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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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 엔슬러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이 책은 소수의 사람들을 보호하자고 하는 것도, 대변하고자 하는 것도,  페미니즘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인권에 관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의 원제는 "Reckoning"이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심판'일수도 '사유'일수도 있다.
이브 앤슬러는 사유의 부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이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하고,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관심과 사랑이 그리고 거기에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이브 앤슬러가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을 왜 강조했는지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제일 당황스러웠던 점들은 이게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이 맞나, 하는 것이었다. 팬데믹의 단어가 보이고, 그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여건이 여성들에게 쏟아놓는 것들은 일일이 설명하기에도 마음이 아프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고 침묵하고 방관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하다. 글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암담하다. 당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마음 한켠을 끌어안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 책장넘기는 시간이 오래걸린 책이다. 최근에 읽었던 타라나 버크의 《해방》과는 또 다른 느낌.


📒 p. 13
이 책은 속도를 줄이는 것과 되돌아보고, 보고, 진정으로 다시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책임과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순간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히도 외로운 우리가 갈구하는 손길, 잃어버린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벽을 허무는 이야기, 벽을 세운 우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자문하는 이야기다. 에이즈의 시대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페미사이드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슬픔, 트라우마, 지곧한 바이러스,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사유에 관한 이야기다.

📒 p. 14
나는 단 한 번도 개인을 정치에서 제대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위대한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가 말했다. "감정이 육체로 들어오는 순간/그것은 정치적인 일이다. 이 접촉은 정치적이다." 나 또한 이를 믿는다.


📒 p. 20
사유는 대체 무엇이며 지금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할까? 사유의 과정은 기억하기, 인식하기, 책임지기의 행위를 수반한다. 눈앞에 있으나 우리가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수치심을 기꺼이 끌어안으라고 요구한다. 사유는 개인과 집단의 책임과 그 둘이 언제, 어떻게 교차하는 지를 결정한다. 진정한 사유에는 실수와 잘못,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일까지도 뒤따른다.

📒 p. 21~22
여러 측면에서 이 책은 어떤 슬픔의 형상이다. 집합적이고 파편적이며 너무 늦어버린 슬픔. 그런 것들이 흘러 모였다. 그것들은 머리보다는 마음을 따른다. 그것들만의 궤적을 갖는다.
그리하여 이것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 p. 22
나의 글쓰기는 증인이었다. 고발이며 고백, 발굴, 구원이었다. 단어를 나열하는 일은 일종의 벽돌쌓기였다. 그마저도 아주 잠시만 지탱되는. 그렇게 나는 혼돈과 폭력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렸다. 글 속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족을 찾을 수도 있었다. 우리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실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 p. 23
나는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려 겨우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쓴 시구 한 절, 에세이 한 편, 연극 한 편, 기사 한 줄, 책 한 권은 전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내 존재가 증발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호벽이었다. 당신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음절과 명사, 동사로 쌓아 올린 존재는 대단히 위태로운 명제와 같다. 읽는 이가 글쓴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치를 모르거나 존중하지 않아, 글쓴이를 거절과 외로움이라는 남루하고 불타는 구덩이로 던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 25
글쓰기는 하나의 생존 방식일 수도 있다. 혼란을 염려하는 방식, 타인의 횡포에 휩쓸리기를 거부하는 방식,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는 방식.

✏️ 이 부분을 읽는데, 정희진《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의 일부분이 생각났다.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언어는 그들의/우리의 유일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 그리고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자원. 불행인건지 그래도 숨통이 있어서 다행인건지. 이겨내고 살아낸 자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 28
나는 폭력이라는 실체가 처음으로 내 몸에 깊이 각인된 이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세상ㅇㄹ 향한 내 신뢰가 처음으로 흠들리기 시작한 순간, 두려움의 본질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야 챘던 순간이었다. 내가 나의 ㅈ거이 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집에서 나는 죄수처럼 살았다. 집, 하면 떠오느는 신뢰, 안전, 평안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피난민처럼 살았다.


📒 p. 176~177
일찍이 나오미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자본주의가 더 큰 이윤을 위해 재난을 빌미로 삼아 평소라면 불가능했을 조치들을 시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재난 가부장제는 이와 아주 유사하고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남자들은 위기를 이용해 통제권과 우위를 재천명하고 여성들이 힘들게 얻어낸 권리를 빠르게 삭제한다. 전 세계에서 가부장제는 바이러스 확산을 최대한 활용해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여성을 향한 폭력과 위협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남자들은 통제자이자 보호자를 자처하며 이에 개입한다.


