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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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거의없다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영화 관련 팟캐스트에 패널로 나와 영화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는데 한 편의 영화를 정치, 사회, 문화, 일반교양, 인문학적 내용 등 다양한 이야기들과 접목시켜 소개하며 뛰어난 입담으로 엄청난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특히 그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화두를 영화에 대입하여 영화를 읽어내며 영화읽기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기도 하였었다. 그 때부터 거의없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팟캐스트 방송이나 유튜브 방송도 찾아서 보게 되었다.


거의없다의 방송은 영화 방송이면서 영화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특히 영화를 통한 정치비판, 사회비판은 눈여겨볼만하다. 개인적으로 거의없다와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다보니 그런 비판이 재미있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런 것들이 불편한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당연하게도 거의없다는 사람들로부터 영화 이야기를 하며 정치비판 하는 것에 대해 항의 댓글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정치이야기는 민감한 것이라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과 다르면 그것을 듣고 있기가 불편하다. 그런 댓글 중 최종판은 너 좌파냐?라는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거의없다는 진보적 성향을 가졌고, 그런 정치적 시각으로 영화를 읽어내는 시도를 왕왕 하고 있다.

 

영화 유투버나 영화 팟캐스트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면 진보건 보수건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이야기, 그것도 어느 한쪽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아이디어이다. 그런데도 거의없다는 정치적 의견을 언급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책에는 이와 관련해서 자신의 의견을 적어놓았다. 영화란 대중이 즐기는 대중예술이고, 대중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시대를 반영하면서 변화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미 영화 그 자체에 정치적 의견이 들어가 있고, 영화에 정치적 함의가 들어가는 것은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에 정치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것도, 자신이 영화 이야기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도 전부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거다. 그리고 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든 영화는 시대와 사회의 담론을 담는다. 영화에는 시대정신이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영화제작자는 그 당시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나 갈망하는 것을 담아내려고 한다. 혹은 시대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영화를 만든다. 그래야 관객을 끌고,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책에는 다이하드를 예로 들고 있다.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이전의 액션스타들은 강한 미국을 상징하는 하드 바디의 아놀드와 스텔론 같은 근육질 스타들이 주름잡았다. 혹은 보급형 아놀드인 둘프 룬드그랜이나 장클로드 반담 등도 모두 근육질 스타들이다. 그 때는 강한 바디가 남성다움을 의미하고, 강한 힘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에서 액션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다이하드는 난닝구를 입은 처진 근육의 브루스 윌리스, 존 맥클레인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존 맥클레인은 서먹해진 아내를 만나러 LA 중심가에 우뚝 서있는 일본계 회사인 나카토미 빌딩으로 가는데 하필이면 그때 독일 테러리스트들이 들이닥치고 그들과 싸우게 된다. 존 맥클레인은 하드바디의 근육남이 아니라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백인 남성이다. 미국의 중심인 LA는 일본 자금이 장악해버렸고, 외부에선 독일이라는 유럽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제 미국 중산층 백인 남성은 위기를 맞게 된다. 1980년대 후반의 미국에서는 일본의 경제 침공에 대한 경계심과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는 끊임없이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영화 속에 시대정신이 들어간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디즈니의 PC적인 행보 역시 시대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최근 디즈니 영화들은 과도하게 여성과 유색인종,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들어가 있다. 모든 주인공을 유색인종 여성이 도맡아 한다. 심지어 유명 영화들의 리메이크에서는 주인공을 유색인종 여성으로 전부 바꾸어버렸다. 그리고 여성, 유색인종, 아이와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할당제를 부여한 영화가 굉장히 많다. 이것이 시대의 요구인지, 댓글러들의 요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디즈니는 그에 응답했고, 시대정신은 영화에 담겼으나 이런 정형화된 여성할당제에 의해 영화는 점점 망가지고 있다. 어쨌거나 어떤 형태로건 영화에는 시대정신이 들어가있고, 정치적 함의 또한 들어가 있다. 영화 자체가 정치적인데 영화를 정치적으로 읽으면 왜 안되고,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왜 안되냐고 거의없다는 되묻는다. 오히려 이 책에서조차 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되냐며 가열차게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견해가 다를 수 있는 이야기는 알아서 입닫는 것은 현명한 게 아니라 비겁한 거라고 말한다.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다고 말해진다. 영화 역시 우리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영화와 정치는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이라는 곳에서 접점을 가진다는 뜻이므로 영화를 정치로 읽어내고, 영화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거의없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난 그런 점 때문에 거의없다의 방송을 찾게 된다.


