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지킬 박사와 하이드 (양장) - 188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마도경 옮김 / 더스토리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이중성과 다중인격, 선과 악이란 주제를 담은 소설로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지며 이후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며 문화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한국에선 [지금 이 순간]이란 노래로 유명한 뮤지컬이 너무 큰 영향력을 미쳐서 원작과는 다른 뮤지컬을 오리지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원작은 뮤지컬과 다르게 지킬이 중년이고, 로맨스는 1도 없으며 결말 또한 원작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만약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뮤지컬로만 접한 사람이라면 원작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원작은 뮤지컬과는 다르게 인간의 선과 악이란 이중성에 대한 심오하고 진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작가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인데 이 양반은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으며 보물섬이라는 또 하나의 걸출한 작품이 작품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보물섬은 결이 많이 다른 작품이라서 작품의 스팩트럼이 넓다고 하겠는데 한편으로는 보물섬의 퀵 실버 같은 인물을 보면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이중성을 가지는 인물이라는 통일성을 찾을 수도 있다.


작품의 내용은 너무 유명하여 대부분 기둥 줄거리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줄거리보다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해가는 박사의 모습과 선과 악 사이에서 방황하는 심리적 갈등 같은 내면의 묘사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 명망있는 명문세가의 엄친아로 태어난 지킬은 명예와 명성으로 가득한 무지개빛 미래가 보장된 금수저이다. 그러나 돈 많고, 권력있는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지킬도 향락과 유흥을 즐기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논어에도 영웅호걸은 주색을 즐긴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학식있는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싶어하고, 목에 힘주는 것을 즐기고, 명예욕이 많은 오만한 욕망을 가진 지킬은 쾌락을 추구하는 기질을 숨기고 사람들 앞에선 가식을 떨고 점잖은 체하며, 남몰래 쾌락을 즐기는 이중생활에 빠져있다. 그리고 지킬은 스스로 정해 높은 가치관의 기준 때문에 그런 행위를 수치스러워했고 병적으로 숨겨왔다. 출세와 사회적 지위를 얻고도 싶고, 유흥과 쾌락도 놓지 못하는 두 가지 욕구 속에서 지킬의 내면은 표면적인 선과 내면적인 악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끊임없이 투쟁을 벌린다.


지킬은 자신의 이런 상충된 내면의 욕망을 가진 두 가지 심리를 분석하다가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자아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믿게 되고, 선과 악을 각각 따로 떼어내어 선한 나와 악한 내가 나누어진다면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서로에게 피해 안주고 둘 다 해피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낸다. 그리고 그 두 가지의 자아를 분리하는 약을 만들고 선과 악을 오가게 된다. 하지만 그 약 자체가 사악하거나 신성한 것이 아니라 약은 단지 지킬의 내면에 있는 본성을 열어주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약이 지킬을 악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악한 내면이 나올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지킬이 만든 약물은 자아을 분리할 뿐만 아니라 육신의 껍질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었다. 지킬은 육체는 자아를 투영하는 존재로 인식했고 자아의 변화에 따라 형태와 용모도 바뀌도록 약물을 만들었다. 그래서 하이드로 바뀌었을 때는 영혼 속의 저급한 요소들이 외모로 까지 표출되어 저급한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아가 하이드가 된 후에도 지킬의 외모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다면 다시 지킬로 돌아왔을 때 그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하이드라는 익명에 숨어서 악행을 저지르고 다시 지킬로 돌아오는 매커니즘을 만든 것이다. 온라인 상의 악플러들이 익명이라는 이름 뒤에 숨으면 잔혹해지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지킬은 하이드를 자신의 자아와는 완전히 다른 타인으로 생각한다. 하이드가 되어서 벌렸던 악행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하이드에 완전히 먹혀버리기 전 마지막 약물로 지킬의 모습과 정신으로 베프 어터슨에게 편지를 쓸 때는 자신은 사라질테고, 남은 하이드는 교수형을 당할지, 자살을 할지 자신은 모르겠고 어찌 되건 상관없으며 그건 남의 일이란 말을 한다. 죄를 지은 것은 하이드일 뿐이지 자신은 조금도 타락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하이드가 지킬의 시뮬라크르가 된다면 하이드는 더 이상 지킬의 의식과는 상관없는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킬도 나이고, 하이드 역시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했듯이 하이드는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지킬의 내면에 있다가 새롭게 드러난 존재일 뿐이다. 만약 지킬과 하이드가 다른 사람이라면 선한 나와 악한 내가 혼재되어 있는 지킬 역시 반은 부정당하는 셈이다. 게다가 박사의 본성은 지킬과 하이드의 공통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지킬은 하이드의 쾌락과 모험을 계획하고 함께 즐겼다. 같이 즐길 때는 언제고 모른척 하기냐? 즉, 지킬은 하이드 역시 자신임을 알면서도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하이드와 자신을 분리시켜놓고 애써 모른 척 한 것일 수도 있다.


