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묘지 민음사 세계시인선 4
발레리 지음, 김현 옮김 / 민음사 / 197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로 알고 있던 발레리의 시구를 김현 선생은 <살려고 애써야 한다>라고 번역했다. 느낌이 참 다르다. 애쓴다는 시구가 붙음으로 역동성이 더 강조된다. 20세기 전반의 프랑스 작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문제에 몰두하고 있다. 이 시가 카뮈의 시지프스처럼 핀다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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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무진 2020-10-0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 시로 시작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가 기존의 갖고 있던 시인의 이미진 고집불통에 꽉 막힌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웃긴 얘기지만 그에 대해 별 좋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가 사용하는 시어들이 내 맘에 썩 들지 않았고 시 전반적으로 흐르는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무척이나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인다. 물론 이 시집을 읽었다고 해서 그런 이미들이 대번에 바뀌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몇 가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 ‘죽음‘에 대한 아주 강렬한 복종을 하고 있음에도 왜 그의 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고 <창공> <해변><빛>이란 시어의 쓰임이 그의 시를 조금 다르게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표현하자면 <해변이 묘지>란 긴 시에서 발레리가 제논의 역설을 부정할 떄 나는 발레리의 마음 속에는 ‘화살‘이 아닌 ‘활‘이 들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화살이 날아가기 위해선 활의 시위가 당겨져야 하고 바로 그 시위가 놓아졌을 때 만들어지는 울림이 화살의 역동성을 더 강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울림은 두 가지 정도로 또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는 그 울림이 지속되는 동안(일종의 의식의 현전)이고 다른 하나는 그 다른면인 울림의 종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