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히나타 식당
우오노메 산타 지음, 한나리 옮김 / 애니북스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제가 한참 많이 먹고 자랄 때는 우리나라가 IMF를 겪을 때였어요. 학교에서는 매주 폐지를 많이 가져오는 아이들에게 도장을 찍어 주고 격려하는가 하면 어른들에게는 집 안에 꽁꽁 모셔둔 금으로 된 모든 물품들을 가지고 나와 나라를 살리자고 연일 방송을 해댔죠. 하지만 우리 집은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먹고 살기도 빠듯했거든요. 그 때는 유독 우리 집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대체로 제가 사는 곳에 사는 제 또래의 아이들은 죄다 기워입은 양말과 물려입은 옷, 구멍이 송송 뚫리고 목 부분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즐겨 입었었죠. 아이들의 놀이는 대개 학종이나 팽이, 딱지 등의 비교적 가격이 싼 놀잇거리가 대부분이었구요.

 

그랬으니 먹을 것도 결코 풍족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그렇다고 물가가 엄청나게 저렴했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전파상을 운영했었는데 전파상에서 각종 물품들을 팔아도 시장에서 많은 먹을 거리를 사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하니까요. 특히 IMF가 직격탄으로 때리고 있을 때 저는 매일매일 그날 먹을 쌀을 사와야 했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심부름은 안 하는 것 같았는데 저는 2000원 3000원 돈을 들고 가 그 정도의 쌀을 달라고 부탁해야만 했죠. 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파는 사람도 그리 반가운 기색은 아니었습니다. 매일을 그렇게 간신히 끼니를 때웠는데 반찬을 신경 쓸 틈이 있었을까요? 저와 형을 비롯한 4식구가 먹기에는 밥도 반찬도 항상 부족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밥을 못 먹는 경우도 흔했구요.

 

그런데 밥을 못 먹는 경우 저희가 꼭 해먹는 것이 있었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특히 오래된 감자와 고추가루나 각종 조미료는 친가, 외가 쪽에서 많이 얻어왔었거든요. 저희 집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먹을 것은 바로 '밀가루'였습니다. 그것으로 네 가족이 해먹을 게 뭐가 있겠어요. <수제비>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저는 수제비를 먹는 날이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음식은 몰라도 수제비는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밥을 먹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날 세 끼니를 밥을 먹으려면 우리는 가장 적은 양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수제비는 커다란 솥에 한웅큼 끓여 놓으면 먹고 또먹고 해도 별로 양이 줄어들지 않았지요. 그래서 저는 수제비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사실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모르겠어요.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구체적으로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왠지 그런 거 있잖아요. 엄청 맛있게 먹었는데 그것이 전혀 기억나지 않다가 어느 날엔가 문득 그 시절의 그 냄새와 맛을 느끼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과거가 벼락같이 밀어닥치는 기분이요. 아직 어느 곳에서 수제비를 먹어도 그런 느낌을 갖지 못한 것을 보면 그 시절의 맛을 재현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애써 수제비를 먹으러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가끔은, 그 시절의 수제비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저는 이런 책을 보면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요. 그리고 유독 일본에서만 이런 음식과 관련한 많은 이야깃거리가 글로 출판되는 것 같아 한편으로 아쉽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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