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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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너무 피곤해서 책 읽을 여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몇 페이지만 읽자, 싶어서 펼친 게 한 시간도 안 걸려서 다 읽었다. 책에 골몰할 수 있었던 까닭은 ‘플롯’ 때문이다. 어쩜 사건을 이렇게나 잘 배열하여 서술할 수 있을까. 창작자로서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줄거리: 작은 섬 마을에 우편을 배달하는 우체부는 어느 날 우체통에 쌓인 우편물을 이상하게 여기곤 경찰소장 박 경위와 소이를 찾으려 ‘팔곡 마을’에 간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 어떤 비디오를 보고 자살 소동을 일으킨 박 경위는 마을의 이장인 피 노인의 집을 수색하다가 우체부가 없어진 걸 알게 된다. 팔곡을 수색하던 중, 마을에서 있었던 조각 난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고 사라진 우체부를 찾았을 때 누군가 박 경위의 머리를 치고 기절한다. (이후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까 싶어 생략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혐오>로 바꿔 해석해보았다.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혐오>가 우리를 갈라놓는다면’로 바꿔 생각해봐도 이상하지 않은 것은 앞선 제목이 탈인간의 영역처럼 들린다면 바꾼 제목은 오로지 인간의 영역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혐오의 피라미드’ 가장 상위 영역에 있는 ‘집단 학살’을 떠올리게 되면 책의 앞장에 나오는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백만 명을 죽이면 혁명이 된다.”라는 말의 섬찟함이 배가 된다.

‘죽음’에 관심 없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말이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인 노화가 신경쓰이지 않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들에 해당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책 읽는 건 자유라고 생각해서 물어보지 않는 이상 권유하지 않는데 몰입감도 높고 메시지도 좋아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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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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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에서 ‘여름’은 지나치게 뜨거워서 살아가기 쉽지만은 않은, 열매를 수확하기 전의 시기를 뜻한다. 『여름을 지나가다』는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인생들에 대해 말한다. 이 소설은 민과 수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처음엔 두 인물이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해서 같은 인물인가 의심했었다. 저마다의 불안이 잠식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겹쳐 보였다. 소설 속 인물의 시선이 타인에게로 갔다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모습도 의심의 원인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박선우의 신분증으로 신분을 속이고 일하는 수호와 30분씩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민이라는 인물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그들의 처지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고, 결국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올 때는 다른 삶을 좀 더 지속할 수 있기를 응원했다.

또한, 민이 자신의 연인인 종우를 위해 했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삶이 자발적인 죽음을 택한다든지, 이후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던 민이 수호의 삶에는 적극적으로 들어가 도와주려고 한다든지 하는 장면에서는 뭉클하기도 했다. 기억되지 않는 삶과 죽음에 대해 기록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동감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한 번 더 상기시켰고 자신의 것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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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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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소설 Q 시리즈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작가 비공개의 소설을 출간 전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서평단을 모집한다기에 덜컥 신청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 공주가 해적이 되는 이야기고, 고전 소설과 비슷한 구조로 진행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신라 공주 장희라는 여성 인물이 중심이 되어 서사를 이끌어간다는 점이었다.



장희라는 인물의 능글맞음과 지혜로움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장희는 우연히 한수생이라는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는데, 한수생이라는 인물의 에피소드들이 답답해서 돌아버릴 지경일 때마다 척척 해결하는 장희가 대단해보였다. 둘이 처음 만나게 되는 계기는 한수생이 평생 모아놓은 재산을 놀기만 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털리게 되며 목숨까지 부지하기 힘들게 되자 도망을 친다. 배를 타고 도망 치려고 하다 장희를 만나고 장희는 여기서 또 한수생에게 사기를 치려다가 구해주게 되며 두 인물 간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개미와 베짱이>를 모티프로 한 것 같은 소설의 초반부는 독자의 몰입을 가져오는 데에 큰 몫을 한다. 200페이지 가량 되는 소설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을 정도니 재밌는 편이지만, 마지막 챕터 ‘9. 내가 목이 잘라기 전에’가 상대적으로 루즈해서 아쉬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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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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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작은 동네는 화자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이다. 경기도 광주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화자는 성인이 되어 결혼 생활을 하며 그곳에서 보낸 유년기를 떠올린다.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는 남편과 번역 일을 하는 는 남편의 모임에 갔다가 늘 참석하던 배우 윤이소가 불참한 것을 본 후, ‘사라짐에 대해 숙사한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가 태어나기 전 죽었던 오빠와 현재는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 작은 동네에 살 때 어머니와 잘 지내던 유일한 주민인 한 여자를 생각한다.

