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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방울방울
이덕미 지음 / 쉼(도서출판) / 2020년 4월
평점 :

추억은 무조건 아름다운 것이다. 과거는 돌아오지 못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결코 되돌리지 못할 기억,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 시간들에서 멀어져갈수록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기억은 깊어진다. 이 책은 그 시절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돌아오지 못할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자, 자신의 가장 빛나던 순간에 대한 헌사일 것이다.
8~90년대는 지금 기준으론 촌스럽고 쎄련되지 못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아날로그의 시대로 모든게 느리게 움직이고 불편함도 많았었다. 하지만 경제적 호황으로 특유의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느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때는 공기 중에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떠있는듯 했다. 어쩌면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기도 했을만큼 문화적으로도 화려하게 꽃피웠던 시절이었고, 한편으로는 암흑한 독재와 학생운동의 시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9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뒤섞이며 사회는 점점 빠르게 변해갔으며 그렇게 20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밀레이엄을 맞아하게 되었고, 그렇게 20세기와는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출판사의 서평을 보면 6, 70년생에게는 무한 공감을, 80년생에게는 어렴풋한 추억을, 90년생 이후 세대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준다고 써있지만 미안하게도 이 책은 오롯이 6, 70년생을 위한 책이다. 그 시절에 10대 20대의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만이 이 책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때의 시대정신과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90년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 때는 이랬구나 하는 정도의 정보전달 수준에 그칠 뿐이다. 10대 20대의 감수성으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간을 보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크게 히트를 했지만 청춘의 감정을 그 시절에 녹여가며 그 시간들을 지나온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그 때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지금의 청춘들이 그것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란 천양지차다. 어린 친구들은 이것을 색다른 재미거리로 소비하고 말겠지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에겐 마치 자신의 앨범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내가 살아온 역사이고,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책에 나오는 추억들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다보면 정.말.로. 옛생각이 방울방울 많이 떠오른다.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 패턴, 지금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 그립고 정겨운 수많은 일들. 그 시절과 그 때 사람들만의 연결고리가 많은 기억과 어릴적 추억을 소환한다. 그리고 웃음과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맞아, 옛날엔 그랬지' 책을 보며 계속 되뇌이게 된다.
책에 있는 삽화는 그 당시의 분위기와 느낌을 굉장히 잘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 그 시절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가령 골목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아이가 입고 있는 빨간 옷은 등번호 18번의 선동렬의 유니폼이고, 포스터 그리기를 하는 책상엔 아코디언 물통이 놓여 있다. 시험을 치는 초등학생들이 중간에 올려놓은 가방은 세워놓는 스타일과 옆으로 눕혀놓는 스타일까지 모두 구현해내었다. 채변봉투를 담는 통에 적힌 남성국민학교는 우리집 바로 옆에 있던 학교라서 더욱 반갑다. 추첨식으로 들어가는 사립학교였는데 비록 추첨에서 떨어져서 그 학교에 다니진 못했지만 어쨌건 반갑다. 극장 간판에 그려진 탑건과 영웅본색은 실제로 1987년 같은 해에 개봉을 했었던 것 같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타는 스카이콩콩 손잡이엔 정말로 술이 달려 있었고, 방 TV 옆에 놓여있는 못난이 3형제 인형이나 신문에 나와 있는 TV 편성표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쳐놓은 것이나 TV가 골드스타인 것까지 깨알같은 디테일이 잘 살아있다. 그래서 글보다는 삽화에 더 눈이 간다. 앨범 속의 지난 사진을 보듯이 삽화를 보면 옛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물론 그렇다고 책에 소개된 추억을 모두 경험하고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공기놀이를 해본적도 없고 다마고치도 없었고, 스프링말을 탄적도 없다. 비닐포대 썰매를 타보지도 않았고, 피카츄 돈가스를 먹지도 않았다. 스프링 말을 타기엔 너무 늦게 태어났고, 다마고치를 하기엔 너무 일찍 태어났었다. 어중간하게 중간에 낀 세대쯤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이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시간대에 속한 그 문화들을 모르지는 않을 뿐더러 그 것들을 보고 들으며 접해왔기 때문에 낯설진 않다. 그런 것들은 그것대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시간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는데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오랜 앨범을 펼쳐보며 옛 기억에 빠져 흐뭇하게 미소짓게 만드는 마법같은 그림에세이다. 추억이 있어 즐겁고, 추억할 게 있어서 기쁘다. 어릴 적 그 시절을 글과 그림으로 만나보며 지난 일을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기억의 기록. 추억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