📒 p. 178~179
이 파괴적 감염병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여성을 향한 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광경을 보고 있다.

감금, 경제적 불안, 질병의 공포, 알코올 남용이라는 록다운의 조건은 학대가 발생하기에 완벽했다. 2021년에 자신의 부인, 여자친구, 아이들을 통제하고 괴롭히고 때리는 일에 열성이며 그럴 권리를 가졌다고 느끼는 남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과 그 어떤 정부도 록다운을 계획하며 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신경을 거스르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 코로나 시대와 연관되어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문제만 신경썼지, 세상의 어느 부분에서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이게 지금 이 시대의 일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고 나는 눈과 귀를 막고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팬데믹 이후에 상상할수도 없는 숫자의 여성들이 직업을 잃었다고 한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은 정말 아주 조금이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 p. 227
나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유명 액션 댄서인 엘리자베스 스트랩은 말한다. "추락?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없다. 다른 어떤 점보다 추락에 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완전히. 추락은 당신이 무언가를 해 보기도 전에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다. 미래는 마침내 '지금'이 순간이 된다. 추락할 때 할 수 있는 것은 추락뿐. 계회그 아이디어, 숙련된 기술 따위는 아무 소용없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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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ㅣ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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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40만 독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페인트》의 작가 이희영의  타임슬립 판타지이다. 가끔은 뻔하게 보이는 클리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어느 정도 답이라고 다들 생각하기에 클리셰가 되는 것일지도.
청소년문학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이 소설을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산 이후나 가능한 것 같다. 정말 좋을 때는 그게 좋은 시절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뭐든지 가능한 때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까.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는 말, 결국은 미래의 과거는 오늘이기에 미래의 나에게 덜 부끄럽거나 덜 미안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말은, 자주 반복해서 되내이며 실천하지 않는 한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고 지나오지만, 난 늘 현재의 나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런 타임슬립 판타지에 매력을 느낀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그 순간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면 무엇인가는 달라질까. 어릴 때에는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아니 몇년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늘 내 선택은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는, 순간순간에 조금 더 충실해진 것 같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정말 내가 나이가 든 순간에 후회라는 것을 하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덜 할테니까. 정말 아무것도 새로 할 수 없는 나이에 후회라는 것이 밀려오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최근에 읽었던 제프 베조스의 이야기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80세에 가서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는다고.)

소설속의 나우를 보면서, 나우의 타임슬립을 보면서 어쩌면 그게 타임슬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대한 불확실한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과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이런 경우에는 어떠했을까 상상을 해보면서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 말이다.
그런 과정속에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원하지 않더라도 조금 더 나은 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페인트》를 읽고 있는 초딩 아들에게 이 책을 넘긴다. 그 아이는 어떤 말을 들려줄런지......

📒 p. 86
삶은 과거에서 현재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삶이란 어쩌면 그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인지도 몰랐다. 시간은 때때로 훌쩍 건너뛰기도 하고, 한곳에 오롯이 멈춰 있기도 하니까.

📒 p. 97
평생을 오직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많은 '나'들이 찰나에 존재했다. 덧없이 사라지고 다시 존재함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탈피하고 그 껍질을 버리는 갑각류처럼,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p. 123~124
"돌아갈 수 있다고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을까요? 어제는 오늘의 과거입니다. 내일의 과거는 오늘이지요. 내일은 그다음 날의 과거가 됩니다. 우리는 늘 과거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이니, 오늘 뭔가를 헌더면 내일이 바뀌지 않을까요? 과거는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매일매일 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은 오후가 되는 즉시 과거가 되고, 오후는 밤이 되는 순간 과거가 되니까요. 우린 과거에 살지만, 정작 그 과거를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손님은 뭔가 시도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뭐든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아마 인간에게 어려움이나 좌절, 실패나 패배도 없겠죠. 세상에나, 그건 상상만으로도 지루하군요. 사는 게 너무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 p. 125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 p. 139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 p. 158~159
세상은 내 의견과는 상관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그 억울한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전장을 누빈 장수의 몸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수많은 상흔이 생긴다. 이런 깨달음이 하나둘 늘어 가면 세상은 비로소 그를 어른이라고 부를까. 가슴에 우물 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물이 모두 말라 버려 돌멩이를 떨어뜨렸을 때 찰방, 소리가 아닌 뿌연 흙먼지가 일어나는 사막 같은 곳.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가슴속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 p. 198~199
"조명이 비추는 곳은 환하고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텐더가 손가락을 세워 머리 위에 매달린 조명을 가리켰다.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과 행복, 감사와 평안, 아니면 불안과 우울, 좌절과 비통. 생각의 조명이 어디를 비추느냐에 따라 유독 그 부분이 도드라져 보일 수 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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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ㅣ 뭐야뭐야 1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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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이 책은, 히토쓰바시 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한일관계에 대하여 느끼는 찝찝함, 역사의 진실에 대한 답답함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프롤로그를 읽다가, 케이팝을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어른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왜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까. 젊은 세대들의 그런 모습들을 그냥 묵인한다고만 여긴 것이다.