지킬은 어느날 지킬의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하이드로 깨어나는 경험을 하고는 불안에 빠진다. 점점 하이드의 성향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잘못하다가는 하이드에 완전히 먹혀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깨닫는다. 약발도 잘 안받기 시작하고, 디폴트 자아가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둘 중 하나의 자아를 선택할 기로에 선 박사는 결국 지킬을 선택한다. 하이드가 될 경우 친구 하나 없이 고독사할 수도 있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교수형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금욕의 고통에 몸무림치는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결정하고 두 달동안 약을 끊고, 엄격한 생활을 하지만 다시 약에 손을 댄다. 흔히 음주문제가 있는 사람의 주변인들이 그 사람은 술을 안 마시면 참 설실하고, 가정적이고, 순박한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사람이 나빠진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가끔 듣는다. 그 본인도 술을 마시면 자신이 개가 되서 행패를 부린다는 사실을 알고 술이 깨면 굉장히 자책을 하는데 그런 사실을 알고도 또 술을 마신다면 그건 이미 착하거나 성실한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박사도 스스로 지킬은 선이라고 말을 했음에도 하이드가 되고자 약을 말아서 마신 것은 이미 지킬이 선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킬이 선이고 도덕적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는 자아라면 하이드가 되는 약을 마시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계를 이드, 에고, 슈퍼에고로 구분하였다.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추구하려는 이드, 사회적 이상과 도덕을 추구하려는 슈퍼에고, 에고는 이드와 슈퍼에고를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합리적 성향을 의미한다. 이것을 책에 대입해보면 하이드는 이드의 완전체이고, 지킬은 슈퍼에고를 상징하며 박사는 그 둘을 철저히 둘로 갈라놓고 슈퍼에고를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전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며 주위의 상황에 따라 바뀌게 되는게 그 균형을 잡지 못하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만약 지킬 박사가 평소 욕구와 도덕, 욕망과 이상을 잘 컨트롤하며 마음 속의 이드가 커지지 않게 에고를 잘 운용하여 합리적으로 욕구를 해소했다면 억눌린 하이드의 이드가 터져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소되지 못한 욕구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되버린다. 슈퍼에고로 이드를 틀어막다보니 박사는 금지된 것을 소망하게 되고, 이드에 잠식당해버린 것이다. 욕구불만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하이드는 순수한 악으로만 구성된 존재라고 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망나니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래뇬 박사에게 약병을 찾으러 갔을 때는 공손한 행동과 어투로 래뇬을 대했고, 국회의원을 죽였을 때에도 다른 사람에게는 해코지 하지 않았다. 원래 정치인이란 예나 지금이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존재 아닌가. 국회의원에게 분노하는 게 이상한가? 아무튼, 하이드가 악이라고는 하지만 의외로 상황판단이 되고, 아무 때나, 아무한테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하이드는 의외로 분노조절잘해인 것이다. 하이드가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도 정말 하이드가 순수 악이라서가 아니라 지킬이라는 도피처가 있기 때문이다. 온갖 추잡한 짓을 하고 나서도 약을 마시면 뿅하고 지킬로 변신하기 때문에 하이드는 이 세상에 없던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완전범죄가 가능하기 때문에 온갖 더러운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사람은 누구나 심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지킬은 선한 사람이고 존경받을만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박사가 하이드 상태에서 지킬로 돌아가고자하는 이유는 지킬의 존재가 선이고, 예수와 맞먹는 박애정신으로 선을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킬 상태로 있는 것이 남들에게 존경받고, 사람들이 우러러보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못버리는 이유다. 오히려 지킬은 가식과 허식이 많은 겉멋에 찌든 사람이라 순수 선이라고 하기 어렵다.


