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휩쓴 세계사 - 전염병은 어떻게 세계사의 운명을 뒤바꿔놓았는가 생각하는 힘 : 세계사컬렉션 17
김서형 지음 / 살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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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거나 하는 기록을 간간히 볼 때가 있다. 흑사병이나 천연두, 스페인 독감, 신종플루 같은 팬데믹 상황까지 갔던 전염병부터 에이즈와 에볼라, 2000년대 초반 홍콩을 강타했던 사스와 메르스 같은 비교적 최근에 벌어졌거나 한국도 그 전염병의 영향권에 들었던 비교적 안면있는(?) 전염병 까지 다양한 리스트를 마주하지만 솔직히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다지 현실감도 없었다. 세계적인 유행병인 팬데믹 상황은 의학이 덜 발전한 과거의 일일 뿐이고, 메르스나 사스 같은 것은 특정 지역에서만 발병하는 국지적 전염병일 뿐이며, 신종플루 같은 것이 유행하더라도 지금의 의학이라면 백신이나 치료제로 금세 잡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은 21세기이고 페스트가 돌던 의학기술이 낙후된 시절이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오만한 생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중인 코로나19에 의해 무참하게 깨졌다. 그동안 본적이 없는 말그대로 팬데믹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처음 중국에서 발생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전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으로 번질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중국 내에서 퍼지다가 곧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신종 전염병은 전 세계를 강타했고, 세상은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까지 말을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빌 게이츠는 핵 전쟁이나 기후 변화보다 전염병이 더욱 위험하며 시급한 문제이고 미사일이 아니라 미생물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인 핵미사일이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일상을 앗아간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균이었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지구적 규모의 판데믹 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에 발생한 전염병이라도 전염병이 세계사의 운명을 뒤바꿔놓는 것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세균을 꼽았을 정도로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책은 인류의 운명을 뒤바꾼 전염병의 발생 원인과 역사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저자는 세계사를 뒤바꾼 주된 원인을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서 출현해 전 세계로 이동했다. 여기서 인간의 이동은 단순히 자리를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데 인류가 이동하고 교류하면서 형성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물건이나 지식뿐만 아니라 전염병도 함께 퍼져나가면서 역사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지금 중국발 코로나19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빅히스토리에 기반한 글로벌 네트워크 개념으로 전염병 역사에 접근한다.


앞서 말했듯이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서 출현해서 유럽과 아시아, 오세아니아로 이동하고, 빙하기 동안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까지 넘어가면서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로서 인류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그후 동서를 최초로 연결한 실크로드가 구축되는데 지역 네트워크가 합쳐진 글로벌 네트워크인 실크로드를 통해 천연두가 이동했고 당시 로마 인구의 1/3이 사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실크로드는 단일 루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루트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된 형태인데 그중 아프로-유라시아 교환 네트워크인 해상 교역로도 포함된다. 이 바닷길을 통해 페스트가 확산되었고, 몽공제국의 확장은 흑사병이 퍼져나가는 토대가 되었다.


이후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가 발견된 이후 아메리카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유럽인이 대거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되는데 아프로-유라시아의 천연두나 매독 같은 다양한 전염병도 건너갔고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의 90% 이상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전염병 때문에 유럽인은 쉽게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정복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에 사탕수수와 커피, 면화 따위를 재배하여 상품화 하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노예 사냥꾼들이 아프리카 원주민을 납치하여 아메리카로 데려오는 노예무역이 성행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도착한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아프리카의 풍토병인 황열병을 함께 가지고 왔고 아메리카에 살던 유럽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근대에 와서는 대륙간 지역적 네트워크가 아닌 산업화에 따른 이촌향도의 산업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가 전염병 전파의 경로가 되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농촌에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해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산업 네트워크가 형성되자 도시는 일자리를 찾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청결하지 않은 환경에서 거주하게 되고 결국 거주지를 중심으로 콜레라가 창궐했다.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쟁이 대규모 감염병을 전염시키는 경우도 있다. 남북전쟁 때 불결한 위생 상태로 인해 세균성이질이 발생하였고, 전쟁으로 인한 전체사망자 중 1/4이 세균성이질로 사망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유럽으로 파병된 미국의 병사들과 함께 인플루엔자가 유럽으로 옮겨가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스페인 독감이다.


글로벌 네트워크의 형성과 발전, 그 속에서 사람들의 이동이 전염병의 확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로 오면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다양한 형태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사람들의 이동이 잦아지면서 글로벌 네트워크가 확대됨에 따라 전염병도 새로운 형태로 이전과는 규모와 양상을 달리하여 전파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간과 전염병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살펴보고,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했는지를 살펴본다면 그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지금 팬데믹 상황에 있는 코로나19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메세지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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