 

당시에 사라졌거나 현재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어머니의 신문 스크랩에서 단서가 제공된다거나 여태까지 봐왔던 방식으로 진부할 수 있는 비밀을 숨겨 놓는다거나 하는 것이 색달랐다. 특히나 추리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소설을 다 읽기 전엔 독자가 그걸 잡아내기 힘들다거나 특이할 것 없는 이야기인데도 구성 때문에 참신하게 느껴진다거나 하는 것도 이 소설만이 가진 특색이었다. 추리극이라고 하면 결말을 알고 나면 다시 읽고 싶어지지 않음에도, 이 소설은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기도 했다.

 

사실 책을 다 읽기 전에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읽는 데에 조급함이 들었다. 주인공조차 결말 부분에 다다를 때까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단편을 가지고 내가 모르는, 알 필요가 없었던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같은 단어를 가지고 다른 느낌이 들게 사용한 작가의 표현법이 재치 있는 소설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자기 자신을 조금씩 밀어붙여서 낭떠러지 끝에 서게 한 다음, 그 아래를 바라보면서 아찔함을 느끼고, 동시에 아직은 안전하다고 안심하는 그런 방식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한평생 그렇게 실체 없는 걱정 속에 휩싸여 살았는지도 모른다. - P109

우리 어머니, 그러니까 너의 외할머니 말이야, 그분이 돌아가신 후로는 줄곧 난 엄마라도 된 것처럼 그 애를 대했던 것 같아. 그 애도 나를 엄청 의지했어. 겨우 네 살 차이였지만 그땐 그게 엄청 큰 차이라고 생각했나 봐.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게 내게 부여된 역할이었으니까. 때로는 버거울 때도 있었어. - P231



같은 의도의 다른 일면, 혹은 이중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동일한 환상.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런 환상을 지속하고 있어서 무모한 도박을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삶은 그런 식으로 매 순간 판돈을 걸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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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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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고발이 목적인 글들을 너무 많이 읽었는데, 그럴 때마다 소설이 나를 삼키는 기분이 들었었다. 이 소설도 어쩌면 종교와 정치 권력이 배경에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고발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몇몇 사건의 진행됨에 따라 한 인간의 개인적 삶과 욕망, 죄의식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쓴 목적에 가까워 보였다.

『지상의 노래』는 천산 수도원의 벽서가 어떤 것인지 뒤쫓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벽서와 관련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진행되는데, 벽서에 관한 책을 쓰다가 죽은 여행 작가 강상호, 강상호의 죽음 이후 벽서에 관한 글을 완성하고자 하는 동생 강동호, 완성된 책을 읽고 벽서를 두고 중세의 가장 아름다운 책인 <켈스의 책>에 버금간다고 기사를 쓴 교회사 강사 차동연, 차동연의 글을 보고 자신이 그곳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는 장, 사촌 누나를 사랑하여 그녀를 겁탈한 남자를 찾아 복수하는 후까지 다양한 남성 인물들이 서사의 축을 번갈아 가며 끌고 간다.

총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어떤 일의 근거나 동기, 기준 등에 대해 추측할 때, 여러 가지 경우가 양립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무언가 확신하지 않는 서술자의 태도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이분법적으로 나눈 두 가지 이외에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해 줬다. 또한 그 불확실함은 해당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언젠가 누군가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삶과 닮아있고 닿아 있으면서 삶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상대방과 나는 각각 종교와 문학이라는 답변을 했었는데, 보이지 않는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와 문학의 공통점에 대해 완전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두 가지의 상관관계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비인간적 행태가 더 쉬운 인간에게 인간이란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상기시켜 주기도 하며,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삶 속에 깊게 침투하여 지혜와 위로를 준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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