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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한동안 고발이 목적인 글들을 너무 많이 읽었는데, 그럴 때마다 소설이 나를 삼키는 기분이 들었었다. 이 소설도 어쩌면 종교와 정치 권력이 배경에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고발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몇몇 사건의 진행됨에 따라 한 인간의 개인적 삶과 욕망, 죄의식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쓴 목적에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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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는 천산 수도원의 벽서가 어떤 것인지 뒤쫓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벽서와 관련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진행되는데, 벽서에 관한 책을 쓰다가 죽은 여행 작가 강상호, 강상호의 죽음 이후 벽서에 관한 글을 완성하고자 하는 동생 강동호, 완성된 책을 읽고 벽서를 두고 중세의 가장 아름다운 책인 <켈스의 책>에 버금간다고 기사를 쓴 교회사 강사 차동연, 차동연의 글을 보고 자신이 그곳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는 장, 사촌 누나를 사랑하여 그녀를 겁탈한 남자를 찾아 복수하는 후까지 다양한 남성 인물들이 서사의 축을 번갈아 가며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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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어떤 일의 근거나 동기, 기준 등에 대해 추측할 때, 여러 가지 경우가 양립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무언가 확신하지 않는 서술자의 태도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이분법적으로 나눈 두 가지 이외에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해 줬다. 또한 그 불확실함은 해당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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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삶과 닮아있고 닿아 있으면서 삶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상대방과 나는 각각 종교와 문학이라는 답변을 했었는데, 보이지 않는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와 문학의 공통점에 대해 완전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두 가지의 상관관계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비인간적 행태가 더 쉬운 인간에게 인간이란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상기시켜 주기도 하며,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삶 속에 깊게 침투하여 지혜와 위로를 준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있지 않을까.