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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씨 ㅣ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3
강동수 지음 / 호밀밭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모든 "근거를 가진 비판"은 논쟁의 중심부로 들어올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 대해 어느 독자가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에 함몰된 서술을 비판한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수긍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맞기 때문이 아니라 수긍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 댓글들은 무엇인가..거의 언제나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비판하기가 쉽다. 그것이 무엇이든 가치나 규범을 성역화하려는 시도가 교조적인 것은 아닐까. 출판 관계자들의 벙찐 표정이 그려진다. 나는 출판사의 대응이 대외적으로 공표되었으므로 몇몇은 법정에 들어서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마도
출판사는 극도로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을 다독이기 위해 사과를 하고 출판될 책에 대해 자체 검수도 강화할 것이다. 그 이유는 또한, 그것이 맞기 때문이 아니라 20~30대 여성이 출판 시장에서 가장 큰 고객이기 때문이고 출판사는 영리기업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소설"을 변호하거나 비판할 평론가가 거의 없다. 너무나 강한 상대주의나 비이성주의가 주장을 독단이나 생각없음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김수영과 이어령 같은 날서고 매서운 대결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외에 우리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성이나 도덕과 관련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빈약한 설명을 가지거나 근거 없다는 것을 앞에 나서서 강론할 수 있는 사람은? 나는 위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교회의 어두운 면을 그렇게 꼬집고 조롱하면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여도 진화론이 함축하는 의미를 받아들일 거 같지는 않다. 지금 각계 과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많은 연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것과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아니 내 말을 인정한다고 해도 사회에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이 중요하다고? 다 맞는 말이다. 그것이 근거를 가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말보다 더 위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스스로의 옳음을 타인을 비난하면서 쟁취한다면 나는 그 어떤 것이든 바람직하지 않아보인다. 내가 궁금하고 관심이 있는 건 사람들이 가진 주장을 떠받치고 있는 근거다. 그리고 이렇게 되묻고 싶다. 모든 비판은 자유롭지만 그 비판의 과녁이 명중하지 않았을 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있나요?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