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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페트라 펠리니 지음, 전은경 옮김 / 북파머스 / 2025년 8월
평점 :
* 리뷰어스를 통해 북파머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페트라펠리니 저자(전은경 옮김)의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이 작품은 단 22페이지의 원고로 오스트리아 지역 문학상을 수상하고, 독일 13개 출판사가 판권을 따내기 위해 경합을 벌인 화제작이라고 합니다. 그런 소설이 마침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고 하여 안 읽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님이신 페트라 펠리니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로 수년간 일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돌봄, 보호, 치유 등의 케어(care)와 관련된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소설은 전혀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두 인물이 맞닥뜨리며, 무너져 가는 일상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섬세하고 따사롭게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여전히 기다리며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86세 노인 후베르트와 삶을 포기하려 하는 15세 소녀 린다는 주어진 요일인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마다 서로의 ‘곁’을 지키며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천천히 변화를 겪어갑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인생의 마지막과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 상실과 성장, 돌봄과 구원, 우정, 그리고 기억과 망각이라는 무겁고도 깊은 주제를 부드럽고 따뜻한 문체로 담아냅니다.

린다는 악몽 같은 기억을 안고 자라 죽기만을 바라왔다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두 존재인 후베르트, 유일한 친구 케빈 덕분에 점점 바뀌어갑니다. 린다는 특히 후베르트와 함께 보냈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되살리려 애쓰면서 천천히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한편 후베르트도 상실과 외로움의 어두움을 벗어나 린다의 따뜻한 존재감을 통해 마음을 다시 열고, 무너져버린 일상을 조금씩 재건해 나갑니다. 이들의 관계는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이라는 규칙적인 만남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고 점진적으로 쌓이고 변화합니다. 작가 페트라 펠리니가 간호사로서 오랜 시간 관찰한 인간의 존엄성과 돌봄의 진정한 의미가 소설 속에 깊게 녹아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후베르트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에바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삶이 우리를 뒤섞어 모아주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할머니가 헤어질 때마다 내 귀에 속삭였던 후고 폰 호프만슈탈의 문장이 불현듯 떠오른다. 할머니는 다섯 살 때 내가 직접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문장을 나에게 말했고, 그 후로는 역할이 바뀌어 만났다 헤어질 때마다 언제나 내가 할머니의 귀에 그 문장을 속삭였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신비로운 의미를 지닌 존재다.’ p167

나는 싱긋 웃고서, 자기를 이곳에 데려다주어 고맙다고 그가 인사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부드럽고, 그의 표정은 느긋하다. 나는 이런 걸 상상했던 것 같다. 이 일에 비해 너무 큰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이게 마치 나의 성공이라는 듯이 내 내면에서 뭔가가 환호한다.
나는 사랑을 담아 내 손을 그의 등에 올려놓는다. p217
“아이고, 엄마.” 나는 한숨을 내쉰다. “우리 그냥 그런 척하자.” 엄마가 무슨 말이냐는 눈길로 나를 본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척하며 지내. 사는 게 괜찮은 척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들 잘해내지 못해. 우리도 그런 척할 수 있어. 우리 삶이 괜찮은 척.” p222
이건 느린 죽음이다. 뇌세포와 피부세포가 죽고, 근육이 허물어진다. 머리카락과 속눈썹이 빠진다. 모든 것이 적어지고 또 적어지지만 눈썹만 숱이 많아진다. p299
소설은 슬픔과 아픔, 웃음과 희망이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흐르며, 상처를 지닌 두 인물이 서로의 ‘곁’에 머무르며 치유되는 과정을 눈부시고 아름답게 표현해 냅니다. 지친 일상에 놓인 분들, 소중한 사람을 잃어가는 혹은 잃은 사연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더욱 큰 울림이 전해질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에 선 노인과 삶의 시작마저 버거워하는 소녀가 서로의 온기와 깊은 다정함을 나누며 점차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기억은 사라져도, 마음은 더욱 쌓여간다”라는 진심 어린 메시지를 온전히 전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존재 등 무거운 주제를 온기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진실한 삶의 단면들을 통해 온전히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에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관계의 회복을 은은하지만 힘 있게 전하는 이 작품은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따뜻한 감동을 남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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