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Art & Classic 시리즈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제딧 그림, 김난령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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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인데 아마 원작 소설보다는 영화나 만화, 뮤지컬 같은 컨텐츠 혹은 2차 창작물로 더 많이 접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주디 갈란드 주연의 1939년작 영화이고, 어릴 적 TV에서 방영해준 만화 영화로 접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화 버전 때문에 오리지널 이야기와는 디테일이 약간씩 다른 내용을 원작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영화에서 도로시가 신고 나온 것으로 유명한 루비구두가 원작에서는 은색 구두였다거나, 마지막에 대마법사가 도로시 일행에서 포상으로 주는 것이 원작과는 전부 다르다는 식이다.


의외로 원작 소설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 [Art&Classic 오즈의 마법사]로 원작을 접해보면 어떨까 한다.  이 책은 클래식한 원작의 이야기와 일러스트레이터 제딧의 따사로움이 느껴지는 일러스트가 어울어져 기존의 오즈의 마법사와는 새로운 느낌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는 이미 여러 형태로 영상화가 되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다보면 머리 속에 특정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 이미지에 함몰되어 글을 읽게 된다. 그렇게 되면 원작 소설을 읽는 것이 영화나 만화로 접한 영상물의 변주에 지나지 않게 되므로 새로운 일러스트 삽화로 오즈에 대한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글을 읽게 되면 새로운 느낌으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는 마치 RPG게임과 같다. 주인공이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파티원을 모집하고, 함께 미션을 완료하는 전형적인 게임식 구성이다. 도로시의 퀘스트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집을 떠나 모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신화의 기본 모티브이며 영화에서 많이 차용되서 사용되는 구조이다. 도로시네 캔자스 집은 넓은 초원 한복판에 있고,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은 잿빛 뿐이다. 주변에는 나무 한 그루, 집 한 채도 없으며 도로시가 살고 있는 집 역시 칙칙한 잿빛이다. 도로시는 고아였으며 농부인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헨리 아저씨는 일에 치여서 웃음을 잃었고, 엠 아주머니는 젊었을 땐 생기있는 예쁜 새색시였지만 지금은 생기를 잃고 역시 잿빛만 남았다. 그곳에는 희망 없는 우울함만이 존재한다. 그런 우울한 일상이 계속 되던 중 어느 날 변화의 바람이 몰려오게 된다.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는 여성, 허수아비는 농민, 양철나무꾼은 노동자, 사자는 유색인종을 상징한다. 이들은 대공황의 시대가 되자 누구보다 큰 타격을 받았으며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 길을 따라 에메랄드 성으로 가게 된다. 에메랄드 시티는 미국 달러 색으로 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상징의 도시이며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사회 취약계층들이 대통령에게 청원을 하러 간 것이다. 하지만 오즈의 마법사는 이들에게 서쪽 마녀를 죽이라는 오더를 내리고, 도로시 파티는 오즈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길을 떠나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서쪽 마녀를 죽이고 돌아와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지만 오즈는 사기꾼이었고, 파티원이 바라던 실질적 보수는 받지 못한다.


대마법사는 사기꾼으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킨다. 위대하고 강력한 오즈의 대마법사는 워싱턴의 정치인인 것이다. 농민은 톱으로 채운 주머니를 받고, 노동자는 양철 조각을, 유색인종은 효과도 없는 가짜 약품을 마시고, 여성은 그나마도 받지 못한다. 도로시 일행의 고군분투로 실질적인 이득을 본 것은 오즈의 대마법사 뿐이고 농민과 노동자, 여성은 실제로 얻은 것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 지혜가 생겼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마음이 생겼다고, 실체가 없는 용기가 생겼다고 믿는 것 뿐이다. 마치 요즘 서점가에 우후죽순 나오는 힐링북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바뀌는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지만 가졌다고 생각하고, 얻었다고 생각하라고 자기위로와 자기세뇌를 강요하는 힐링북 말이다. 정말 원하는 걸 얻고, 필요한 걸 가지게 된다면 이런 가짜 물약이나 쓸모없는 톱밥으로 채운 주머니에 애써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힐링은 결국 하지 못하지만 했다고 생각하고 살아라는 것이고 힐링, 대리만족이란 말이 많다는 건 그만큼 직접 해보지 못하는 사회란 뜻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들은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다. 뇌가 없는 허수아비는 지혜롭고, 가슴이 없는 양철인간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겁쟁이 사자는 용감했다. 도로시도 최종적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도로시가 처음부터 쭉 신고 있던 은구두 뒤꿈치를 세번 부딪히고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을 하고서다. 이미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거나 충운히 이룰 수 있었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멀리서 꿈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자기 곁에 파랑새가 있는데도 헛된 꿈을 찾아다니는 찌르찌르와 미찌르처럼 말이다. 모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캔자스에는 헨리 아저씨가 새 집을 지어놓았고, 집으로 돌아온 도로시에게 엠 아주머니는 금쪽같은 내 새끼라며 껴안고 뽀뽀를 해준다. 그리고 도로시는 집에 돌아와서 너무나 기쁘다고 말을 한다. 고아였던 도로시와 헨리 아저씨, 엠 아주머니는 비로서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생기없던 잿빛 벌판에 사랑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소설의 캐릭터는 당시 미국 내 각 계층의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에선 여성참정권을 위한 투쟁과 노예폐지운동, 노동운동 등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캐릭터들은 당시의 이런 사회상을 반영하여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엠 아주머니 가사노동에 찌들어 생기를 잃고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서쪽마녀가 여성해방운동가인 도로시를 잡아와서 시키는 것이 엠 아주머니가 하던 가사노동이다.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운동가를 사회가 어떻게 취급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는 농업의 큰 발전이 있었지만 과잉생산과 공산품의 높은 비용 때문에 대다수의 농민들은 은행에 토지 저당권을 잡히고 큰 빚을 지게 된다. 허수아비는 뇌가 없다. 무지로 인해 자본가와 은행가에게 당하고 가난한 삶을 계속 하게 된다.


