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7
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김현창 옮김 / 범우사 / 1997년 9월
평점 :
품절


철학과 소설, 양쪽에 다리를 걸쳐놓은 작가인 우나무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떠올린 사람은 쿤데라와 톨스토이였다. 언어 유희와 관념적인 서술, 에세이적인 요소들에 있어서 문체상 많은 유사성을 보였던 것이다. 특히 어떤 부분 '나는 나야'라고 주인공이 독백하는 부분은 쿤데라의 히치하이커 게임'의 마지막 장면과 순간적으로 결합하기도 했다.

고아인 주인공과 길을 걷다가 우연히 '에우헤니아-그녀 또한 부모님을 잃고 고모집에서 얻혀 살고 있다-'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본다. 그녀를 본 순간 숙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화자를 놀라게 하는 것은) 주위에 있는 모든 여인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이는 심리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일이다. 혼자 지내는 사람보다, 연인과 사랑에 빠졌을 단계의 상태에서 성적인 욕망이 배가된다고 한다. 특히 세탁하는 여인 로사리오에게 (다분히 권력적인 방식으로) 그녀를 희롱하면서 에우헤니아와 이 여인을 저울질한다.

그녀의 집 주위를 배회하며 기회를 노리던 어느날, 카나리아 새장이 창문에서 떨어지는 우연(혹은 필연) 때문에 그녀의 고모와 친분을 쌓게 된다. 고모의 입을 통해 얻어진 정보는 에우헤니아는 마우리시오라는 건달 같은 남자와 교제중인데 우리는 그 관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재산 대신 많은 빛을 지고 있다는 것을 들은 주인공은 그녀의 부채를 아무런 조건 없이 갚아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부자이고, 미남에다가, 학식 있는 주인공와 고모, 고모부는 서로 같은 욕망의 언덕을 향하는 암묵적인 계약을 하는 것이다.

마우리시오라는 애인 때문에 당신과 교제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한 에우헤니아는 어느날 마우리시오를 먼 곳에 취직을 시켜서 내 곁에서 멀리 떼내 버려서 결혼하자고 그를 유혹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마우리시오와 사랑의 도피를 하기 위한 간계일 뿐이었다. 너무나 화가 난 주인공은 당시 작가로 이름이 알려진 미겔 데 우나무노 선생을 만나 '나'는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우나무노를 만나 더욱 당황하는데 그것은 이미 자기가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산물이라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집에 돌아와서 (역시) 우연적인 요소인 급체 혹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서 소설이 끝이 난다, 고 나는 생각했다. 상당히 싱거운 결말이군 하고 콧방귀를 뀌고 다음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에 '후기'가 등장하는데 우연히 주인공이 길에서 주운 '개'의 독백부분이 나온다. 개가 인간들에게 느끼는 감정들은 곧 개=인간, 인간=신이라는 등식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간(주인,신)의 죽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개는 주인의 죽음에 끊임없이 슬퍼한다. 사라지는 육체, 그리고 정신의 불멸에 대한 회의 혹은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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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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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녀의 소설 중 한 편을 간단하게 요약한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의 어그러짐은 아이의 유산으로 발생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줌파의 플롯을 만드는 기법이다. 이야기의 순서는 역전되어 있으며, '정전'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두 사람의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리고 남자는 교수임용을 앞둔 사내라고 (암시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남자는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은근하게 드러나 있다. 몇 가지 여성의 보편적인 감정에 독자들은 서서히 가랑비에 젖듯이 젖어가는 것이다.

그녀가 만든 일종의 의도적인 플롯이 하나 있다. 남자와 여자는 유산이 된 후 한동안 소원한 관계에 있다가 정전 때문에 둘 사이는 다시 옛 감정이 서서히 되살아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이제 둘 사이는 화해의 국면으로 다가선다고 암시를 한 후에, 결말 부분에 여자는 남자와의 별거를 제안한다.

그녀가 만든 플롯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계획된 수학공식처럼 소설이 짜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덕적이다. 이것은 그녀의 소설기법의 양날의 칼이다.

