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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평점 :
도쿄 빌딩가 뒷골목, 새빨간 꽃처럼 추락사한 사업의 여왕 도미노코지 기미코.
그녀에 대하여 말하는 27명의 이야기.
도미노코지 기미코, 본명은 스즈키 기미코.
한때는 와타세 기미코, 도미모토 기미코였던 그녀는 도쿄에서 유명한 사업의 여왕이다.
어느 날, 그녀는 본인 소유 빌딩에서 추락사한다.
그것도 빨간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채.
이 책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27명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단 한번도 기미코 본인은 등장하지 않지만, 27명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야 한다.
같은 부기 학원을 다녔던 대학생, 초등학생 동창, 첫 남편인 와타세, 옆집 아이 엄마, 라면집 사장님과 사모님, 두번째 남편인 도미모토, 첫 남자였던 비토, 기미코의 어머니와 그녀의 두 아들인 요시히코, 요시테루 등.
27명의 등장인물이 그녀에 대해 얘기하지만 하나같이 단편적이다.
철저히 본인이 본 단면적인 기미코에 대해서 얘기를 늘어놓을 뿐, 그 누구도 기미코라는 인물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게 없다.
심지어 그녀는 죽기 전까지도 세 명의 남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가 그녀의 하나뿐인 남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기미코의 생모와 친 아들들 또한 기미코에 대해 똑바로 아는게 없었다.
누군가에겐 지독한 악녀 였으며, 누군가에겐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친절한 여자였다.
전후세대인 스즈키 기미코가 주인공이다.
사실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전후가 배경인것은 처음인지라 다시 작가 소개글을 읽었다.
작가는 이미 타계한 일본 유명 여성작가로, 그녀 자체가 전쟁 세대의 인물인데다 일본 원작은 쓰여진 지 오래 되었다는 걸 알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부드럽고 나긋하며 기품있는 일본 여성을 떠올렸는데 첫 남편 와타세 요시오와 그의 부모가 한 인터뷰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속된 말로 ‘미친 X‘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게다가 열예닐곱살의 소녀가 할 만한 일인가,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에 진짜 할 말을 잃었다.
계속 읽어 내려가며 도대체 스즈키 기미코라는 여자는 한 평생 진실을 말한 적이 언젠가 생각을 했다.
이미 초등학생때 부터 거짓을 말했고, 죽을때까지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친부모를 양부모라며, 본인은 양녀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기에 진짜 양녀인가보다 했는데 그녀의 친엄마는 본인이 배 아파 낳은 본인 딸이라기에 경악했다.
부모마저 거짓으로 꾸미다니, 정신병자 아닌가.
게다가 그녀의 아들인 장남인 요시히코는 아마도 와타세 요시오나 비토 데루히코의 아들이지 않을까, 차남인 요시테루는 아마도 사와야마 에이지의 자식이지 않을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데려다가 세 남자에게 친자라며 들이밀었으니 전후세대로 혼란한 시대에 살았던걸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시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니까.
주인공인 스즈키 기미코를 생각하면 내가 당한 듯 학을 떼게 되지만 소설은 소설이니까.
작품만을 놓고 보자면 정말 잘 쓰여진 소설이다.
재미는 물론이고 27명의 이야기가 잘 짜여진다.
그리고 27명 모두 숨을 불어넣은 듯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인다.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책장을 덮고 난 후 소름이 끼치고 뒤끝이 찝찝한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