양철나무꾼은 기계인간으로 노동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양철나무꾼은 일이 없어서 몸이 녹슬어가는 노동자이다. 양철나무꾼은 원래는 사람이었는데 먼치킨 아가씨에게 청혼을 하자 좋은 자가주택을 지을 정도로 돈이 많으면 결혼을 하겠다고 조건을 걸어버린다. 돈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는 도끼에 다리가 잘리는 산재를 겪고 다리를 양철로 교체한다. 그리고 다른쪽 다리와 양 팔, 목 까지 잘리고 잘릴 때마다 양철로 교체를 하는데 마지막으로 몸통을 양철로 교체하고 나자 사랑을 할 심장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돈 없고 집 없는 아픈 노동자는 사랑도 못하는 지금의 현실과 다를게 없다.


사자는 당시 정치인을 상징한다고 하는 썰도 있지만 생긴 것은 사납게 생겼지만 마음은 착하고 도로시(우리편)를 도와주는 좋은 사람이란 의미의 유색인종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사자는 겁쟁이다. 무서운 외형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보다 정의롭고, 용감하며, 친구들을 위해 희생한다. 반대로 양귀비 꽃밭에서 사자가 쓰러져 잠들자 허수아비와 양철나무꾼은 사자를 두고 간다. 이민자와 유색인종들은 미국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지만 백인들과 다른 피부색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 되자 아무도 돕지 않고 그대로 방치된다.


서쪽 마녀의 부하들은 날개 달린 원숭이다. 180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수 만명의 중국인 이민자들이 몰려들었고, 서부 개척에 동원되었다. 중국인은 흑인노예의 대체수단의 하인으로써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머지않아 실업률이 올라가고 경제불황이 계속되자 쿨리라 불리는 저임금 중국인 노동자들을 경계하는 인종차별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들은 황금 모자의 힘에 따라 마녀의 지시를 따른다. 날개 달린 원숭이는 서부에 금광을 가진 자본가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는 중국인이고 마녀들은 금융가나 자본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자는 유색인종과 이민자를 상징하지만 이들을 퇴역군인으로 간주하면 이야기는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 미국은 참전 군인들에게 보너스란 이름의 일종의 추가수당을 지급했는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들은 제대로 돈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참전 군인들은 수당을 지급해줄 것을 요구했고 정부는 20년 후부터 지급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대공황이 터지게 되고 퇴역군인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당장 돈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되었다. 이에 분노한 퇴역군인 2만5천은 워싱턴으로 몰려가 백악관 앞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렸다. 이들을 보너스 군대라 불렀는데 이 사람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다치게 된다. 이 사건은 소설이 나온 후 한참 뒤에 벌어진 사건인데 도로시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에메랄드 성으로 간 것처럼 사회적 약자들인 퇴역 군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워싱턴의 백악관으로 갔고, 날개 달린 원숭이가 도로시 일행을 부상입히고 잡아가서 감옥에 가둔 것처럼, 이들 역시 강경진압 도중 부상을 입고 체포당하는 사람이 많이 발생했었다. 좀 억지라면 억지겠지만 실제 소설속의 내용처럼 사건이 발생했으니 시대상이 너무 잘 반영된 예언서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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