역사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수 밖에 없는 배경에 대하여 두 가지를 지목하고 있다. 하나는 교육, 다른 하나는 언론 매체의 보도방식이었다. 대충 짐작으로 이럴 것이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일본인의 글을 통하여 사실을 접하게 되니, 조금은 더 적극적인 우리의 행동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더불어, 일본 내부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앞으로의 시대에 조금은 희망적이지않나 하는 생각도.


📒 p. 16
까끌까끌한 찜찜함,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과거에 저지른 일은 분명 폭력적이고 잔혹한 지배였는데, 어째서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했을까. 어째서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면 알수록 발밑이 기우뚱거렸다. 그래도, 그렇기에, 더 알고 싶었다. 당신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엇에 실망했을까? 무엇을 이대로 둘 순 없다고 곱씹었을까?


📒 p. 49~5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나 대부분의 일본인이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과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본에는 문언상으로 사죄하고 이 이상 문제화하지 않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란 일단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제도가 국가 범죄임을 전제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뒤 그것이 진심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국가가 배상할 것, 나아가 진정 규명, 역사 교육 등의 재방 방지책을 시행하는 후속 조치를 포함한 '사죄'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해결'이란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죄종적'이거나 '불가역적'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일 '합의'는 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사죄'와 '해결'이란 일시적인 사죄나 배상금(일본은 그것조차 내지 않았지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사죄의 뜻을 밝히고 '해결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죄'와 '해결'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 p. 51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피해 여성들로, 이 문제는 인권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마무리 지을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피해자의 존엄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햐야 함을 잊지 말자. 그러기 위해 그 배경에 있는 일본의 침략 및 식민지 지배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일본인은 우선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정치 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p. 168~169
불편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학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역사를 배우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외면하고 싶은 사실까지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의의 아닐까.


📒 p. 187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 선택이 가능했던 것, 어려운 문제라며 그냥 회피했던 것, ‘역사와 문화는 별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일본인인 나의 특권이었다. 나는 굳이 일본의 가해 역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순수하게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 p. 192
물론 무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니 무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일본인이 가해 역사를 반성하는 데서 그친다면,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거나 차별을 없앨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당사자를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당사자가 직면한 ‘차별받는 현실’이 내 안에서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어느샌가 일본인으로서의 나를 먼저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내 안에 숨어들었다.


📒 p. 212~213
피해자를 이해하는 행위에 끝이란 없다. 그 점에서는 역사 문제의 ‘벽’을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가해 역사를 외면하고 철저하게 소수자를 억압하는 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보호받으며 살아왔다. 내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든 지금도 앞으로도 일본인이며, 일본인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렇게 쓰면 내가 직접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과하게 무거운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악행을 방치한 것과 과거에 직접 악행을 저지른 것, 이 두 가지가 과연 어느 정도나 다른 것일까.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발판 삼아 이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 누군가란 재일 조선인 등 일본 사회의 소수집단이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가들에 일본이 저지른 가해 행위의 피해자들이며, 전 세계 식민주의, 인종주의, 젠더차별과 계급차별의 피해자들이다. 우리의 삶은 분명히 그들 위에 존재해 왔다.


