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일이 생기면 어린 시절처럼 집으로 와 울었다. 울다가도 밥을 지었다. 다신 괜찮아질 수 없을 것 같은 참담한 마음도 식욕 뒤로 가만 물러나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노렸다. 불행도 행복도 영원히 계속되는 상태가 아니라 지나는 작은 점이라는 걸. 나는 그 점들을 지나가기로 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이 예민함을 건강하게 지켜내기 위해서 집에서만큼은 이완된 상태로 완전한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다. 그러므로 귀가 후 루틴을 없앨 필요는 없다고 결정하고 선언한다. 게으름이라고 비난하기보다 나름의 의식이라 생각하며 오롯이 휴식을 주기로 한다.
너무 좋아해서 거리를 두고 싶은 나머지 연결이 완전히 끊길 수 있는, 도무지 접점이라곤 하나 없는 세계가 절실했다.여기서 잘 안 돼도 다른 데가 또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곳.이 스위치는 고장인 것 같고, 저 스위치는 시원찮고, 그 스위치는 누를까 말까 고민하며 여러 해를 보내던 어느 날, 모처럼 눈 앞에 못 보던 스위치가 보이길래 눌러봤더니.불이 켜진 그 곳엔 드럼이 있었다.손정승 작가에게는 드럼이 있었던 그 곳이, 내게는 어떤 것이 있는 곳일까?무궁무진한 미지의 공간에 대해 설레기도 하고, 지레 걱정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