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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칸트전집 2,5,7권 세트 - 전3권 - 비판기 이전 저작 2 +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 도덕형이상학 ㅣ 한국칸트학회 기획 칸트전집
임마누엘 칸트 지음 / 한길사 / 2018년 5월
평점 :
전집을 출판한다는 것은 믿을만한 정본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기존의 전집 작업이 이름만 전집이었지 막상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철저한 불침투성과 개인성을 유지해서 단독 번역으로 많이들 출판되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고 거기에 참여한 학자들이 용어나 통일하고 몇몇 논란된 부분에만 신경을 쓰지 실상 별로 학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어떻게 표출되냐면 로x님이 지적하셨듯 그 전집에 참여한 사람이 그 전집을 인용하지 않는다던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 전집에 참여한 참여자들끼리 서로의 책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거나 좋은 번역이 아니라고 말하는 등으로 나타난다.. 그 자체내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번역물을 출판해 수십 년 동안 판매할 수 있는 것일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한 번역작업은 학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고 전개되고 거기에 중요한 요점과 논문들은 어떤 것이 있고 비판은 무엇이며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내 놓지 않는다면 그 책은 수용자에게 똑같은 길을 밟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똑같은 길이란 선배들이 걸었던 그 길을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데도 그 길 그대로 걷는다는 이야기다) 이 상황은 마치 해외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오는 사람들의 노하우가 후학들에게 전혀 전달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아서 후학들이 그들의 선배들과 똑같은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들(선배)은 개인적 작업에 함몰해 있어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내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헤쳐나갈 노하우를 선배들이 제시하지 않으니 후학들이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난 그래서 이 전집을 크게 두 부분에서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첫째는 용어의 통일이다. 나는 칸트학회에서 어떤 용어로 통일을 할지 전혀 모르던 상황이었는데 오늘 김진 교수의 글을 읽고 나서 칸트 학회 내에서 백종현 교수의 transzendental번역어인 초월적을 이제부터 모든 책에 선험적으로 다시 바꾸겠다는 내부적인 결심을 했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번역의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또한 제대로된 논증을 가지고 설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종현 교수님의 번역을 단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반에서 회자되는 초월적이란 용어가 ~을 넘어선다. 혹은 중세 형이상학을 상기시킨다는 점만으로 인해 그것을 선험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라면 나는 이것이 백종현 교수의 논문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원래 1권이 가장 먼저 나올 줄 알았다. 보통 그 책에서 용어의 통일을 꾀했다면 1권에서 그 이유를 드러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번역은 일관되지 않은 출판 순서로 보인다. 아니면 각각의 책에 그런 이유들이 다 담겨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칸트가 Transzendental이라는 의미를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사용한 시기에 맞춰 알리려 함인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둘째는 나는 칸트 학회에서, 이 전집에 수록되지 않을지라도 지금까지의 국내외 칸트 논의에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책을 반드시 출판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작금의 중국 학자들 뿐만 아니라 영미 철학자들의 논의까지 모두 총 망라하여 사상적 지형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책의 의의는 반감된다. 아니 어쩌면 더 하락할지도 모른다. 내가 백종현 교수의 책을 사서 읽는 이유는 그 책에는 도움이 될 논문, 책, 한국이나 해외 학계에서 칸트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추적하는 글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난 백종현 교수의 번역도 번역이지만 이 작업을 더 높이 보고 있다. 그리고 칸트 학회에서 이런 큰 기회(칸트 전집 발간이라는)에 그렇게 많은 관련 학자들이 모인 이 상황에서 의견을 나누고 전반적인 지형도를 그려 지금의 위치를 확인해 보는 작업이 반드시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게 되지 않으면 헤매는 사람들은 칸트 전집 15권이 모두 발간되도 똑같이 많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썼는데 누구의 글도 없는 상황이라서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에 악담을 퍼붓는 것 같기도 해서 다시 정중하게 고쳐쓸까도 생각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어떻든 책이 내 마음에 든다면 나는 이 책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