베프 어터슨은 물론이고 단짝 래뇬 까지 하이드를 처음 보고 혐오스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어터슨은 혐오스러워하면서도 하이드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내뇬도 마찬가지다. 래뇬은 이것을 불쾌한 호기심이라고 말했는데 처음에는 특이하고 개인적인 혐오라고 생각했으나 이후 그 원인이 인간의 깊은 본성과 관련이 있으며, 증오보다 훨씬 차원 높은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은 자신의 추한 내면과 마주하면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하이드는 인간의 추하고 탐욕스러운 욕구와 욕망의 덩어리이고, 하이드를 마주하는 것은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지만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욕망에 눈길이 가듯 하이드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하이드(HYDE)는 숨는자(HIDE)라는 의미로 숨어 있는 자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지킬은 '나'를 뜻하는 프랑스어 je와 죽이다는 영어 kill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나를 죽인다는 의미로 지킬이라는 자아를 죽이고 숨어있는 하이드가 되며, 이는 '나'의 몰락을 의미한다. 지킬의 자아가 죽으면 숨어있던 하이드가 나오고, 나중에는 하이드가 멋대로 몸을 소유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지킬은 하이드에게 증오를 느낀다. 원래 지킬은 절대 선의 자아라서 증오라는 감정은 없어야 하지만 하이드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것을 느끼며 공포와 증오를 느낀다. 하이드도 지킬을 증오한다. 지킬이 죽어서 하이드가 나오듯이, 지킬이 나오기 위해선 하이드가 죽어야 한다. 하이드는 경찰에 체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킬이 튀어나오도록 어쩔 수 없이 하이드의 자아를 사라지게 하는 자살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하이드가 하나의 온전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에 속한 일부라는 종속적인 위치가 된다. 그리고 하이드는 지킬의 성격을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만약 지킬이 실제로 자살을 하게 되면 종속된 하이드도 죽게 되므로 하이드는 그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이렇게 지킬과 하이드는 두 자아가 서로를 두려워하면서 증오했다.


우리도 자제력을 잃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나중에 그런 자신을 혐오하고, 미워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분노에 휩싸여서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거나,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해서 주취범죄를 저질렀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데 이 때 술을 마시고 이성을 잃은 상태의 나는 과연 나인지 내가 아닌 것인지, 주취범죄는 심신미약으로 감형되고 있는데 이것이 온당한것인지 아닌지 지킬과 하이드의 개념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약을 마시고 하이드가 된 것처럼 술을 마시고 개가 되어서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것을 내가 저지른 행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지킬과 하이드는 어릴 적 아동 문학으로 읽었었는데 그 때의 기억으로는 지킬 박사가 약을 먹고 나쁜 사람이 되서 나쁜 짓을 하고 다녔다 라는 단순화된 스토리로만 이야기를 접했던 것 같다. 아동용 소설이어서 각색은 되었겠지만 적어도 선과 악이라는 개념,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의미가 없진 않았을텐데 어릴 때라 이중성이나 인간의 인격과 자아라는 깊이 있는 의미는 알지 못했고, 그저 변신에 치중하여 이야기를 소비했었다. 이후 다른 컨텐츠로 이 이야기를 접하거나 2차 창작물로 접하며 이 소설에 대해 가지게 된 개념은 대략적으로 박사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있는데 내면의 절대 선과 절대 악이 대립하다가 악이 커져서 결국 선이 악에게 패하고 먹혔다는 것이다. 혹은 선한 사람이 악인으로 변해가는 과정 같은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원작을 다시 읽어보니 꼭 그런식의 흐름은 아닌 것 같다.


우선 앞서도 말했듯이 지킬이 절대선의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하이드 역시 악은 악이지만 절대 악은 아니다. 지킬의 내면은 쾌락을 탐닉하는 하이드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박사는 그런 하이드의 마음을 숨기고 지킬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물론 그 이유는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유지하려는 세속적인 이유이다. 정말 그것이 옳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행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박사는 지킬로 사는 것을 답답해하고 속박당한 것처럼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할 수 없이 억지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거다. 즉 박사는 원래가 하이드였는데 지킬이란 페르소나로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절대 선이었던 지킬이 타락하여 절대 악인 하이드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하이드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하이드의 자아실현을 그린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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