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한길로 > '화려한 휴가'를 통해 바라본 삶의 자리,,

어릴적 민중(이 단어가 이제는 왼쪽을 가리키는 단어일까? 그래서 사용하기 살짝은 두렵지만..)의 편에 서셨던 분이라 생각되던 한 목사님의 말 중에 학생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부부분이 있었다. 

목사님 왈, ......'광주사태'...... 

뭐 그 앞뒤 말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광주사태'라는 말이 내 귀를 때렸다. 

아직도 '광주사태'라는 말을 사용하시나? 

아니, 그래도 민중을 위해 생각하시고 사시는 분이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분은 현재 '새로운 오른쪽'에 서계시다.  

그리고 오랜동안 사용하시던 말이니 그냥 튀어나올 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다. 

단지 내 주변에 광주에 사시던 몇몇분이 가정의 달인 5월에 상당히 우울해 하셨다. 

 

그렇게 우리의 역사는 기억의 한편으로 사라져만 간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일 뿐인걸까? 

그래서 자꾸만 잊고, 똑같은 일을 겪을 수 밖에 없는걸까? 

그렇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런 작품이 더욱 인기가 있어야 한다. 

단,, 이것이 작품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나의 삶의 자리에서 이 작품이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다.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그 짧은 외침,, 

'기억'은 과거를 현재로 살아내는 것이다. 

'역사'는 필요 없는 반복을 원하지 않는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주며, '미래'에 '희망'을 갖게 한다. 

 

좀더 '인간다운 역사'를 살아내라고 '역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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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한길로 > [싱글맨],,,

시사회 이틀전 상실을 경험했다. 

 영화를 통해 주인공이 상실을 어떻게 해결할지 궁궁했다. 

 상실 후의 위기,, 

 그러나 그 위기는 주인공에서 삶에 대한 愛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위기(혹은 기회)를 이용했다기 보다는 그 깨달음 속에서 그는 상실로부터 해방했음을 느낀다. 

그렇게 영화가 끝이 났다면 실제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고통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순간 필연이었을까,, 그는 상실의 도피처가 아닌 안식처로 이동한다. 

  

상실을 경험한다는 것은 삶이 찢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이상 愛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을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닐까? 

그래서 生命인지도,,, 

그러나 어거지의 삶이 아름답진 않은 듯하다. 

자연스러운 삶,, 

자연스러운 죽음,, 

 

이제 다시 세상을 살아갈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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