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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평점 :

[틸리 서양철학사]는 철학서의 교과서라고 알려질 정도로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철학교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른 철학책의 경우는 그것을 집필하는 작가의 생각이 많이 반영되어 주관적인 시각에서 철학을 다루고, 독창성이 강한데 반해 프링크 틸리 교수의 서양철학사는 이른바 철학자들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는 모토로 자신의 비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기초로 하여 쓰여졌다. 저자에 주장에 따르면 철학사는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와 비판, 수용의 과정을 이어가며 발전해가는 최고 비판자라고 한다. 하나의 체계는 후속 체계에 통합되거나 변모되거나 보충되거나 대체되며, 때로는 그 오류와 모순이 드러나기도 하고, 이전의 사상은 새로운 사상 노선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차피 나중에 등장하는 철학자나 체계들이 앞선 철학자와 학파를 아주 훌륭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비판을 할 것도 없다는 식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비판을 제거하고 철학의 비판은 철학자에 맡긴다. 다른 철학자들의 주장 자체가 다른 철학의 사상의 비판의 기초와 맥락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비판은 거세하고 그것만을 제대로 다루어도 공정한 비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내용을 한마디로 철학사는 스스로 자신의 최고 비판자라고 표현했다. 철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체계에 대한 비판이지만, 비판을 가하기 전에 먼저 해당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틸리 교수는 스스로 철학자들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명료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책을 썼다고 했는데 그런만큼 문체가 명료하고 단순한데 이것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책의 두께도 두껍고, 방대한 양과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인 것 같다. 어차피 철학이란 학문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인만큼 약간 어려운 것은 감안한다면 [틸리 서양철학사]는 가장 공정하고, 명징하게 직조해낸 철학서의 교본이라 할만하다.
저자는 철학사의 가치에 대해 철학은 실존의 근본적인 문제와 문명의 상이한 단계에서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며, 그런 철학의 연구는 과거와 현재의 윤리적·종교적·정치적·법률적·경제적 개념들이 전제하는 근본 원리를 드러냄으로써 그 개념들에 빛을 던져주는 것으로, 철학사 연구는 철학적 사색을 위한 유용한 준비과정으로 이바지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의 철학을 공부함으로서 자신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사는 과거의 철학자들의 업적에 대한 결과물을 얻는 것 이외에도 미래의 철학적 탐구를 위한 출발선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리스 철학, 중세 철학, 근대 철학의 총 3부로 구성되 있으며 1부 그리스 철학 편에서는 자연 철학의 많은 이론들과 소피스트의 시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고 2부 중세 철학 파트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출발과 스콜라주의의 형성과 정정 그 몰락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지막 3부 근대 철학편에서는 근대 철학의 태동기인 르네상스 시대부터 대륙 합리론과 영국 경험론, 계몽 철학, 칸트와 헤겔을 거쳐 독일 관념론과 19세기 프랑스 철학과 영국 철학, 현대철학의 관념론과 현대 실증주의와 실용주의, 분석철학까지 근대 철학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단, 저자가 1934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책에서 다루는 현대철학 파트는 저자가 생존해 있던 당시의 현대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지금 일반적으로 말하는 현대의 철학은 빠져 있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도 틸리 교수의 언어로 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신은 죽었다와 초인이라는 도발적인 사상으로 유명한 니체는 그 외에도 많은 철학적 개념과 사상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영겁회귀 이론이다. 이 이론은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의 이론에서 이 개념을 발견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수로 표현할 수 있는 척도, 질서, 비례, 통일적 순환을 발견했다. 수가 없으면 통일성, 질서, 법칙이 없다고 추론했고, 만물의 기초에 수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들은 수는 사물의 근거라고 믿었다. 수가 사물의 본질이라면 수에서 발견 가능한 무수한 구체적인 것들을 우주의 성질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니체는 여기서 우주가 유한한 수의 권력량과 유한한 양의 에너지로 구성된다는 가설에서 보면 유한한 수의 서로 다른 조합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의 삶이 무한한 시간 속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반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영겁회귀를 허무한 것으로 보았다. 니체가 허무주의자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 영겁회귀 사상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상태가 반복되고, 이는 연약한 인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상이다. 이 허무주의를 긍정하는 인간이 강한 인간이고 이것이 초인인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라이벌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철학의 목표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얻는데 있다. 스토아 학파의 목표는 윤리학을 위한 이성적 기초를 찾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핵심은 쾌락주의이고 자연주의적, 이기주의적 철학을 추구했으며, 스토아 학파는 금욕주의가 핵심으로 이성을 통한 욕망을 억제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 부동심을 추구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통한 진정한 행복추구와 고통이 없는 평온한 마음의 상처를, 스토아 학파는 금욕을 통한 인생의 최고선과 행복을 추구하며 정념이 없는 마음의 상태를 지향했다. 두 학파의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전쟁과 공동체의 붕괴로부터의 현실 도피라는 목표는 같았다. 고등학교 때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책은 분명 어렵다. 표현부터 사용된 단어까지 분명히 쉽지 않다. 책을 한번 독파한다고 서양철학사에 대해 알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말자. 원래 서양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려운 것이지 책이 어렵게 쓰여졌다는 뜻은 아니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을 따라가기에도 버거울 것 같다. 우선 한번 독파하면서 서양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한 번 더 읽으면 각각의 사조와 철학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고, 세번째에 가서는 저자가 말하는대로 다른 철학사상과의 연계를 통해 후대의 철학 사상으로 기존의 철학을 비판하고, 수용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