✏️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내고자 했다는 게 고맙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 좀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고맙다. 일본의 많은 젊은 세대들이 이런 인식들을 가지고 있어준다면, 그래서 한일관계에 다른 기류가 흐른다면, 우리는 정말 가깝고도 먼나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렇게 바른 소리만 하는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괜한 기우이기를 바랄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고1 딸아이에게 계속 읽어주었다. 아이는 "대박! 그 사람들, 인생5회차 아닐까? 어떻게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서 이런 글들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사람들 지금 살아있는거 맞지?"

아이 역시 나처럼, 그들의 안녕을 걱정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연한 생각들을 늦게라도 많이 해주었으면,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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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영감의 스위치를 켜라
구자영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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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영《디지털 시대, 영감의 스위치를 켜라》


일론 머스크는 2017년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로봇은 인간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일을 통해 인생의 믜미를 발견합니다.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는 세상이 오는데 어떻게 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생각의 여지를 열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아이랑 영어기사를 찾아 그것에 대한 자기 의견을 사설로 쓰는 수행준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찾았던 신문기사가 바로 ChatGPT의 문제점에 관한 것이었다. 책을 읽다보니 같은 기사가 나와서 어찌나 기쁘던지, 한편으로는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좀 더 풍성한 이야기를 논할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확실히 예전보다 편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맞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보면서 필요한 자료가 있을 때 , 궁금한 게 생길 때 가장 크게 느낀다. 예전같으면 하나의 책에서 궁금한 게 생기면 다른 수많은 책들을 뒤적이고 자료를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만 열어도 그 답을 바로 찾을 수 있다. 편한거는 장점이지만, 가끔은 필요한 것 이외에는 풍성해질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필요한 자료를 찾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자료들을 발견하고는 하는데, 스마트폰의 세계에는 "필요한 것만 바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편해진만큼 게을러지는것도 추가된다.

이렇게 의존도가 높아지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보고서나 논문을 쓰면서도 ChatGPT를 이용하여 작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작권의 문제는 따로 논한다 치더라도 생각이나 사고능력의 결핍을 초래하는 것은 어찌 막을 것인가.

그리고 "정보환각현상"을 초래한다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정보환각현상은 ChatGPT가 생성해 낸 오류있는 정보를 진실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러한 정보를 이용하여 쓴 글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 문제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테슬라의 뉴럴링크가 FDA로부터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임상실험에 대한 허가를 받은 부분에 있었어도 분명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정적인 면들도 있지 않겠는가.
책에서 언급되는 여러 사례들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렇게 변화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살아남는 법.
창조적 영감에 있다.


📒 p. 18
두리들 대부분은 압도적인 구위로 타자를 제압하는 강속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모두의 인생 속에는 자신만의 강력한 변화구가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 인생 속 보물과 같은 그 변화구를 발견하게 하는 힘은 바로 영감이다.


📒 p. 34~35
영감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또한 각자가 모두 자기 인생에 단 하나뿐인 원조, 오리지널 걸작이라는 자부심과 자존감의 발견이다. 그리고 영감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 p. 70~71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는 문장 속 단어들 사이의 패턴을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내어 문장의 맥락을 학습하는 모델이다. 이러한 언어 모델을 활용하게 되면 문장속에 나타나는 분위기, 맥락과 같은 고차원적인 요소들을 AI가 학습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AI는 데이터에 라벨을 붙여서 학습하였다. 반면 지금의 AI 는 사전에 학습한 데이터 안에서 스스로 언어를 생성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 p. 73
물리적 노동에 이어 지적 노동의 영역 즉 생각마저 인공지능에게 아웃소싱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을 아웃소싱당한 인간은 건전한 대안 없이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고유의 영역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언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 존재의 중요한 의미를 준다. 점점 생각하지 않는 인간과 오히려 생각하는 AI의 출현이라고 할까?


📒 p. 138
인공지능과 인간의 문제도 결국에는 집단화, 최적화되고 패턴화된 지능 집단(AI 시스템)과 개인의 문제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생성해 낸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만들어진다.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의 집단 지성 총체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인간 집단 지성의 총체가 진실의 실체에 얼마나 가까운가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내어 놓은 정확한 지식과 답변 결과물들이 집단 지성을 대변할 수 있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때론 진실과 먼 혹은 어떤 한 인간 혹은 작은 조직의 직관과 초월적 진리에 대한 답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점이다.


📒 p. 163~165
창의성과 유사한 창발성은 하위 차원의 존재들로 있을 때는 의미가 없다가 그러한 하위 차원들이 모여 상위 차원을 구성할 때 의미가 갑자기 발현되는 현상이다.