어떤 의미로라도 소설기법은 발전하고 있다. 특히나 요즘의 추세는 모든 관념이 사물로 대치되는 현상을 보인다는 점, 소설 속의 시간의 흐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적절한 반어는 소설을 더욱 소설적이게 한다. 이 소설에는 도입부에 그런 문장이 나오는데, '미리 알려 주어서 고맙군요.' 라고 발화하는 여자의 육성이 그것이다. 이 여자는 누구에 대해 입이 퉁 튀어나왔는가? 정전 자체인가? 아니면 남편에 대한 시위인가? 아니면 보수하는 전기공사업체인가? 아무런 설명이 없이 소설 속의 긴장감은 질긴 고무줄처럼 탄성을 가지고, 독서의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아울러 확보할 것이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단절인데 반해 후반부는 화합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상반되는 이미지, 상반되는 상황이 역동적인 플롯을 구축한다. 그녀(줌파)가 만든 상황은 단절감을 '메마른 흙' '정전' '떨어진 단추' '떨어진 음식' '닳아 없어진 치솔'로 암시했다.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라고 그녀는 내게 속삭인다.

그러면서 메마른 흙' '정전' '떨어진 단추' '떨어진 음식' '닳아 없어진 치솔'등 이런 감각적 이미지들은 명사지만 사건과 결합시켜 동적 이미지를 생성한다. 그녀는 소설이 서사라는 걸 잘 아는 작가다. (묘사가 장황하다는 점만 뺀다면, 그녀는 단편의 규칙에서 어긋남이 없는 고전에 충실한 작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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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 레이몬드 카버 소설전집 3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그의 이야기는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비일상적 사건과 일상적 사건이 교직되어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비일상적이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슬픈 사건들 뒤에 숨겨진 일상의 비애를 포착한다는 것에 그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의 마지막 유작인 '심부름'에 대한 감상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일종의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사용한 3인칭 나레이션으로 그는 소설을 시작한다. 평소 1인칭을 즐겨 사용한 (이따금 3인칭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이 소설은 너무도 카버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보인다. 그것은 착 가라앉은 무거워 보이는 어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문학적 스승이나 다름 없었던 체홉의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해 나가면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관조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체홉은 죽는다. 죽음을 목격했을 때 사람이 느끼는 보편적 감성에 젖어들 즈음에 서사는 새로운 양상으로 펼쳐진다. 이것은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의 기법처럼 특이한 반전은 아니지만, 중심적인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확대경을 들이민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기법상에서 그는 마치 두 개의 소설을 단아하게 짜깁기를 한 것처럼도 보인다.

죽음을 예감한 체홉은 마지막으로 지하 호텔에 연락해서 샴페인을 맛보고 나서 눈을 감는다. 아마 소설이 여기서 끝나면 나는 이 작품이 보르헤스적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호텔 보이가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소설 서사의 바톤을 쥐기 시작한다. 그렇다, 주인공이 바뀐다. 서사의 중심이 변화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버린 것이다.
그 다음 얘기의 골자는 체홉의 아내가 그에게 '체홉'에게 어울릴 만큼 가장 권위있는 장의사를 불러달라는 얘기다.

보이는 대작가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장의사를 찾아가고, 장의사는 무덤덤하게 보이의 말을 듣다가 체홉이라는 말을 듣자 태도를 바꾸는 장면들을 묘사할 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것이 미래의 예측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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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전11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프루스트에게 감탄한 부분은 이런 부분일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일들, 그래서 독자들도 한번쯤 느껴보았던 보편적인 일들이 그에게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일동이 식탁 앞에 앉으면, 그 저녁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나를 그대로 남아 있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아버지의 뜻을 어기지 않으려고, 엄마가 일동 앞에서는, 내 방에서 한 것처럼 내가 여러 번 입맞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을.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식당으로 옮겨 가서 일동이 식사하기 시작하려고, 그 시각이 다가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면,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그토록 짧고 은밀한 입맞춤에 대비하기 위해, 나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해 두자. 내가 입맞추려고 하는 뺨의 위치를 내 눈으로 골라 두자. 미리 심기를 가다듬어,....*

*언제나 구슬픈 마음으로 내가 발을 딛곤 하던 이 계단에서 일종의 니스 냄새가 풍겼고, 그 냄새는 내가 저녁마다 느끼는 특별한 슬픔을 흡수해 버려 굳히고 있었는데, 모르면 몰라도 이 냄새는 내 감수성을 가장 심하게 해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후각의 상태에서는, 나의 이성은 이미 제 구실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명 중에 생긴 치통이, 물에 빠진 소녀를 계속해서 200번이나 건져 내려고 하는 노력이나, 몰리에르의 시구를 끊임없이 되뇌거나 하는 상태로 밖엔 지각되지 않을 적에 눈이 떠지고, 이지가 그러한 비장한 구조나 끊임없는 시구의 반복의 착각을 없애 주고, 치통의 의식을 환기시켜 주었을 때, 실로 커다란 위안을 느끼는 법이다. 내 방으로 올라간다는 나의 슬픔이, 이 계단에서 나는 특유한 니스 냄새의...*

어머니의 키스를 받고 잠자리에 들려는 아이 시절의 강박관념은 슬픔을 흡수해버리는 니스칠을 한 계단과 함께 프루스트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런 사소한, 하지만 그때의 아이였을 때의 프루스트에게는 심각했던 일들이 하나의 사건이 되어 훌륭한 이야기의 재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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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전11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절판되기 전에 사 둬서 정말 다행이다...)

