 판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앨리스를 접할 땐 거의 고정된 이미지로만 소비하게 되는 상황이 되버렸다.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는 상상력을 제한한다. 특히나 이 소설은 엉뚱한 상상력을 많이 담고 있는데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로 상상력이 제한되어 버리는 것은 소설의 매력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같은 이야기라도 색다른 삽화와 함께 이야기를 읽는다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Art & Classic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기존의 앨리스를 버리고 새로운 느낌으로 앨리스를 읽어볼 수 있게 해준다. 책에는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이 자신만으 스타일로 탄생시킨 앨리스의 삽화가 담겨있고 이는 디즈니와는 다른 작화라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작화는 우선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되어 있어서 그림이 꽉찬 느낌이다. 책 한권, 꽃 한송이, 나무 한그루 모두 꼼꼼하고 촘촘하게 그려놓아서 완성도가 높고, 구석구석 세밀하게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색감도 일러스트레이터 퍼엉 특유의 동화같고 아련해지는 환상 같은 컬러로 되어 있어서 환상의 나라라는 느낌이 물씬 나며 원더랜드에 잘 어울린다. 동화적이고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충만해지는 귀여운 일러스트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한가지 불만족스러운 것은 앨리스를 너무 성인스럽게 그려놓았다는 점이다. 앨리스는 7살 정도의 소녀아이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게 너무 안 붙는다. 퍼엉 일러스트레이터는 평소 연애 이야기 같은 것을 그리는 작가고, 그 작화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맞지만 앨리스 까지 마치 남자와 한 집에 살며 꽁냥거리며 연애를 할 것 같은 모습으로 그린 것은 확실히 미스 같다. 물론 이렇게 바뀐 앨리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앨리스는 아이의 모습일 때 어울린다. 이상한 나라 원더랜드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보는 환상의 나라이기 때문에 어딘지 이상하고, 때론 우스꽝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앨리스가 아이이기 때문에 그 이상함이 이상하지 않고 그 속에 녹아들어 그 곳을 여행하며 모험을 즐길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앨리스가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서 그런지 원작처럼 원더월드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기분이 든다. 다른 동물들이나 다른 캐릭터는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다. 전체적으로 몽실몽실하고 둥글둥글하게 그려졌는데 귀엽고, 마치 캐릭터 상품 같은 디자인으로 그려져서 아이들이나 여성들을 겨냥한 취향저격의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이 책이 [더 킹 : 영원의 군주]라는 드라마에 나왔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는 평행세계를 다룬 내용이라고 한다. 마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떨어져 이상한 나라 원더랜드로 가듯이 앨리스의 토끼굴은 다른 세계, 새로운 차원으로의 이동의 상징성을 가진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도 흰 토끼를 쫓아라는 말을 듣고 매트릭스의 세계로 들어갔고 [판의 미로]에서는 오필리아가 요정을 따라 미로로 들어간다. 토끼굴은 새로운 세계와 기존의 세계의 대립이란 메타포로 두 세계관의 개념은 이후 많은 문학과 철학에서 차용되어진다.


토끼굴에 떨어진 앨리스는 이상한 일들을 차례로 겪는다. 몸이 줄었다 늘었다 바뀌고, 이상한 나라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이상하게 굴며, 하트 여왕은 앨리스의 목을 베어버리라고 한다. 하지만 앨리스는 이 이상한 꿈에서 깨려고 하지 않고 호기심에 가득차서 그 곳을 돌아다닌다. 요즘 젊은이들이 온라인에 접속하여 온라인 속의 생활을 하는 것도 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와 같은 심리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상 현실은 실제와는 너무 다르고,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세계이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그 곳으로 들어가서 가상의 생활을 즐기려고 한다. 현대의 사람들은 마치 호기심에 가득 차서 이상한 나라를 배회하며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는 앨리스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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