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좋은 말씀 - 법정 스님 법문집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 시공사 / 2020년 5월
평점 :

자 한 사람이 법정 스님에게 책을 내밀며 책에 가슴에 새길 좋은 말씀을 하나 써 달라고 청하니 법정스님이 책 귀퉁이에 말 그대로 '좋은 말씀' 이라고 쓰셨다고 한다. 책을 보면 큰 스님이 법문을 하실 때에도 좋은 말씀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그래서 책의 제목도 좋은 말씀이 된 것 같다.
법정 스님이 성불하신지도 10년이나 되었다. 이제는 큰 스님의 새로운 말씀을 듣지는 못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그동안 큰 스님이 하셨던 좋은 말씀을 새로이 들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매우 의미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미출간 된 법문까지 수록이 되어 있어서 큰 스님의 말씀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큰 스님이 입적하실 적에 '내 이름으로 출판된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큰 스님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어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스님의 좋은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그 뜻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큰 스님의 마지막 당부를 져버리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으나 현재에도 인기있는 유명한 셀럽 스님들이 있지만 이상하게 그들에게는 정이 가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팟캐스트나 책을 통해 법문을 설파하고, 멘토로서의 조언을 해준다 하더라도 법정 스님이나 성철 스님 같은 분들의 말에는 못미치는 느낌이다. 세월이 주는 무게감과 큰 스님들의 행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들 큰 스님들의 말씀은 더욱 가치있고 한마디 한마디가 무겁게 다가온다.
법정스님은 단순히 불교적 교리만을 설파하신 분이 아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의 정신으로 유명하지만 그것과 함께 책 표지에도 나오듯이 '받는 쪽보다 주는 쪽이 더 충만해지는 것, 이것이 나눔의 비밀'이라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나눔이란 단순히 기부와 같은 형태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와 많은 사람들의 충만해지는 삶을 위해 사회운동과 환경운동으로 나눔을 실천하셨다. 자신의 아이가 커서 좋은 환경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려서부터 공부시키고, 투자를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아이를 위해 아이가 살아갈 사회를 더 올바르고 좋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즉, 큰 스님은 후자에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셨다. 법문 곳곳에서 지구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자연과 환경에 대해 우려하고, 경각심을 가지도록 계속 말씀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소 절 밖에로 잘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큰 스님이 이명박의 4대강에 반대하여 반대서명을 하시기 위해 내려오신 일화는 유명하다.
책은 그 동안의 법회와 대중 강연 중에서 미출간된 법문 31편을 수록하고 있다. 지금도 큰 스님의 강연을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책에 나오는 내용들 중 어떤 것들은 동영상에서 들어본 기억이 있는 것들이었다. 책에 수록된 법문에서 큰 스님은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 상당수가 사랑하고, 비우고, 나누라는 것이었다. 사랑과 무소유와 나눔의 정신이다. 행복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이것이 큰 스님의 무소유의 정신이다. 무소유라고 하면 무조건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 거지처럼 사는 것이라는 오해를 하는데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 무소유이다. 그리고 나눔은 주변의 작은 것에도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라 가르치셨다. 집착 없이 버리고,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 큰 스님의 가르침이었다.
평화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부에서 싹이 틉니다
밖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 가슴속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싹트면
그 마음이 메아리 되어 나와 이웃과 우리를 평화롭게 해줍니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법계가 청정한 법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말이 아니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말로써 관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종교가 자비의 실현이라는데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메말라 있는 것인가? 관념으로써의 사랑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우리는 부모 형제, 이웃, 공기, 물과 흙, 바람,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은혜를 입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없이 무상으로 받기만하고 있다. 그것은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다. 우리가 입은 은혜는 반드시 되돌려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자손들이 다시 그 은혜를 입으며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하셨다. 사회가 정화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기 정화부터 해야 한다고 하셨다. 스스로 참회하고 자기 정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늘어 갈 때 사회도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 하셨다. 자기 정화를 이룬 후에는 매 순간, 매 시간 자비심을 이웃에 실천해 가야 한다고 하셨다.