1. 빛

‘광선’에 집착한 몇 명의 작가들이 있다. ‘태양인’이라 불리웠던 알베르 까뮈가 있고, 플로베르, 그리고 프루스트다. 하지만 세 명의 작가는 중요한 방향의 차이가 보인다. 먼저 까뮈는 태양에서 비추고 발생하는 빛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인 태양에 대한 천착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평론인은 까뮈가 태양에 집착하는 그가 예전 기상대에 근무한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닌가 라고 추정했다. 나는 그의 견해에 대해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빛에 대한 집착은 이미 프랑스 문학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플로베르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프루스트는 묘사에 대한 중요한 인식의 차이가 보이는데, ‘무감동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플로베르는 당연히 거의 대부분의 묘사가 카메라처럼 객관적인 묘사를 지향한다. 반면, 프루스트는 자기의 주변에 있는 모든 대상은 자신의 머리 속에서 (심지어 관념까지도) 부수어져 다시 재조립한 후에 정교한 붓질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레오니 고모 방에 들어가서 문안하는 동안 그 햇빛은 서서히 기울어지면서 창에 스쳐, 좌우로 거둔 안쪽의 커튼과 그것을 묶는 끈 사이에 일단 멈추었다가, 갈라져 분리되고 여과되어, 옷장의 레몬나무 판에 잔 금박을 박으면서, 숲 밑의 풀에 비칠 때의 섬세함과 더불어 방을 비스듬히 밝혔다. 그러나 날에 따라 매우 드물게, 우리가 돌아왔을 때, 옷장이 한순간의 금박을 잃은 지 오래였는데, 그럴 때는 우리가 생 테스프리 거리에 도달해도, 창유리에 펼치는 낙조의 반사도 보이지 않으며, 십자가가 서 있는 언덕 숲 기슭의 늪도 그 붉은 기를 잃어버려, 때로는 벌써 유백색을 띠고 있어, 한 줄기의 긴 달빛이 넓어져 가면서 멀리까지 비쳐, 잔물결 사이사이에 갈라지면서 온 수면을 가로건너고 있었다. 그럴 때는 집 근처에 이르러, 우리는 대문의 돌층계 위에 그림자를 알아본다. *

세상을 재창조한 빛은 일시적인 금무늬를 없애고 유백색이 되었다가 수면을 건너간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세상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졌던 하나의 시간의 흐름을 결합하는 자인 프루스트의 창조에 의해 변해간다. 물론 단 하나의 문장(소설적 시간)속에 엄청난 ‘현실 속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이미 그의 문장을 보면 느껴지지만 그의 문장은 증상이 심각하다고 할 정도의 만연체이다. 그럼 만연체의 효과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나의 의미에 대한 대조와 전복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뱀의 몸뚱이처럼 굴절되는 그의 문장 속에도, 이따금 흐르고 있는 유머러스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의 만연체 속에 간간히 드러나는 그런 유머러스함이 전편을 흐르는 진지한 분위기로 인해 가벼운 웃음을 유발하기를 거부하는, 보다 진지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또 서로 상반되는 이미지들이 (프루스트가 채집한 것이 분명한) 어떤 유사성으로 인해 유형화되어 동질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2. 1편 1부의 줄거리

간단한, 정말 간단하게 얘기한다면 콩브레에서 보낸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것이다. 작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던 프루스트의 독서에 대한 일화와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혹을 품는다는 아주 일상적인 일화들의 묶음이다. 2부 스완의 사랑이 나오기 전까지 이렇다할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작 프루스트마저도 자신의 작품이 출판될 시점에 이르러서 수필이나 소설, 회고록 등 많은 장르 중에서 어디에 분류해야 할지 의심을 품을 정도로) 프루스트의 사소한 일상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기록문학의 유형인 수필과 회고록과는 다른 소설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들은 모두다 프루스트에 의해 변조되고 깎이고 재조립된 것이기 때문이다.(실제 소설 속에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같은 집에서 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소설임을 확인시켜 주는 한 가지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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