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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나에게 한 겹 한 겹 모두 소중하게 다가온 백영옥 님의 새로운 에세이. 이토록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에세이는 오랜만이다. 쌀쌀한 가을밤 따스한 차 한잔처럼 은은하고 섬세한 위로가 느껴지는 작가님의 글이 나는 참 좋다.
큰 이슈였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에서의 글도 좋았지만. 지금껏 만나 본 작가님의 에세이 중에. 이 책 안의 조근조근한 이야기들이 유독 나의 감성에 짙은 향기처럼 다가와서 여운의 울림이 많이 남는다.
작가 님의 일상에서 접했던 수많은 콘텐츠 조각들을. 백영옥 작가님만의 감성과 생각으로 다시 새로운 향수로 덧입혀져 쓰여진 특별한 책.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한 단락 한 단락 초콜릿 상자처럼 열게 되는 따뜻한 에세이.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혼자가 덜 외롭게 느껴진다.
-p.70-71
가까이하면 아프고 멀리하면 외로운 고슴도치의 딜레마. 어느 정도의 온도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우리에게 적당한 걸까요? 고슴도치의 말처럼, 외로움은 가시처럼 우리에게 속한 걸까요?
인간관계라는 것이 가까이하면 아프고 멀리하면 외롭지만. 적당한 온도와 거리로 생채기에 주의하며 서로 적당한 온도로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지냈으면...
-p.201
그는 드디어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지?'
이건 옳은 질문이 아니었어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것이 옳은 질문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도 문득 2분만 현재의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매일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은 허덕이며 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그것들이 차근히 모여서 천천히 속도를 줄여 미래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으면 좋겠다.
-p.43
언젠가 알랭 드 보통은 독신에는 외로움이, 결혼 생활에는 숨막힘과 노여움, 좌절이 따른다고 얘기하다가 이런 말을 덧붙였어요.
"진실을 말하자면 사람은 어느 상태에서든 행복을 누리는 재간이 썩 뛰어나지 않다."
-p.106
책에서는 감정 중에 전염성이 가장 큰 것은 외로움이라고 해요. 외로운 친구를 곁에 두면 외로워질 확률이 무려 40~65퍼센트나 높아진다는 거예요. 외롭지 않은 사람을 세 번 거쳐야만 외로움의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p.156
까뮈의 말에 밑줄을 그어요.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멸망케 하는 것 만을 운명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다. 행운도 행운 나름대로 피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노력 없이 공짜로 주어지는 행운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p.167
2014년의 봄, 단편소설을 마감 중이었습니다. 온전히 하루가 다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세월호 소식을 알게 됐어요. 결국 쓰고 있던 단편은 끝내지 못했습니다. 몇 달 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20년 넘게 관성처럼 작동하던 글쓰기 기능이 갑자기 멈췄어요. 평생을 오른손잡이로 살았는데 갑자기 왼손잡이가 된 것처럼 문장을 읽는 것도 힘들어졌어요. 이제까지 '세월'이라 쓴 단어를 모조리 '시간'으로 바꾼 후, 나는 이제 영원히 맞는 문장을 쓸 수 없는 소설가가 됐다는 생각에 시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