심리학자 루웬스는 이러한 창발성은"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존재 간의 협력"이라고 표현했다. 즉 창발성은 서로 다른 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우연한 만남으로 새로운 의미를 가진 것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우연성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발생되어 사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연결성은 기술 간, 산업 간, 학문 간 융합이 가속화되는 디지털 시대에 더욱 필요한 역량으로 부상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창발성은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인공지능은 규정에 기반한 알고리즘에 의해 설계되고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과율의 세계에서는 번뜩이는 우연성에 의한 비선형적 사고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진 우연적인 창발성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인공지능에 비해 차별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 p. 188
디지털 과잉이 불러오는 가장 큰 폐해 중 첫째는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성형 AI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심해졌다. 인간이 이러한 디지털 기술에 생각을 아웃소싱하게 되면 인간의 고유성인 사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수동화되기 쉽다. 디지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독창적인 서사는 빈약해진다. 발터 벤야민은 "서사 예술이 희귀해졌다면 정보의 확산이 이러한 사태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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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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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모예스 #미비포유 #도서협찬 #다산북스 #소설추천 #영화도좋고책도좋고👍👍👍

📚 조조 모예스《미 비포 유 me before you》

이 책은 세 번째이다. 영화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라고 할 수도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가 너무 좋아서, 원서를 읽었다. 그다음은 중학생이었던 딸아이에게 번역판을 사주고 그 책으로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수행준비를 하면서 한번 더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아름다운 표지의 개정판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든 "좋은" 책이 그렇겠지만, 읽을 때마다,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참 다르다. 책을 읽게 되는 간격 사이에, 내가 지나쳐 온 시간들과 상황들이 책의 다른 부분들을 보게 한다. 찾게 한다.

이 책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것에 꽂혀 책을 보다가 설레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정말 감정이 요동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루이자의 입장에서, 그 다음은 윌의 입장에서, 그리고 이제야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드는 생각은, 내가 윌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는 생각이다.

📒 p. 352
간병인 일에서 가장 나쁜 점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들어 올리고 청소를 하는 일도 아니고 아득하지만 항상 코끝에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도 아니다. 심지어 다들 내가 다른 직업을 가질 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는 사실조차 최악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하루 종일 누군가와 딱 달라붙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기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의 기분에서도.

✏️ 이번에 읽으면서 이 문장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윌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도 이런거 아니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충만할 때는 상대의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에 그 힘이 나약해 졌을 때는 루이자는 다시 간병인의 느낌을 오롯이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이 넘치던 남자가 사랑이라는 것에 잠시 매달려 있다가 그 느낌마저 사라진 순간에 죽음이 생각난다면 그때는 죽는거 조차 편안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p. 500
"미안해요. 내겐 충분하지 않아."

그는 말하기 전에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는 꼭 정확한 단어들을 골라야만 하겠다는 듯이. "난 그걸로 안 돼요. 이. 내 세상은, 아무리 당신이 있더라도 모자라. 진심으로 말하지만 클라크., 당신이 오고 나서 내 삶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어요. 그렇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에요."

✏️ 이 뒤에 세 장 정도에 걸쳐 윌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었던 한 개인이, 이제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을 때, 휠체어라는 것에 갇혀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이 느끼는 자괴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루이자를 만나고 순간적인 행복이 다가 오는 순간은 분명 있었겠지만, 그 뒤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그 행복을 알게 되는 순간 이전보다 훨씬 더 비참했을 것이다.

📒p. 575(옮긴이의 말 중에서)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소회를 하나 덧붙인다. 요즘 나는 무슨 일을 하든 그 근저에 두려움이 동기로 작용하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자율적인 선택이라고 착각했던 여러 행동들이 사실은 상처받거나 실망하거나 실패할까 두려워, 혹은 타인의 눈이 두려워 공포를 피해 타협한 회피였다는 자각이 어느 날 퍼뜩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삶이 그리 길지 않으며 죽음이 필연이라면 한순간이라도 두려움에 마비되어 허비할 수는 없다. 삶의 고삐를 쥔다는 게 누구에게나 허락된 사치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삶을 결정하고 책임질 힘은 내가 내 마음속에서 발견해야만 한다. 《미 비포 유》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그런 마음의 결의를 어루만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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