또 한 가지 거의없다와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호러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호러장르가 저자본으로도 감독의 재능과 아이디어로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써놓았는데 하지만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한다. 맞다. 정말 맞는 말이다. 호러는 장르의 법칙이 있고, 이걸 깨부수면 장르로서 인정을 못받는다. 하지만 장르의 법칙대로만 만들면 너무 뻔해지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진다. 장르의 법칙을 부수면서도 법칙을 따라야 하고, 법칙을 지키면서도 지키지 말아야 한단다. 장르를 따라가면서 슬쩍 비켜가야 한다는데 이게 정말 어려운 거다. 이걸 해내기 위해서는 대단히 재능있는 감독이어야 하거나, 많은 고민을 해야만 하는데 한국에선 이 호러 장르를 굉장히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름철이 되면 한철 장사를 해먹고 빠지기 위해 우후죽순으로 말도 안되는 호러 영화들이 쏟아진다. 정말 한국의 호러영화는 한심한 지경이다. 책에도 나오지만 호러 영화는 감독들이 입봉작으로 많이 선택한다. 저자본으로 자신의 역량을 보일 수 있는 일종의 포트폴리오 같은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히 호러장르를 좋아하지도 않거나, 호러에 대한 재능도, 고민도 없이 그냥 어디 괴담이나 웹툰에서 본듯한 내용으로 대충 만들어서 입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호러영화 팬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에는 호러의 한 장르인 슬래셔 무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슬래셔라는 주제로 사이코와 에이리언, 스크림을 묶어서 이야기한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소개하는 건 꼭 거의없다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 관련 방송에서 다 하는 것이다. 거의없다는 세 편의 영화를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주제를 조금씩 바꾸어가며 소개한다. 그 말은 각 영화와 영화 사이에 다른 잡다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있다는 뜻도 된다. 물론 다른 잡다한 이야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런 잡다한 이야기들이 영화와 영화를 붙혀주는 아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영화에서 다른 영화로 흘러가며 다양한 이야기, 썰을 풀어낸다. 호러의 고전 싸이코로 출발하여 슬래셔의 법칙인 여성의 누드와 살인이라는 키워드로 할로윈으로 넘어가고, 할로윈에서 정형화 된 슬래셔 무비의 법칙이란 아이템으로 스크림을 언급하고, 슬래셔 무비의 법칙의 첫 번째 항목인 섹스하지 마라에서 1960년대에 미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과 에이리언에 담긴 여러 성적메타포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같은 장은 아니지만 다음 장에서 캐빈 인 더 우즈가 이 슬래셔 무비의 법칙을 어떻게 비틀고,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마치 의식의 흐름대로 썰을 풀어가는 듯하지만 어쩌면 나름대로 잘 계산된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은 전체적으로 쌈마이적 B급 정서로 가득차있다. 일상의 언어가 아닌 인터넷 게시판에서 시시덕거리며 말을 하는 언어로 되어 있고 욕지거리도 거침없이 막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솔직히 읽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금기를 깨고 읽는다면 마치 술자리에서 친구랑 영화 얘기하는 것처럼 굉장히 웃기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영화인문학책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잡다한 이야기로 영화를 풀어나가다보니 영화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배울 수도 있고, 반대로 세상을 읽는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도 있다. 믿고 보는 거의없다의 잡학다식한 지식과 재미있는 말빨로 영화를 재미있게 읽어내는 즐거운 영화 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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