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 레이몬드 카버 소설전집 3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그의 이야기는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비일상적 사건과 일상적 사건이 교직되어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비일상적이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슬픈 사건들 뒤에 숨겨진 일상의 비애를 포착한다는 것에 그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의 마지막 유작인 '심부름'에 대한 감상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일종의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사용한 3인칭 나레이션으로 그는 소설을 시작한다. 평소 1인칭을 즐겨 사용한 (이따금 3인칭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이 소설은 너무도 카버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보인다. 그것은 착 가라앉은 무거워 보이는 어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문학적 스승이나 다름 없었던 체홉의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해 나가면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관조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체홉은 죽는다. 죽음을 목격했을 때 사람이 느끼는 보편적 감성에 젖어들 즈음에 서사는 새로운 양상으로 펼쳐진다. 이것은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의 기법처럼 특이한 반전은 아니지만, 중심적인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확대경을 들이민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기법상에서 그는 마치 두 개의 소설을 단아하게 짜깁기를 한 것처럼도 보인다.

죽음을 예감한 체홉은 마지막으로 지하 호텔에 연락해서 샴페인을 맛보고 나서 눈을 감는다. 아마 소설이 여기서 끝나면 나는 이 작품이 보르헤스적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호텔 보이가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소설 서사의 바톤을 쥐기 시작한다. 그렇다, 주인공이 바뀐다. 서사의 중심이 변화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버린 것이다.
그 다음 얘기의 골자는 체홉의 아내가 그에게 '체홉'에게 어울릴 만큼 가장 권위있는 장의사를 불러달라는 얘기다.

보이는 대작가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장의사를 찾아가고, 장의사는 무덤덤하게 보이의 말을 듣다가 체홉이라는 말을 듣자 태도를 바꾸는 장면들을 묘사할 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것이 미래의 예측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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