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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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오래전 개미라는 작품으로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람의 시선이 아닌 개미의 시선으로 씌여진 이야기는 신선했고, 독창적이고, 기발했다. 과학적인 내용과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스토리가 탄탄하고,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묘사와 상황설명에 글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베르베르의 소설은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완독하게 된다. 뒤이어 나온 영계 여행을 다룬 타나토노트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베르베르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한데, 영계를 여행한다고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은 정말 놀라웠다. 개미가 현미경으로 개미의 생태를 관찰하는듯한 섬세한 묘사를 했었다면 타나토노트는 삶과 죽음, 환생이라는 심오한 주제가 우주를 무대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이미 죽음 너머의 삶과 신비, 영혼과 환생이라는 주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처럼 베르베르는 일반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다. 과감하게 곤충을 주인공으로 삼은 개미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저승 이야기를 다룬 타나토노트,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들의 아버지, 세계 각국의 신화 속의 여러 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 수호천사의 이야기 천사들의 제국 등 일반적이지 않은 주제의 글을 많이 쓴다. 기독교 세계관의 단일신이 아닌 신화 속의 신들을 주제로 삼거나 이번 작품 기억에서는 불교적 세계관인 환생을 주제로 삼는 등 동서양의 신화를 차용한 신비주의적인 주제를 주로 많이 다루는데 기본적으로 기독교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있다.



이번 작품 기억에서는 최면을 통해 전생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베르베르다운 주제이고, 베르베르가 가장 잘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베르베르는 만약 인간에게 전생이 있고, 그것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전생이 현생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질문한다. 퇴행 최면으로 자신의 전생을 보는 것에 성공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 르네는 자신에게 총 111번의 전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차례로 기억의 문을 열어 본다. 그리고 전생을 만나고 난 후 전생의 일이 현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소설은 인간의 정체성에서 기억이 어느 만큼을 차지하는지, 인간이 어떻게 기억을 만들고 지켜나가는지를 탐구한다. 소설 거울나라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이름이 없는 숲으로 들어갔다가 자신의 이름을 잊게 되고, 이름을 잊은 앨리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잊어버린다. 자신의 기억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면 기억을 잃은 사람은 자아를 잃게 되는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그리고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 전생이 지금 생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기억은 가장 첫머리에서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거울이 자신의 내면을 상징하고 그 내면은 망각된 전생의 기억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베르베르는 소설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으며, 우리의 기억의 많은 부부늘은 무의식의 영역에 잠겨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무의식은 단순히 잊어버린 기억이 아니라 전생에 대한 망각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 비로서 우리는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인간 내명에 잠들어 있는 망각된 기억에 대해 묻고 있다. 자신의 전생의 영혼의 환생들이 모인 총회 장면에서 르네는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합쳐져 우리 각자 각자가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우리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면 우리는 완전한 '나'가 되지 못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대가를 치르는 수밖에 없지


그리고 기억의 주체를 개인이 아니라 사회나 하나의 국가로 치환치키면 그 기억은 역사가 된다. 역사란 집단의 기억이다. 우리는 역사를 잊어버림으로서 많은 문제를 껴안게 된다. 역사 선생인 르네는 아이들에게 승리의 역사에 대해 가르쳐준다. 교과서에 실린 공식적인 주류역사조차 자의적인 재단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글자를 가졌던 문명이 남긴 흔적이고, 모두 승자들의 버전이다. 게으름 때문에 과거를 잊어버리는 사람이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과거의 실제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사람이나 결국 똑같이 과거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실제 벌어진 역사와 기술된 역사, 피지배자의 역사와 지배자의 역사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에서 기억은 사활이 걸린 문제예요.
그래서 수많은 정치인이 기억을 거머쥐고,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주물러 빚으려고 하는 거죠.


책에서 베르베르는 인류가 겪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 과거의 망각임을 말하고 이를 경계하자고 한다. 역사는 개인이 잊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집단의 기억이다. 교과서 내용을 앵무새처럼 읊어 댈 줄만 알고, 뉴스와 부모의 말을 여과 없이 자기 생각으로 삼고, 광고와 인터넷에 휘둘리는 세대들은 자기 생각도 없고 그걸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없이 이미 만들어진 생각에 그저 동조할 뿐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승자-패자의 개념이 아니라 주류 역사가 말하는 승리자들이 아닌 약자, 패배한 사람들, 잊힌 존재들이라 할지라도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전한다.


애벌레한테는 끝인 것이 사실 나비한테는 시작이죠


책의 표지는 렌티큘러로 각도에 따라 홀로그램이 달라지는 특별표지이다. 표지에는 사람의 머리 속에 머리가 중첩되어 들어가 있다. 전생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내가 후생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어깨에 나비가 앉아 있다. 애벌레는 고치가 되면서 그 생을 끝내는 것 같지만 그것은 나비의 시작이다. 나비에게 애벌레는 전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비의 정체성에는 애벌레 시절이 많은 영향을 준다. 애벌레가 없이는 나비도 없다. 이 한 문장이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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