남을 도우면 도움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다 같이 충만해집니다
받는 쪽보다는 주는 쪽이 더욱 충만해집니다
이것이 나눔의 비밀입니다.
맑은 가난을 살라. 이 강연에서 큰 스님은 '맑은 가난'이란 개념을 이야기 하신다. 그 당시 한국은 경제 불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는데, 불황의 원인이 소비 위축에 의한 내수 경기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수가 살고 경기가 좋아져서 호황이 된다면 과연 우리 삶이 행복해질까? 라는 질문을 하신다. 고도성장의 좋은 시절에는 흥청망청하며 살았는데 우리가 흥청망청할 동안 생태적 파국은 심해졌다. 고도성장 속에서 대량 생상, 대량 소비, 대량 폐기로 인해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의 환경은 오염되고,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 되었다. 경제가 어려운 것이 경기불황을 가져온다면 경제가 좋아지면 심각한 지구의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생태 윤리가 필요하다고 설파하시며 지구로부터 받은 자원을 소중히 하는 것이 지구 환경을 돌보는 일이라고 말하신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하고, 더 크고 많은 욕망을 가진다. 그런 욕망이 우리에게서 행복을 앗아간다. 사람이 아쉬움과 궁핍을 모르면 불행해진다. 아쉬움과 궁핍을 통해서 귀하고 고마운 줄 알라고 말하신다. 그리고 가난을 나누어 갖는 맑은 가난의 의미를 깨달으라고 하신다. 남을 돕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고, 남을 돕지 못하겠으면 해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굶주리는 이웃을 보살피는 일, 이것이 진정한 재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일이 재입니다
당신의 참다운 나이는 몇 살인가? 불교계에선 육신의 나이보다 부처님에게 귀의한 법의 나이대로 서열을 따진다고 한다. 어려도 법랍이 높을 수가 있고, 나이가 많아도 법랍은 낮을 수가 있다. 그런데 법의 나이란 횟수만 채운다고 한살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욕정진, 참기 어려운 것을 참으면서 밤잠 안 자고 꾸준히 정진할 때 법의 나이가 쌓인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중생을 이롭게 하고, 거두고, 고통을 대신 받고,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 것이 법다운 공양이라고 했는데 이 말처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법다운 공양을 하면 그거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신다. 불공의 진정한 가르침을 알고, 이웃에게 부처님께 하듯 공양하라는 가르침이다. 공양은 음식물만이 아니다. 몸과 말과 생각. 이 청정한 삼업으로 공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양은 마음가는대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마음은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마지못해 주는 것은 공양이 아니다. 아까워하면서 주는 것은 공양이 아니고, 마음이 선뜻 일면 몸이 따라가는데 이와 같은 일상적인 행위가 살아있는 기도고 정진이라 하셨다.
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오고,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이기심에서 온다
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연 내가 이렇게 마음먹고 이렇게 행독하는 것이 보살다운 행위인지, 거사다운 행위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 것이 남을 위한 일이라면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기이고, 나 자신만을 위하는 일이라면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아니란 것이다. 정진하는 사람들은 본래청정을 믿으라 하셨다. 본래청정, 우리는 원래 청정한 존재라는 것이다. 청정한 존재지만 가만 두면 거울에 때가 끼듯이 사람의 마음 또한 청정하지만 정진하지 않으면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 속에서 사는 우리들의 마음에 먼지와 때가 묻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항상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진한다는 것은 마음을 활짝 여는 일이다. 시시콜콜한 세속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본질적인 삶을 찾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것이 가치있는 일인지, 어떤 것이 보람있는 삶인지를 계속 살펴보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진을 하는 사람은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므로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순간을 살기 때문에, 늘 지금이기 때문에. 항상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에게 깨우침을 주는 좋은 말씀이다.
큰 스님은 법문을 말하실 때 다른 종교에서의 교리를 인용하기도 하고, 카뮈와 같은 문학 작품을 말하기도 하셨다. 큰 스님의 지혜의 깊이가 깊고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지신 큰 어른신이고, 참 종교인이셨다. 법문에서 끊임없이 강조하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비우고, 나누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스스로 정진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깨우침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