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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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이 책은, 히토쓰바시 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한일관계에 대하여 느끼는 찝찝함, 역사의 진실에 대한 답답함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프롤로그를 읽다가, 케이팝을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어른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왜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까. 젊은 세대들의 그런 모습들을 그냥 묵인한다고만 여긴 것이다.

역사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수 밖에 없는 배경에 대하여 두 가지를 지목하고 있다. 하나는 교육, 다른 하나는 언론 매체의 보도방식이었다. 대충 짐작으로 이럴 것이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일본인의 글을 통하여 사실을 접하게 되니, 조금은 더 적극적인 우리의 행동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더불어, 일본 내부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앞으로의 시대에 조금은 희망적이지않나 하는 생각도.


📒 p. 16
까끌까끌한 찜찜함,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과거에 저지른 일은 분명 폭력적이고 잔혹한 지배였는데, 어째서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했을까. 어째서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면 알수록 발밑이 기우뚱거렸다. 그래도, 그렇기에, 더 알고 싶었다. 당신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엇에 실망했을까? 무엇을 이대로 둘 순 없다고 곱씹었을까?


📒 p. 49~5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나 대부분의 일본인이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과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본에는 문언상으로 사죄하고 이 이상 문제화하지 않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란 일단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제도가 국가 범죄임을 전제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뒤 그것이 진심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국가가 배상할 것, 나아가 진정 규명, 역사 교육 등의 재방 방지책을 시행하는 후속 조치를 포함한 '사죄'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해결'이란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죄종적'이거나 '불가역적'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일 '합의'는 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사죄'와 '해결'이란 일시적인 사죄나 배상금(일본은 그것조차 내지 않았지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사죄의 뜻을 밝히고 '해결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죄'와 '해결'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 p. 51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피해 여성들로, 이 문제는 인권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마무리 지을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피해자의 존엄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햐야 함을 잊지 말자. 그러기 위해 그 배경에 있는 일본의 침략 및 식민지 지배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일본인은 우선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정치 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p. 168~169
불편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학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역사를 배우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외면하고 싶은 사실까지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의의 아닐까.


📒 p. 187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 선택이 가능했던 것, 어려운 문제라며 그냥 회피했던 것, ‘역사와 문화는 별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일본인인 나의 특권이었다. 나는 굳이 일본의 가해 역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순수하게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 p. 192
물론 무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니 무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일본인이 가해 역사를 반성하는 데서 그친다면,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거나 차별을 없앨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당사자를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당사자가 직면한 ‘차별받는 현실’이 내 안에서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어느샌가 일본인으로서의 나를 먼저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내 안에 숨어들었다.


📒 p. 212~213
피해자를 이해하는 행위에 끝이란 없다. 그 점에서는 역사 문제의 ‘벽’을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가해 역사를 외면하고 철저하게 소수자를 억압하는 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보호받으며 살아왔다. 내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든 지금도 앞으로도 일본인이며, 일본인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렇게 쓰면 내가 직접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과하게 무거운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악행을 방치한 것과 과거에 직접 악행을 저지른 것, 이 두 가지가 과연 어느 정도나 다른 것일까.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발판 삼아 이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 누군가란 재일 조선인 등 일본 사회의 소수집단이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가들에 일본이 저지른 가해 행위의 피해자들이며, 전 세계 식민주의, 인종주의, 젠더차별과 계급차별의 피해자들이다. 우리의 삶은 분명히 그들 위에 존재해 왔다.


✏️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내고자 했다는 게 고맙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 좀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고맙다. 일본의 많은 젊은 세대들이 이런 인식들을 가지고 있어준다면, 그래서 한일관계에 다른 기류가 흐른다면, 우리는 정말 가깝고도 먼나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렇게 바른 소리만 하는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괜한 기우이기를 바랄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고1 딸아이에게 계속 읽어주었다. 아이는 "대박! 그 사람들, 인생5회차 아닐까? 어떻게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서 이런 글들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사람들 지금 살아있는거 맞지?"

아이 역시 나처럼, 그들의 안녕을 걱정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연한 생각들을 늦게라도 많이 해주었으면,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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