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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평점 :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미술은 이미 완벽한 현대화를 이뤘다.
우리가 현대 미술이라 칭하는 작품들은 현실의 모방보다는 사유의 개념화를 지향한다.
화음보다는 불협화음을, 완벽보다는 미완을 추구한다.
그러나 문학과 음악은 그런 현대화를 아직 체화하지 못한다.
시각적인 예술과 달리 서술적, 청각적 예술에게 개념화, 불협화음, 미완은 몰이해, 거슬림,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에 있어, 그런 궁극적 지향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장 큰 강점은 저자 그 자체이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존재는 문예 및 철학사에서 빛나는 존재이다.
그가 남긴 글들은 동시대 및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사상의 강력한 발현을 목도하게 한다.
계몽적이지만 신비주의적이고, 신학적이지만 유물론적이다. 진보적인 모험 정신을 내포하지만 고전적인 과거 위업들을 확고하게 딛고 서 있다.
이러한 그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환상적이고, 파편적이며, 그로테스크한 글들이 개연성을 취득할 수 있다.
벤야민이라는 전제 덕분에 이 소중한 글들은 독자에게 무의미한 수수께끼가 아닌, 현실과 이상을 투영한 원초적 표현으로서 다가온다.
다음으로 벤야민의 유일한 문학 작품집이라는 의미가 있다.
비평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전자는 독자와의 관계에서 주도자가 될 수 없다는 점, 아무리 몰입을 하려고 해도 결국 제3자적 관찰자로 남게 된다는 점,
전자는 분해하고 해체하지만 후자는 융합하고 승화한다는 점, 전자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지만 후자는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 등.
이 책은 벤야민이 위와 같은 경계를 건너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그의 꿈, 비유, 사상이 비평을 넘어 문학의 형식을 갖게 되면 어떻게 나타나는지, 어떻게 문장 사이에서 움직이고 독자와의 관계를 형성하는지,
그 요소들의 결합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고, 무슨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내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