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한 역사, 자본세 600년
라즈 파텔 외 지음, 백우진 외 옮김 / 북돋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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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시기를 지질학에서는 홀로세라고 부른다. 그리고 해수면이 차오르고, 기후변화로 평균기온이 높아지는 등 기후가 변화한 최근의 시대를 홀로세에서 따로 떼어서 인류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고, 생물들이 멸종하는 등 인류가 지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지구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가속화 한 것이 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며 고로 인류세가 아니라 이 시기를 자본세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본주의의 발달은 과거 인류의 조상이 사냥으로 동물을 잡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환경 파괴와 지구의 오염을 가속화시켰다는 의미이다. 확실히 자본주의 산업화가 되면서부터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는 빠르게 진행되어져왔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은 이를 통해 자본주의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시스템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의 기본 개념은 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써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필수적인 요소들이 갈수록 저렴한 싸구려가 되고 있는데 값이 싸야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구석구석에서 잘 돌아가고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을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거래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오랜 전략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닭을 예로 드는데 최근 우리가 먹는 닭은 유전자조작을 통해 가슴 근육이 부풀려지고, 걷지도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 몇 주만에 성체로 사육되어 도축된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저렴한 자연'이라고 표현한다. 닭고기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육류이고 그만큼 많은 닭을 사육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양계산업 노동자들은 아주 낮은 보수를 받고 일을 한다. 이것은 '저렴한 노동'이다. 그리고 닭을 가공하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닭을 다듬는 작업 때문에 통증에 시달리는데 고용주는 노동자의 이런 고통을 무시하고, 노동자가 부상을 당하면 이후 소득은 감소하며, 일을 쉬는 동안에는 가족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저렴한 돌봄'이라 칭한다. 배가 부르지만 불만족스러운 음식들이 산업의 이런 구조 속에서 생산되고 패스트푸드로 싼 값에 팔려나간다. 바로 '저렴한 식량'이다. 닭을 사육하는 대규모 양계장을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연로가 많이 드는데 저비용의 닭을 생산하려면 '저렴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가공된 닭고기를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사업에는 위험이 뒤따르고 이 위험을 경감시켜주는 것은 특권과 보조금이다. 공공 자금을 투입해 사적인 이익을 뒷받침하는데 이것은 '저렴한 돈'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여섯 가지의 저렴함을 유지하기 위해 쇼비니즘, 즉 이익을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으며 국제 정의도 고려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동물, 여성, 식민지인, 빈민, 유색인종, 이주민 같은 특정 인간의 범주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불합리한 행태가 많이 벌어지는데 이를 '저렴한 생명'이라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만 들여다보더라도 위에서 말한 일곱가지의 저렴한 것의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자본가는 저렴하고 질낮은 제품들을 많이 만들어서 유통시키고 자본을 축적하는데,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동자의 인권은 거세되어 버린다. 열악한 근무환경, 과도한 근무시간, 인력부족 등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격무를 겪게 된다. 열악한 처우와 낮은 보수의 저렴한 노동으로 인해 생활은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저렴한 식량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저렴한 돌봄으로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고, 최근에는 감정노동자들의 자살률도 높아졌다. 배달 알바들은 시간 내 배달이라는 속도 경쟁 속에서 사고의 위험에 내몰리고, 구의역의 승강장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인 19살의 청년은 저렴한 노동으로 업체가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얼마전 코로나 19 감염의 진원지가 되었던 쿠팡 물류센터는 비정규직의 너무나 열악한 노동환경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거의가 비정규 일용직노동자로 자가격리나 치료를 위해 일을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생계에 크나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저렴한 돌봄이다. 쿠팡 사건이 터지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여 쿠팡 앱을 지우고 쿠팡을 떠났는데 비정규 노동자의 비인권적인 노동환경에 분노한 것이 아니라 왜 내 택배에 바이러스를 묻히는 것이냐 하는 이유로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저렴한 생명. 사람들에게 일용직 비정규 노동자는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이었다.


우리의 저렴한 것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다. 사회와 자연, 식민지 개척의 주체와 객체, 남성과 여성, 서구와 나머지 국가, 백인과 유색인, 자본가와 노동자 같은 이분법적 세계가 정복과 폭력으로 뒤얽혀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권력, 자본, 자연의 세계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자본가들은 이 이분법적 세계를 유지하고 그 경계를 허물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정부와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저렴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고 인간과 다른 자연의 저렴한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녔고, 그 결과 생태계 전반을 위기에 놓이게 하였다. 하지만 이젠 더는 저렴한 세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노예, 식민지인, 여성, 노동자 들은 이 이분법에 대항하여 저항해왔다. 세계 곳곳에서 환경운동이나 흑인생명운동, 장애인권리운동, 페미니즘 운동 등이 제각각 행해지고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주안점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항하여 모두가 연대하여 탈자본주의의 반헤게모니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환경운동, 여성인권운동, 흑인생명운동, 장애인권리운동 같은 것들은 각자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생명망 속에 서로 얽힌 권력, 자본, 계급의 이분법의 세계에 대항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탈자본주의라는 기치아래 다 함께 연대하여 자원을 완전히 재분배했을 때 비로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운동과 탈식민지 운동이 같이 연대할 수 있고, 장애인권리운동이 인종과 성, 계급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다 함께 저항하면서 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자본주의의 저렴한 것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생태계를 이해하는 인식을 바꾸고, 문제인식과 함께 제대로 된 보상과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생태계는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지금까지 정부와 자본가가 일으킨 고통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고. 새로운 인식으로 에너지와 음식, 토지 등이 재분배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솔직히 자본가가 지금까지의 잘못을 보상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재분배 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이상주의처럼 보인다. 그리고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서 자연과 사회라는 가치를 구체화하고, 노동과 삶을 의미있고 즐거운 것으로 재창조하자고 하는데 현재의 자본주의가 저렴한 것을 착취하기 위한 역사라는 내용은 자본주의를 새롭게 인식하는 하나의 관점으로서 좋았지만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내용들은 너무 이상향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내용처럼 보여서 아쉽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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