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레시피
이누카이 쓰나 지음, 김보화 옮김 / 벤치워머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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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영양과 사랑이 듬뿍 담긴 따뜻한 밥 한끼. 건강한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낸 집밥은 위생적이고, 설탕과 조미료도 적게 들어가고, 저염식에 비용적으로도 득이 된다. 집밥이 최고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직장과 학교에서 하루종일 시달리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그때부터 다시 식사 준비를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의욕도 없고 체력도 바닥이 나서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져버리는 번아웃 상태에 빠지면 요리라는 거추장스러운 일은 불필요한 행동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라면으로 대충 때우거나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게 된다. 하지만 라면이나 배달음식도 한두번이지 매번 그렇게 먹는 것은 영양적으로도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꽤 크다. 물론 기름지고 살이 많이 찌는 배달음식이 가져오는 비만이라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가 없다. 하지만 너무 피곤하고 영혼까지 연소시킨 밤에는 집밥을 해먹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일 햇반에 조미김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에게 번아웃 레시피 추천한다. 일반적인 레시피가 아니라 말그대로 현재의 번아웃 상태에 따라 재료, 장르, 시간, 도구를 골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이다. 몸에 남아있는 체력 게이지에 따라 아주 간편하고 빠르게 후다닥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초간단 체력 보충 음식부터, 조금은 체력적 여유가 있을 때 조금 더 손이 가지만 그만큼 완성도 높은 음식까지 번아웃 정도에 따라 추천하는 레시피를 분류해서 소개하고 있다.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발상이다. 하루종일 밖에서 힘들게 시달리고 집에 왔는데 복잡한 레시피로 요리를 해야한다면 차라리 라면이나 냉동식품 등으로 대충 때우거나 배달음식을 주문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레시피라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라면을 끓이는 정도의 수고만으로 근사하고 맛있는 한끼의 집밥이 뚝딱하고 완성된다면 당연히 번아웃 레시피로 맛있는 밥을 만들어서 먹을 것이다.


잔존 체력에 따라 가능한 레시피라는 발상은 너무 신선하다. 남은 체력이 없고, 쓰러질 것만 같은데 밥 한끼 먹겠다고 체력을 짜내서 음식을 만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기농 재료로 시간을 들려 제대로 만든 슬로푸드로 거창한 디너가 좋다는 걸 몰라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럴 시간도 체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슬로푸드를 만들어 먹지 않는 것이다. 힘이 없을 땐 지친 몸과 허기진 마음을 급속 충전해줄, 초간단, 초스피드 레시피로 만든 한끼가 더 좋다. 간단하게 설렁설렁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라면이나 기름진 배달음식보다는 훨씬 더 낫다.


게다가 혼자서 밥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라면 보통 먹는 메뉴가 거의 일정하다. 특별한 것을 만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매번 만드는 메뉴만 만들어서 먹기 때문에 굉장히 식상하다. 맛있게 잘나온다는 편의점 도시락도 거의 같은 반찬에 비슷한 구성이라서 몇 번 먹고나면 질리게 된다. 그리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1인 가구 생활자인 사람들은 (특히나 남성은) 집에 변변한 요리 도구 같은 것도 없는 경우가 많아서 모처름 큰맘먹고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해도 재료나 도구가 없어서 먹고 싶은 요리를 포기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이 번아웃 레시피는 유용하다.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집밥 레시피가 70여가지나 소개되고 있어서 이 책을 참고하면 식상한 메뉴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복잡한 도구나 음식 솜씨가 없어도 맛있게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 요리 초심자나 거창하게 요리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다.


책은 체력게이지가 HP 5%, HP 20%, HP 60%, HP 80%인 경우에 만들 수 있는 잔여 체력별 레시피가 소개되고 있다. 이 레시피는 재료 준비부터 요리과정은 물론이고 설거지의 최소화까지 고려하여 만들어진 레시피라서 뚝딱 만들어서 뚝딱 먹고 뚝딱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몸이 고단할 때는 요리하는 것도 귀찮은데 설거지는 더 귀찮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설거지가 하기 싫어서 요리하는 것을 기피하는 사람도 꽤나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설거지 거리를 최소화해주는 레시피라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초간단, 초고속 레시피 이외에도 간단히 요리할 수 있는 초특급 간단 요리도구와 집에 상비약처럼 항상 구비해놓고 있으면 도움이 되는 레토르트 음식, 미리 손질해서 냉동실에 보관해두면 나중에 간편히 꺼내 쓸 수 있는 야채손질과 냉동보관법, 1분 만에 만들 수 있는 1분 스프와 국 등의 알짜 정보도 소개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일본서적이라 일본식 음식이 주가 된다는 점이다. 일본 가정식이라고는 해도 파스타나 샌드위치 같은 음식들도 소개되고 있어서 여전히 다양한 장르의 음식을 즐길 수가 있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한식은 없다는게 아쉽다.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들도 일본요리에서 주로 사용되는 숙주라던지 미소된장 같은 것들이어서 일본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레시피를 응용하여 비슷한 방식으로 나만의 한식 레시피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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